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 반영하면 '물 부족량' 정부 예측보다 2배 늘어, 감사원 "대책 미흡"

▲ 감사원은 22일 '기후위기 적응 및 대응실태(물·식량 분야) 주요 감사 결과’를 통해 정부가 미래 기후변화 예측 없이 정책을 수립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사진은 3월20일 전남 순천시 주암댐이 가뭄으로 말라 바닥을 드러낸 모습. <연합뉴스>

[비즈니스포스트] 감사원의 감사 결과, 정부가 미래 기후변화에 따른 중장기 위험 예측 없이 물·식량 분야의 정책 등을 수립해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국제사회가 기준으로 삼는 기후변화 시나리오를 반영하면 국내 물 부족량이 정부 예측치보다 최대 2.4배까지 증가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감사원은 22일 ‘기후위기 적응 및 대응실태(물·식량 분야) 주요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감사원은 미래 위험요소에 대비하는 감사에 집중하기 위해 ‘2021년 12월 미래 위험요인 대응 중장기 감사 로드맵’을 수립했다.

특히 발생 때 파급력 등을 고려해 기후변화 대응 실태를 우선 점검하기로 한 뒤 그 첫 번째로 국민 실생활과 밀접한 물·식량 분야를 선정해 감사를 진행하고 이번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감사 결과 정부는 물, 식량 분야에서 미래 기후변화에 따른 중장기 위험 예측 없이 기후위기 적응 관련 정책 및 사업을 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감사원은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의 제5차 평가보고서(AR5)를 적용해 이 같은 결과를 내놨다. 미래 기후변화에 따른 주요 위험요인으로는 물 부족 심화, 쌀 생산성 감소 등을 들었다.

우선 감사원은 환경부가 기후위기 대응과 관련한 물(가뭄) 관련 정책 수립 및 추진에서 과거 기상현상만을 고려했다고 지적했다.

감사원에 따르면 환경부는 ‘제1차 국가물관리기본계획’ 수립 때 과거 53년(1966~2018년)의 하천유량 패턴만이 반복된다는 가정에 기반해 물 수급을 예측했다.

제1차 국가물관리기본계획은 물관리기본법에 따른 물 관련 국가 최상위 법정계획으로 현재 1차 계획 기간(2021~2030년)에 맞춰 시행되고 있다.

감사원이 IPCC 제5차 평가보고서를 제1차 국가물관리기본계획 수립 때 사용한 모델에 반영한 결과 2031년부터 2100년까지 70년 사이 국내 연간 최대 물 부족량은 당초 환경부의 예측보다 2배 이상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환경부는 앞서 제1차 국가물관리기본계획을 수립하며 2031~2100년 사이 연간 최대 2억5600만㎥(입방미터)의 물이 부족할 것으로 내다봤다. 환경부는 단순히 과거 53년 가운데 최대 가뭄시와 같은 양의 물 부족을 예측한 것이다.

반면 감사원에 따르면 2031년~2100년 사이 물 부족량은 RCP 2.6 시나리오에서 연간 최대 5억8천만㎥(입방미터), RCP 8.5 시나리오에서 연간 최대 6억2600만㎥로 분석됐다. 정부의 예측과 비교하면 각각 2.2배, 2.4배 많은 수치다.

RCP(온실가스 대표농도경로)는 인간 활동이 대기에 미치는 영향을 나타낸 지표다. RCP 2.6은 파리협정에 따라 지구온난화를 ‘1.5도’ 상승에서 제한하겠다는 목표를 달성한 최상의 시나리오를 뜻한다. RCP 8.5는 현재 추세로 온실가스 배출이 계속되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기후변화 반영하면 '물 부족량' 정부 예측보다 2배 늘어, 감사원 "대책 미흡"

▲ 지역별 전체 물 부족량을 나타내는 지도. 짙은 색으로 표현될 수록 물 부족량이 크다는 의미. 제1차 국가물관리기본계획(왼쪽)과 기후변화를 고려한 감사원의 예측 결과(오른쪽)을 비교해보면 정부의 예측에서 물 부족 현상이 과소평가된 것을 알 수 있다. <감사원>

RCP 8.5 시나리오 기준으로 분석하면 전국 160개 지역 가운데 61.8%에 해당하는 99개 지역이 제1차 국가물관리기본계획과 비교해 물 부족량이 증가했다.

