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총괄 수석부회장(왼쪽)과 케빈 클라크 앱티브 CEO가 23일 미국 뉴욕 골드만삭스 본사에서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개발을 전문으로 하는 합작법인 설립 본계약을 체결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총괄 수석부회장이 20억 달러라는 대규모 투자로 앱티브라는 회사와 합작회사를 설립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앱티브는 현대차와 맞먹는 덩치를 지닌 거대 자율주행 전문기업으로 자율주행 자동차의 ‘뇌’와 ‘신경계’에 해당하는 기술을 보유한 회사로 평가받는다.
정 수석부회장은 현대차그룹을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제공기업’으로 만들기 위해 완성차에 인공지능 DNA를 이식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판단해 과감한 투자를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24일 완성차업계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이 23일 발표한 앱티브와 합작회사 설립은 현대차그룹의 미래 자동차 전략에서 큰 획을 긋는 '사건'이다.
현대차그룹은 2020년 설립 완료를 목표로 미국 앱티브와 모두 40억 달러 규모의 자율주행 전문 합작회사를 설립하기로 했다. 현대차와 기아차, 현대모비스 등 현대차그룹이 50%, 앱티브가 나머지 50%의 지분을 지닌다.
미국 앱티브를 자세히 살펴보면 기존의 완성차 제조역량에 ‘뇌’와 ‘신경시스템’을 더해 현대차그룹을 완전한 형태의 미래차를 만드는 기업으로 탈바꿈시키겠다는 정 수석부회장의 의지가 읽힌다.
앱티브는 과거 제너럴모터스(GM)의 부품기업으로 설립됐던 델파이를 전신으로 한다.
델파이는 2017년 말 회사를 자동차 전장과 첨단 안전기술 등 자율주행 관련 기술을 전담하는 부문과 애프터마켓 및 첨단 자동차 추진 솔루션 공급부문 등으로 쪼갰다.
이 가운데 자율주행 관련 기술을 맡는 회사가 바로 앱티브다.
정 수석부회장은 자동차에 인공지능을 입혀 뇌와 신경계에 해당하는 시스템 관련 원천기술을 확보하는 것이 목표인 앱티브의 기술 지향성에 공감한 것으로 보인다.
앱티브의 홈페이지에 올라온 기업 소개자료를 보면 이런 비전들이 더욱 자세히 드러난다.
앱티브는 “차량의 뇌와 신경시스템을 통합하는 기술을 제공하는 유일한 기업”이라고 강조하며 "차량의 전원을 켜는 것부터 시작해 각종 데이터를 처리하고 이를 계산한 뒤 소프트웨어로 최적화한 솔루션을 제공하는 것이 미래차 시대에 가장 중요한 기술"이라고 밝히고 있다.
전원 온오프와 데이터 처리를 ‘뇌’라고 한다면 이를 계산하고 소프트웨어를 통해 실제 구동하는 과정이 ‘신경시스템’에 해당한다.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 등으로 자동차산업의 중심이 옮겨지면 전동화 차량을 효과적으로 제어하기 위한 뇌와 신경시스템의 중요도가 부각될 수밖에 없다고 앱티브는 판단한다.
정 수석부회장의 과감한 투자 결정에는 자율주행사업과 관련해 앱티브가 이뤄낸 성과도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인다.
앱티브는 싱가포르와 라스베이거스에서는 로보택시 시범서비스를 하고 있다. 보스턴에 위치한 자율주행사업부를 중심으로 피츠버그와 산타모니카, 싱가포르 등 주요 거점에서는 자율주행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이에 앞서 앱티브는 2015년과 2017년 자율주행 유망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으로 꼽히던 ‘오토마티카’와 ‘누토노미’를 인수하며 자율주행 개발 역량을 고도화하기도 했다.
매출도 상당하다. 앱티브는 2019년 기준으로 ‘첨단 안전·사용자경험 기술(뇌)’과 ‘신호·파워솔루션(신경시스템)’부문에서 각각 41억 달러, 105억 달러의 매출을 거두고 있는데 3년 안에 이를 각각 55억 달러, 123억 달러까지 확대하겠다는 목표를 세워두고 있다.
정 수석부회장은 앱티브의 이런 성과가 현대차그룹이 미래차기업으로 변신하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크다.
정 수석부회장은 앱티브와 합작회사 설립을 놓고 “자율주행 분야 최고 기술력을 보유한 앱티브와 현대차그룹의 역량이 결합된다면 강력한 시너지를 창출해 글로벌 자율주행 생태계를 선도해 나갈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그런 점에서 정 수석부회장은 앱티브가 쌓아온 유무형의 자산을 높게 평가했다.
현대차그룹은 합작회사에 현금 16억 달러, 지적재산권 공유와 엔지니어링 서비스 제공, 연구개발 역량 제공 등 4억 달러 등 모두 20억 달러를 투자했다.
반면 앱티브는 자율주행 기술과 지적재산권, 700여 명의 자율주행 솔루션 개발 인력 등 무형자산으로만 20억 달러를 출자했다. 앱티브가 그동안 축적한 노하우에 현대차그룹이 많은 가치를 매기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증권가에서는 현대차그룹과 앱티브의 협력에 긍정적 평가를 내놓고 있다.
조수홍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미래 모빌리티의 변화과정에 대응하는 현대차그룹의 의미 있는 규모의 첫 번째 개방형 혁신(오픈 이노베이션)이라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말했다.
유지웅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도 “올해 초부터 글로벌 완성차기업 사이의 파트너십이 예상보다 빠르게 움직였다”며 “현대차그룹이 이에 대응해 더욱 적극적 자세를 보인 것”이라고 바라봤다. [비즈니스포스트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