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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왼쪽)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
그리스 신화에 모이라이라고 불리는 운명의 여신이 3명 등장한다. 베를 짜는 여신 클로토, 나누어주는 여신 라케시스, 거역할 수 없는 아트로포스다.
국가부도 위기에 직면한 그리스 운명은 지금 두 여인의 손에 달려 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다.
독일과 프랑스가 각각 배출한 두 여장부는 깊은 고민에 빠져 있다. 막대한 빚을 지고도 돈을 더 꿔달라고 배짱을 튕기는 젊은 남자 때문이다. 그는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다.
9일 외신에 따르면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가 그리스 정부의 막대한 부채 일부를 탕감해 유로존 탈퇴를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라가르드 총재는 8일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한 세미나에 참석해 “그리스는 극심한 위기상황에 놓여 있으며 진지하고 신속한 대응이 필요하다”며 “IMF는 그리스 사태의 해법 마련을 돕는 데 최대한 관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외신들은 그리스 정부가 연금개혁 등을 포함 긴축안을 내놓을 경우 라가르드 총재가 이에 화답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라고 풀이했다.
라가르드 총재는 이날 ‘채무재조정’이라고 표현했으나 사실상 채무 일부를 탕감하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리스 정부는 총부채 3230억 유로(403조 원) 가운데 30%를 탕감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최대 채권국인 독일은 이런 요구를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라가르드 총재의 발언은 독일이 한 발 물러나줄 것을 압박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리스 운명을 쥔 두 여인 가운데 라가르드 총재가 먼저 구원의 손을 내민 것이다.
유럽정상들은 오는 9일까지 그리스 정부로부터 개혁조치와 예산삭감 등 제안서를 제출받아 12일 예정된 회의에서 추가구제를 최종 결정한다. 이 결정에 메르켈 총리의 입김이 크게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IMF와 그리스 정부가 기존 입장에서 한 발씩 물러나면서 협상타결 가능성이 높다는 낙관적 전망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메르켈 총리가 독일의 국민여론을 의식해 강경한 태도를 고수할 경우 협상이 틀어질 위험도 남아 있다.
라가르드 총재는 그리스 국민투표에서 구제안에 대한 부결이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치프라스 총리에 대해 강한 불만을 보였다.
그는 지난 1일 그리스가 제시한 타협안에 대해 “무엇을 어떻게 하자는 건지 하나도 모르겠다”며 불신감을 보였다. 그는 줄곧 ‘선 경제개혁, 후 채무조정’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하지만 치프라스 총리가 구제안을 국민투표 표결에 부치는 모험을 강행해 승리하자 라가르드 총재의 태도가 돌변한 것이다.
라가르드 총재는 IMF 역사상 첫 여성 총재로 2011년 7월 수장에 올랐다. 그는 1956년 생으로 프랑스에서 태어나 파리 10대학 로스쿨에서 법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1981년 미국으로 건너가 로펌 베이컨앤드맥킨지 변호사로 활동했으며 여성으로 첫 회장 자리에 올랐다. 2005년 여성 최초로 프랑스 외교통상부 장관, 농수산부 장관, 경제재정산업부 장관을 지내는 등 여성 최초 수식어를 달고 다녔다.
라가르드 총재는 5년 임기인 IMF 총재 임기를 1년 남짓 남겨 두고 있다. 그는 지난 6월25일 연임에 나설 뜻을 처음으로 밝혔다. 이번 그리스 사태는 라가르드 총재 개인적으로도 연임을 가르는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