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등검은말벌.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숨쉬기가 어렵고 토할 것 같더니 가려워지면서 온몸에 두드러기가 솟았다. 말로만 듣던 치명적인 아나필락시스 쇼크가 내게 왔다. 자주 쏘이다 보니 말벌의 독에 방어하는 생체반응이 과잉으로 작용해 나를 방어해 준 것이 아니라 실신하게 만든 것.
땀이 폭포처럼 쏟아졌고 혈압이 80까지 떨어져 사망에 이를 수 있는 위험한 상황에 119에 연락을 하고 하염없이 앰뷸런스를 기다렸다. 구급차를 기다리는데 20분, 싣고 병원까지 가는데 20분. 앰뷸런스에 실려 가는 내 곁에서 아내는 계속 경련을 일으키는 나를 진정시키느라 온 힘을 다했다.
내가 멀미에 토까지 하면서 정신이 오락가락하여 아내는 지옥 같은 시간을 보냈다 한다. 119가 늦게 출동하고 늦게 후송한 것이 아니라 연구소가 산속 깊숙이 있으니 할 수 없는 일!
가까스로 병원에 도착하여 주사를 맞고 정신을 좀 차리자 아내는 울면서 “이제 그만하자” 한다. 누가 산속에 살라 부탁한 적도 없고 강요한 적도 없다. 멸종위기종 살려보겠다고, 환경 지키는 파수꾼이 되어 보겠다고 산속으로 들어온 내 잘못. 자칫 죽을 뻔했다.
▲ 앰뷸런스에 실린 필자.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30년 산속 생활을 정리하고 병원 가까운 곳에 살아야 그나마 비상사태에 대처할 수 있으니 도시로 이사하자며 아내에게 설득을 당하면서도 정신이 좀 들자 붉은점모시나비 생각을 떨치지 못했다. 이제 마지막 번식을 마치고 생을 마감하고 있는 그들의 시신도 거두어 줘야 하고 붉은점모시나비의 자손인 알도 살뜰히 챙겨야 할 때인데 이렇게 병원에 누워있으니.
1997년 깊은 산속으로 들어와 연구소를 차리려 할 때 주변 지인들은 미친 짓이라며 걱정을 했다. ‘자연이나 생태’ 같은 단어들이 아주 생소했고 생물을 소재로 무엇을 한다는 생각 자체를 할 수 없던 시대에 아무도 시도한 적 없는 특별한 일을 하면서 시행착오를 거듭했고 경제적으로 육체적으로 큰 고생을 했다.
그러나 2005년 붉은점모시나비를 만나면서부터 차고 넘치는 큰 복을 받았다. 거의 20여 년 동안 고귀한 붉은점모시나비를 연구하면서 얼마나 신비롭고 행복했는지! 붉은점모시나비는 내 은인이다.
▲ 짝짓기 중인 붉은점모시나비.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학자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연구 활동을 통해 새로운 이론이나 자료를 만들고 저술로 다른 연구자들에게 알려 연구 활동의 잠재적인 가치를 확인시키는 작업이다. 붉은점모시나비를 연구하게 된 첫 단추는 영하 48도에 견딜 수 있는 내한성 메카니즘을 규명하는 일이었다.
▲ supercooling point graph.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 붉은점모시나비 애벌레.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 2021년 치주염에 대한 항균 활성을 나타내는 것을 확인한 논문.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 2022년 붉은점모시나비의 발달 단계별 유전자 발현 패턴 논문.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 2023년 붉은점모시나비 애벌레가 아토피 피부염에 미치는 영향을 확인한 논문.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심층적, 실질적 연구가 추가로 진행돼 붉은점모시나비가 치주염이나 아토피 피부염의 치료제 후보 물질이 탁월한 치료제로 상용화 될 가능성은 충분하다. 또 먹이 식물인 기린초와 붉은점모시나비 애벌레의 체내 물질이 알츠하이머병에 대한 새로운 치료법이 될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연구 설계를 하고 있다.
▲ 붉은점모시나비 애벌레의 먹이 식물인 기린초.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멸종의 위기에 놓인 ‘붉은점모시나비’ 그리고 여러 곤충들에 대한 연민을 가져달라는 것이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현재나 미래를 책임질 발판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곤충을 알면 정말 경제가 보인다. 이강운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
| 이강운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은 1997년 국내 최초로 홀로세생태학교를 개교해 환경교육을 펼치고 있다. 2005년부터는 서식지외보전기관인 (사)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를 통해 애기뿔소똥구리, 물장군, 붉은점모시나비, 등 멸종위기종 증식과 복원을 위한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2012년부터 서식지외보전기관협회 회장이며 유튜브 채널 Hib(힙)의 크리에이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