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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
문제는 연비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무거운 고민을 안게 됐다. 연비가 좋은 자동차를 내놓으라는 요구에 직면하고 있다.
현대차는 지난 26일 국토교통부로부터 싼타페의 연비기준에 대해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현대차가 애초 신고한 연비보다 훨씬 연비가 나쁘다는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의 검사에서 적합 판정을 받은 현대차로서 억울한 구석이 있다.
하지만 정 회장이 주목해야 할 대목은 국토부의 조사가 소비자단체들의 압력에 의해 진행됐다는 점이다. 국토부는 연비조사에 나선 배경에 대해 “시민단체에서 직무유기로 고발하는 것들이 상당히 작용했다”고 털어놨다.
이는 그만큼 ‘국민차’라 불릴 정도인 현대차의 연비에 대한 불만이 깊고도 넓다는 점을 보여준다.
현대차의 낮은 연비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에너지관리공단에 따르면 국내 판매중인 362종 자동차 가운데 354종이 정부의 연비기준에 미달한다. 현대차가 144종으로 가장 많고, 기아차 124종, 쌍용차 43종 등이다.
연비는 자동차 선택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히고 있다. 고유가인 상황에서 친환경 차량에 대한 요구는 소비자들로 하여금 연비 좋은 차를 찾도록 한다.
현대모비스의 조사를 보면 대학생들이 첫 차 구매 시 연비를 가장 먼저 고려한다. 디자인, 성능, 가격을 앞질렀다. 연비의 중요성은 갈수록 높아질 것이라는 얘기다.
그렇지만 현대차는 신차를 내놓으면서 거꾸로 갔다. 신형 쏘나타나 신형 제네시스의 경우 오히려 뚱뚱해져 연비가 뒷걸음질쳤다.
또 연비가 좋은 수입 디젤차를 찾는 소비자들이 크게 늘고 있는 상황에 뒤늦게 대응하기 위해 부심하고 있다. 하지만 현대차의 디젤엔진에 대한 의구심이 높아 상황을 반전하기가 쉽지 않다.
정 회장은 지난해부터 10조 원 규모의 차량경량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연비를 잡기 위해서다. 정 회장은 그 성과를 언제쯤 내놓을까?
◆ 거꾸로 가는 현대차 연비
“한국은 세계 5위의 완성차 대국이다. 그런데 한국을 대표하는 현대차의 신차 트렌드는 세계적 추세와 따로 노는 느낌이다.”
한 수입완성차업체의 임원의 얘기다. 국내 자동차시장을 거의 독점하고 있는 현대차가 최근 자동차의 ‘경량화’ 추세를 역행하고 ‘무거운’ 차만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차는 지난 3월 신형 쏘나타를 출시하면서 언론을 상대로 사전공개행사를 열었다. 황정렬 현대차 중대형PM센터 상무는 “현대차가 세계 자동차업체들이 추진하는 엔진 경량화를 왜 따라가지 않냐”는 질문을 받았다.
이런 질문은 현대차가 내놓은 신형 자동차들은 자꾸 뚱뚱해지면서 연비가 모두 거꾸로 갔기 때문이다. 신형 쏘나타 연비는 기존 모델에 비해 0.2㎞/ℓ 향상된 12.1㎞/ℓ였지만 이 연비는 광폭 타이어를 장착하고 측정했기 때문에 실제 향상효과는 전혀 없다고 보는 게 맞다.
그 앞에 출시한 신형 제네시스 연비는 오히려 감소해 기존 모델에 비해 0.2km/ℓ 줄어 9.4km/ℓ였다.
이에 대해 황 상무는 “연비를 향상시키는 것이 경량화로만 되는 게 아니다”며 “연비를 향상시키기 위한 특별한 장비를 넣다 보니 중량은 올라갈 수밖에 없다”고 해명했다. 특별한 장비는 현대제철의 초고장력강판으로 만든 부품을 뜻한다.
현대차는 현대제철로부터 초고장력강판을 전량 공급받고 있다. 초고장력강판은 차량경량화를 위해 기존강판보다 10% 가볍고 2배 강도가 강하지만 알루미늄보다 15% 가량 무겁다. 현대차는 안전성을 높인다는 명분 아래 초강력강판을 차체뿐 아니라 부품까지 확대해 적용하고 있다.
현대차가 원가절감을 위해 현대제철이 생산하는 초강력강판을 독점적으로 공급받아 자동차에 사용하면서 ‘연비 나쁜 차’라는 이미지를 얻게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우철 전 현대제철 사장은 “현대자동차는 대중적 차량을 생산하는 기업으로 원가절감에 대한 상당한 압박을 받고 있다”며 “강판을 사용하는 것도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이런 구조는 글로벌 완성차업체들이 차제를 알루미늄으로 바꾸는 등 경량화에 속도를 내는데 현대차는 강판을 고수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현대제철을 통해 쇳물에서 완성차까지 수직계열화한 것이 비용절감에 엄청난 도움을 줬지만 연비를 놓고는 현대차로 하여금 다른 길로 가도록 했다는 것이다.
전 세계 자동차시장에서 차체에 알루미늄을 쓰는 것은 현재 1%에 불과했지만 2025년 11%이상 늘 것으로 전망된다. 차체가 가벼워질수록 연비가 좋아지는 것은 당연한 얘기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무게가 10% 줄어들 경우 연비가 7% 정도 향상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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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지난해 9월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제3고로 화입식 행사에 참석해 제3고로의 첫 가동을 위해 불을 지피고 있다. |
◆ 글로벌 자동차회사들 ‘더 작은 엔진으로 더 강력한 파워’
현대차에 비해 폭스바겐은 최근 10년 새 ‘고강도 다이어트’를 하고 있다. 폭스바겐은 이번 7세대 자동차 모델에서 무게를 100kg 줄이는 데 성공했다.
