[비즈니스포스트] 국내 배터리 기업들이 전기차 성장 둔화 영향으로 추운 겨울을 지내고 있지만, 돌아올 봄날을 위해 기초 체력을 다지는데 집중하고 있다. 

특히 중국 외 지역에서 배터리 원료와 소재 공급망을 확보하는 '소재 탈중국'에 초점을 맞추며 장차 다가올 배터리 장기전을 준비하고 있다. 
 
'2차전지 봄날은 다시 온다’, K배터리 ‘탈중국’ 소재 공급망 강화

▲ 국내 배터리기업들이 나빠진 업황 속에서도 기본기를 다지며 역량을 비축하는 가운데 원료와 소재 공급망을 확보하는 데 힘을 기울이며 글로벌 배터리시장에서 펼쳐질 ‘장기전’을 준비하고 있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16일 배터리 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국내 배터리 제조사들은 중국 외 지역에서 원료·소재를 조달하기 위해 북미와 호주 지역 기업들과 협력 채널을 넓히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최근 호주 리튬 생산업체 WesCEF와 리튬 정광(精鑛·Spodumene concentrate) 공급계약을 맺고 올해 1년 동안 리튬 정광 8만5천 톤을 공급받기로 했다. 공급 규모는 두 회사가 논의를 거쳐 더 확대될 수도 있다. 

앞서 LG에너지솔루션은 WesCEF로부터 수산화리튬 5만 톤을 5년 동안 공급받는 계약도 체결한 적이 있다. 

이 밖에도 호주기업 그린테크놀로지메탈스, 라이온타운, 칠레 기업 SQM 등을 통해 리튬 정광, 수산화리튬·탄산리튬을 확보했다.

LG에너지솔루션의 모회사인 LG화학도 자체적으로 원료 공급망을 강화하고 있다. LG화학은 지난해 미국 광산업체 피드몬트리튬과 4년 동안 리튬 정광 20만 톤을 공급받는 계약을 체결하며 피드몬트리튬이 미국에서 생산하는 수산화리튬 물량(연 1만 톤)에 관한 우선협상권도 확보했다.  

SK온도 미국 음극재 파트너사 웨스트워터리소스와 천연흑연 공급계약을 체결하고 2027~2031년 앨러배마주 켈린턴 소재 정제공장에서 생산한 천연흑연을 SK온 미국 공장에 공급받기로 했다. 

이 계약에 따라 SK온은 북미 전기차시장의 성장 속도에 맞춰 계약 기간 내 천연흑연을 최대 3만4천 톤까지 구매할 수 있다. 

특히 천연흑연은 중국이 수출통제 조치를 시행하며 최근 들어 탈중국 공급망의 필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는 원료다. 국내 들여오는 천연흑연 90% 이상이 중국산으로 파악되고 있는 만큼 중국 외 지역에서 천연흑연을 확보하는 일은 여러모로 필수불가결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SK온 역시 호주와 칠레 기업과 손잡고 리튬을 비롯한 핵심 원료를 확보해 나가고 있다. 

삼성SDI도 북미를 중심으로 원료·소재 공급망 강화에 부쩍 속도를 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삼성SDI는 지난 달 캐나다 니켈 광산업체 ‘캐나다니켈’ 지분 8.7%(1560만 주)를 인수하는 계약을 맺고 캐나다니켈이 현지에서 진행하는 니켈광산 개발 프로젝트에서 니켈 생산량 10%를 1억500만 달러에 매입할 수 있는 권리도 확보했다. 서로 합의를 거쳐 15년 동안 니켈 확보량을 20% 늘릴 수 있는 권리도 얻었다.

이 같은 국내 배터리 기업들의 소재 공급망 강화 움직임은 일차적으로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대응을 위한 측면이 크다. 

IRA에 규정된 해외우려집단(FEoC) 조항을 회피하려면 중국 외 지역에서 공급망을 확보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K배터리 3사 모두 북미를 차세대 주력시장으로 놓고 경영전략을 수립하고 있는 상황에서 IRA의 보조금 요건을 충족하는 일은 가장 중요한 과제다. 

원료·소재 공급망을 강화하는 것은 사업 경쟁력을 근본적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대규모 생산시설을 갖춰 기업을 상대로 수주를 펼치는 배터리 사업에서는 안정적으로 원료·소재를 공급받지 못하면 생산과 영업 모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2차전지 봄날은 다시 온다’, K배터리 ‘탈중국’ 소재 공급망 강화

▲ 김동명 한국배터리산업협회 신임 회장(LG에너지솔루션 사장)이 지난 15일 서울 서초 JW메리어트호텔에서 열린 협회 이사회에서 “글로벌 공급망 재편, 초격차 기술 경쟁력 확보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한국배터리산업협회>

올해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와 맞물려 기존 전기차와 배터리에 우호적이었던 미국 정부의 정책이 폐기되거나 수정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지만, 적어도 배터리 소재 탈중국 기조는 계속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공화당이나 공화당의 유력한 대선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당선 시 중국에 적대적 외교노선을 채택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트럼프 행정부 시기는 미·중 관계가 본격적으로 악화하기 시작한 때로 평가된다. 

이 때문에 설령 북미 전기차·배터리 기업에 주어지는 보조금 혜택이 줄더라도, 중국에 의존하는 배터리 소재 공급망을 향한 미국의 제재 조치는 오히려 강화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김동명 한국배터리산업협회 신임 회장(LG에너지솔루션 사장)은 지난 15일 JW메리어트호텔에서 열린 협회 이사회에서 “올해 글로벌 인플레이션 등 대외 여건은 녹록지 않지만 불확실한 대외여건을 냉철히 분석해 압도적 경쟁우위를 확보하고 내실을 다질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삼아야 한다”며 “글로벌 공급망 재편, 초격차 기술 경쟁력 확보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류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