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상인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 <연합뉴스> |
“시스템반도체산업이 성장하려면 삼성전자보다는 팹리스를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박상인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는 23일 비즈니스포스트와 인터뷰에서 “정부의 시스템반도체 육성정책이 삼성전자 등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회사)에 집중된 반면 중소 중견기업 위주의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회사) 지원은 한참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팹리스는 생산시설 없이 반도체 설계와 개발만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회사다. 이들이 설계한 제품을 주문하면 파운드리에서 제품을 실제로 만든다.
정부가 4월에 내놓은 ‘시스템반도체 비전과 전략’에는 팹리스와 파운드리를 키워 시스템반도체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목표와 세부 계획들이 담겼다.
하지만 박 교수는 정부의 지원정책이 시스템반도체산업 성장에서 가장 중요한 팹리스 지원보다 정부 지원 없이도 충분히 성장할 수 있는 파운드리에 집중됐다고 꼬집고 있다.
- 정부의 시스템반도체(특히 팹리스 분야) 육성정책을 어떻게 보는지?
“이전부터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사업을 추진하고 있었다. 대기업은 지원 없이도 충분히 자생적으로 사업을 키워나갈 수 있는데 정부가 삼성전자에 세제 지원해 줄 돈으로 팹리스 지원을 해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아쉬운 생각이 든다.”
팹리스 지원정책은 이전에도 몇 차례 나온 적이 있지만 큰 효과를 얻지 못한 것으로 평가된다. 현재 다수의 국내 팹리스들은 실적 부진과 연구개발비 부족, 만성적 인력난 등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 정부도 팹리스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지원정책에 반영하고 있는데 뭐가 문제라고 보는가?
“팹리스가 중요하다는 점은 누구나 공감한다. 하지만 시스템반도체산업 전반에 관한 철저한 분석이 필요하다.
국내에서 팹리스가 왜 안 되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정부가 삼성전자와 팹리스를 지원하는 액수를 따져보면 비교가 안 된다. 삼성전자가 받게 되는 파운드리 세제혜택은 20조 원이 넘는 반면 팹리스 지원의 연구개발 지원은 기껏해야 몇 천억 원 수준이다. 자금 지원이 절실한 곳보다 돈이 충분히 있는 쪽에 집중된 것이다.”
정부의 시스템반도체 지원정책에는 파운드리 시설투자에 관한 세제혜택을 제공하는 내용이 들어있다.
삼성전자는 최근 시스템반도체 분야 연구개발비로 10년 동안 73조 원을 투자할 것이란 계획을 밝혔다. 조세특례제한법에 따라 30%의 세액공제 혜택을 적용하면 22조 원을 절약하는 효과가 있는 셈이다.
- 삼성전자 등 대기업 지원과 상생협력방안이 꼭 나쁜 것은 아니지 않나?
“실질적 상생협력이 안 된다. 삼성전자 등 국내 파운드리도 국내 팹리스와 협업하기보다 외국의 기술력 높은 팹리스의 설계를 들고와 쓰는 사례가 많다. 기업으로서는 적은 비용으로 가장 큰 효과를 내야 하기 때문에 당연히 그럴 수는 있다고 본다.
더 큰 문제는 기술탈취 우려가 크다는 점이다.”
일부 국내 팹리스는 기술탈취 우려 때문에 국내 파운드리를 놔두고 대만 등에 위탁생산을 부탁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박 교수는 “중소 규모의 팹리스가 힘들게 기술을 개발해 설계도를 만들어 파운드리에 맡겼는데 파운드리가 설계도를 훔쳐서 자기가 직접 하려고 하면 중소 규모의 팹리스들이 성장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 앞으로 정부가 어떤 식으로 시스템반도체정책을 추진해야 할까?
“현재 팹리스가 사업하기 좋은 환경이 아니다. 대기업 중심인 파운드리의 기술탈취를 막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도 부족하다. 팹리스가 공들여 개발한 기술을 대기업이 거저 들고가는 기술탈취를 막는 제도적 장치가 가장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또 정부가 팹리스와 삼성전자 등 파운드리를 잘 연결해 줘야 한다. 특히 정부가 자체적으로 구매하는 시스템반도체에는 국내 팹리스를 우대하는 방안을 검토해 보면 좋을 것 같다.”
박 교수는 1965년 경상남도 밀양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같은 학교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예일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정책위원장과 대통령직속 국민경제자문회의 거시경제분과 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반도체배치설계심의조정위원회 심의위원과 한국산업조직학회 편집위원을 지냈다. [비즈니스포스트 류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