다른 기업들도 경량화를 통한 연비강화에 사활을 걸고 있다. 메르세데스-벤츠도 2012년 말 차체 전체를 알루미늄으로 제작해 무게를 110kg이나 줄였다. 포드 픽업트럭도 전면부, 화물공간 등 외부 차체를 거의 알루미늄으로 바꿔 317kg을 줄인다.
글로벌 완성차업체들이 경량화를 목표로 하는 이유는 각국의 환경규제 영향도 크다. 자동차 무게가 100kg 늘어나면 km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11g 늘어난다. 유럽국가들은 대당 140g 수준인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20년까지 95g으로 감축하라는 방안을 내놓았다. 이 기준을 맞추지 못하면 g당 95유로의 벌금을 내야 한다. 미국도 이산화탄소 배출량 규제를 강화하는 중이다.
결국 현대차도 유럽이나 미국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려면 우선적으로 엔진 경량화를 통한 친환경차를 내놓아야 한다. 글로벌 자동차 회사들은 연비가 좋은 디젤차로 국내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2011년 전체 수입차의 35%에 불과했던 디젤차 판매비중은 지난해 62%로 치솟았다.
디젤차 중에서도 폭스바겐은 연비 효율성이 가장 높다. 자동차전문 리서치회사 마케팅인사이트에 따르면 10여개 국내외 완성차회사 중 복합연비 체감비율에서 폭스바겐이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
폭스바겐은 연비의 장점을 앞세워 ‘골프 시리즈’로 국내 판매성장률도 1위를 하고 있다. 폭스바겐은 지난해 국내 수입차시장에서 전년대비 39% 성장해 2만 대 이상을 팔았다. 이 여세를 몰아 올해 5월까지 전년 대비 34% 증가한 1만2358대를 벌써 판매했다.
폭스바겐코리아 토마스 쿨 사장은 “더 작은 엔진으로 더욱 강력한 파워를 구현하는 것은 오늘날 전 세계 자동차 메이커의 과제”라고 말했다.
폭스바겐은 판매호조의 주요 요인으로 ‘TDI엔진’을 꼽았다. TDI 엔진은 가솔린 위주였던 수입차시장에 디젤을 투입해 시장을 선도했다. TDI엔진을 단 패밀리 세단인 파시트는 평균연비 33.1km/ℓ를 기록해 지난해 기네스 세계기록도 달성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독일 디젤차량의 인기가 앞으로도 지속되고 판매량이 예상을 뛰어넘을 수 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 뒤늦게 대응 나선 현대차 과연 성공할까
현대차는 지난해부터 10조 원 규모의 차량경량화 프로젝트를 다급하게 실시했다. 정몽구 회장을 비롯해 정의선 부회장도 나서 연비를 챙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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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 |
정 회장은 지난해 초 북미오토쇼에서 독일 브랜드들이 선보인 고효율 차량을 보고 상당히 자극을 받았다고 한다. 정 회장은 “차량 경량화와 연비경쟁에서 뒤지면 이류회사에서 벗어날 수 없다”며 이와 관련한 투자에 목숨을 걸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부회장도 지난해 제네바모터쇼에서 "연비 등 기술발전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며 "연비가 탁월하거나 새로운 소재가 적용된 신차를 다각도로 분석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 부회장은 2~3주에 한번 꼴로 남양연구소를 들러 연구개발과정을 직접 챙기고 있다. 예고 없이 방문하는 경우도 많아 연구소는 '상시 보고체계'를 가동 중이다. 현대차 남양연구소 관계자는 “정 부회장이 연구소를 방문하는 횟수가 늘었다”며 “전사적으로 품질에 대한 관심이 높은 탓도 있지만 특히 경량화를 위한 소재개발 부문에 신경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디젤엔진 개발도 강화하고 디젤차량도 잇따라 선보일 계획을 잡아놓고 있다. 현대차는 지난 23일 디젤 R엔진을 탑재한 그랜저 디젤을 출시했다. 그랜저 디젤은 국산차 중 최초의 준대형 디젤 세단이다. 현대차는 R엔진을 개발하기 위해 3년이 넘게 500여 대의 엔진 시제품과 400여대의 시험차량을 연구했다고 한다.
현대차는 그랜저 디젤에 이어 하반기에 신형 LF소나타, 신형 제네시스, 신차 AG의 디젤차 출시를 검토하고 있다. 기아차 라인업에서도 K5, K7 등에 디젤엔진을 탑재한 모델을 선보일 계획이다.
현대기아차는 그동안 준준형급에만 디젤차량을 내놓았는데 중형차 이상에서 더 이상 디젤차 출시를 머뭇거리다가는 안방을 모두 수입 디젤차에 내줄 수 있다고 위기감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가 중형급 이상에서 디젤차를 내놓았지만 과연 디젤엔진에 대한 노하우가 깊은 독일 브랜드를 짧은 기간에 따라잡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 회의적 시각이 많다. 현대차의 디젤엔진이 수입 디젤차만큼의 연비 효과를 낼지 의구심이 여전히 깊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 시금석이 그랜저 디젤차량이다. 정몽구 회장이나 정의선 부회장은 곧 성적표를 받아들게 된다. 그랜저 디젤차량의 연비는 14km/ℓ이다. 그런데 폭스바겐 골프는 16.7km/ℓ이고 벤츠S클래스는 18.5km/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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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 그랜져 디젤 <출처=현대자동차 홈페이지 메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