이 가운데 서천군 등 31개 지역은 제1차 국가물관리기본계획에서는 물 부족 현상이 없을 것이라고 전망됐지만 RCP 8.5 시나리오 아래에서는 물 부족이 예측됐다.

이에 감사원은 환경부 장관에게 미래 기후변화 요인을 반영해 국가물관리기본계획을 수립하는 등 중장기 물수급 예측체계를 개선하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통보했다.

감사원은 “관계 중앙행정기관 등이 장래 기후변화에 따른 중장기 영향을 예측하지 않고 가뭄대응 등 물관리 대책을 추진할 경우 미래 기후변화에 따른 물 부족 위험을 대비하기에 충분하지 않을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농림축산식품부, 행정안전부, 국토교통부 등도 물 분야 정책을 추진할 때 미래 기후변화 요인을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감사원에 따르면 농식품부가 농촌용수개발사업 사업대상을 선정할 때 미래 가뭄 위험요인을 고려하지 않아 농업용수 부족이 우려되는 112개 지역 가운데 54개(48.2%) 지역이 과거 10년(2013~2022년) 사업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국토부는 대규모 물 수요가 발생하는 산업단지 조성업무를 총괄하면서 미래 기후변화에 따른 물 부족 여부를 고려하지 않았다. 이에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최근 3년 동안 산업단지지정계획을 하면서 생활·공업용수 부족이 예측되는 21개 지역에 44개 산업단지를 조성하기로 결정했다.

이밖에 행안부는 상습가뭄재해지구를 지정할 때 과거 가뭄 이력만을 고려해 농업용수 부족이 우려되는 112개 지역 가운데 96개를 재해지구로 지정하지 않았다. 환경부는 해수담수화 사업과 나눔지하수 사업에서 미래 기후변화 요인을 고려하지 않아 사업대상으로 지정해야 할 지역을 누락했다.

식량 분야에서도 감사원의 지적이 잇따랐다.

농식품부는 중장기 식량안보 강화방안을 수립하면서 2002년부터 2022년까지의 쌀 생산성만을 기준으로 삼아 2020년대 연평균 단위면적당 생산량을 10에이커당 526kg으로 산정했다. 이에 2027년 기준 쌀 자급률 98% 달성을 위한 필요 재배면적을 68만ha(헥타르)로 설정했다.

그러나 기후변화 요인을 고려하면 2020년대 연 평균 단위면적당 생산량은 10에이커당 457kg, 이에 따른 필요 재배면적은 78만2천ha로 나타났다.

감사원은 미래 기후변화에 따라 세계 주요 곡물 생산량 감소해 수입 가능량이 줄어드는 등 식량안보에 위험 우려가 있지만 농식품부가 단기적 대책만 마련하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감사원에 따르면 미래 기후변화를 고려하면 현재보다 2035~2036년 밀 생산량은 9.3%, 콩 생산량은 30.0%, 옥수수 생산량은 5.1% 감소할 것으로 전망됐다.

해수부도 수산자원 관리정책을 추진할 때 미래 해수온도 변화 등 기후변화 요소를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분석됐다.

감사원은 “정부의 기후변화 대응실태를 순차적으로 점검하고 있는데 이번 감사에서는 기후변화에 따른 물 부족, 식량 위기 등을 우선 점검했다”며 “향후 홍수 증가, 해수면 상승, 기온 상승 등을 고려한 사회기반시설 분야 감사를 통해 정부의 재해 예방을 위한 대비책을 제시하는 데 중점을 둘 것”이라고 말했다. 장상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