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몸이라는 좋은 친구를 미지의 세계에 대한 정보부족과 두려움 때문에, 무조건 밀어내는 일에 돈을 쓰고 있다.
▲ 이현주 기린한약국 원장.
병이 되기 전에 나타나는 미미한 통증과 증상들은 진통제와 항생제로 입을 막아야 하는 거추장스런 손님이 아니라, 우리에게 무언가 알려주기 위해 몸이 보내는 메시지다.
태풍이 오기 전 자연이 보내오는 신호들과 같이, 우리 몸은 어떤 재앙 또는 어떤 큰 병이 오기 전에 미리 증상으로 경고를 주는 것이다.
처음 몸이 말을 걸어올 때는 아주 나지막한 목소리로 속삭인다.
어딘가 조금 가렵다든지, 가벼운 열감이 난다든지, 예전보다 쉽게 피곤해 진다든지, 기운이 좀 떨어졌나 싶은 정도로 말이다. 그때 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쉬어주거나, 몸에 좋은 음식을 챙겨먹거나, 자연 속으로 들어가 적절한 조치를 취하면 증상은 금방 사라진다.
그런데, 그럴 때 대수롭지 않게 여겨 증상을 무시하거나 또는 바빠서 관심을 가지고 돌볼 여유가 없어 지나쳐버리면, 몸은 볼륨을 올려 통증으로 이야기한다.
마치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할 때처럼 처음에는 살살 이야기하다가 말귀를 못알아들으면 소리를 지르고, 그래도 안들으면 화를 내며 폭발하듯 말이다.
몸의 어떤 부위에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한다면, 몸은 이미 예민해져 있는 상태이다. 이때는 잠깐의 휴식만으로는 진정되지 않는다. 구체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통증을 관리하기 위해 시간과 에너지를 내야 한다.
만성통증에 시달리는 사람들 대부분은 통증 초기에 무심하게 지나쳐 버리거나, 진통제나 소염제 정도로 가볍게 대응을 한 경우이다.
몸이 통증을 통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일시적인 증상만 해소하기 위해 대응하는 경우에는 얼마 후 다시 통증이 얼굴을 내밀고 투정을 부리기 시작한다.
통증으로 말을 걸어도, 몸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지 않으면 그 다음 단계는 구체적인 질병이 나타난다. 단순한 증상을 넘어 심각한 질환이 등장하는 것이다. 몸은 레드카드를 꺼내들고, 호루라기를 불어댄다. “ 이제 그만!” “ 정지! ” “ 퇴장!! ”
내가 아무리 부정하려해도, 더 이상 몸이 내 말을 듣지 않아서 일도 할 수 없고, 인간관계도 뜻대로 되지 않는 상태가 바로 이런 상태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그제서야 몸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그러나 관심의 방식은 몸이 원하는 바와 사뭇 다르다. 응급상황이 발생하거나, 통제불증의 극심한 통증, 출혈, 마비 등의 증상이 나타나면 사람들은 덜컥 겁이 나서, 선택의 여지없이 병원으로 가서 의사들의 지시에 따라 움직인다. 내 몸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게 아니라, 허둥대며 급한 불을 끄는 데 집중하게 되는 것이다.
시집살이를 20년간 해온 50대 여성의 이야기다. 시어머니의 말투가 늘 자신을 공격하는 명령조여서 언제나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려고 노력하며 살아왔다고 한다.
대신 시어머니 앞에서는 몸을 낮춰 어르신으로 대해드리고, 늘 귀담아 듣는 것처럼 말 잘 듣는 며느리처럼 살았고, 자신도 가족들도 그런 관계에 대해 별 문제를 느끼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데 갱년기에 접어들면서 열이 올랐다 내렸다 하는 증상이 시작되고, 감정조절이 잘 되지 않기 시작했다.
어떤 날은 시어머니가 하는 말을 듣고 화가 나서 미칠 것만 같은데 평생 말대답을 한 적이 없는 사람이라 갑자기 뭔가를 표현하기도 어렵고 하여 그냥 부대끼고만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날, 또다시 시작된 시어머니의 공격적인 잔소리를 듣는 순간, 팔 다리가 꼬이면서 그 자리에서 거품을 물고 기절을 해버렸다.
온 가족이 깜짝 놀라 응급실에 실려가 조치를 취한 후에야 제 정신으로 돌아왔다. 그 일이 있은 이후부터 시어머니의 며느리를 대하는 말투는 변화하기 시작했다. 당신이 말을 함부로 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고부간의 관계가 예전보다 조금 어색해졌지만, 며느리는 한결 사는 게 편해졌다고 한다.
말로 표현못하는 것을 몸이 대신 표현해 준 것이다. 몸은 마음과 정서, 감정이 작용하는 반응체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나타나는 몸의 작고 큰 변화들, 통증과 증상들을 통해 내 존재가 나에게 그리고 내 주변 사람들에게 소통하고자 하는 진정한 메시지가 있다는 것에 대해 관심을 갖아보자.
과연 몸은 무엇을 내게 원하는 것일까? 몸은 필요할 때면 언제나 내가 잃어버린 삶의 균형과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나아가야할 방향성, 그리고 건강한 생활방식을 제안한다.
며느리의 경우 더 이상 억울한 감정을 참기만 하지 말라고 몸은 그녀에게 말해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가족들에게도 참고 살아가는 것이 겉으로는 편안해보여도, 그동안 얼마나 고통스러웠던가를 토로하고 싶었던 게다. 몸은 정직하게 그녀를 대신해서 할 말을 다 했던 것이다.
만약 내게 나타난 증상에 대해 정확한 해석을 하기 어렵다 할 지라도, 또한 몸이 강한 신호를 보내지 않는다 할지라도, 평소에 몸에 대해 관심을 갖는 태도를 갖고 대화를 나누는 습관을 가져보자. 몸이 내게 말을 건네주는 친절에 대해 감사하다고 생각하는 것, 그것이 몸과의 소통을 위해 제일 필요한 첫걸음이다.
이현주 기린한약국 원장. 한약학 박사. 하버드의대 Lifestyle Medicine Day to Day Certification 과정 및 Lifestyle Medicine Chef Coaching Certification 과정 수료. 코넬대 자연식물식영양학과정 수료. 오감테라피학교 대표. Meat Free Monday Korea 대표.
토털 헬스케어에 관심이 많아 환자들에게 ‘라이프 스타일’을 처방한다. 한약국을 찾는 분들에게 식단, 운동, 한약처방과 더불어 명상과 심리상담, 자연과의 교감 등으로 이루어진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