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의 상처는 아물어도 말의 상처는 아물지 않는다.’
말이 지닌 충격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는 몽골 속담이다. 리더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말 한마디가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줄지 주의해야 한다.
오세정 서울대 총장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교육부의 권고안인 ‘30% 정시전형 확대안’을 ‘패자부활전’의 의미로 수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민국 최고대학 총장의 말 한마디로 정시전형을 준비하는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한순간에 ‘패자’와 '패자의 부모'가 됐다.
시민단체에서는 오 총장의 발언이 정시전형을 준비하는 학생들을 위축하고 열등감을 품게 만드는 비교육적 발언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오 총장이 패자부활전이라고 표현한 정시전형은 지난해 7월 학생들과 학부모, 교육부가 수시전형의 불공정과 학생들의 지나친 대학입시 부담에 공감하며 비중 확대를 요구한 방안이다.
대학 수시전형에서 각종 입시비리가 적발되며 수시전형의 불공정성이 국민들에게 알려졌다.
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뒤 어렵사리 국민적 공감대를 모은 방안을 오 총장은 단칼에 실패자들의 눈물잔치라고 비웃은 셈이 됐다.
물론 수시전형이 각계각층의 훌륭한 인재를 골고루 뽑을 수 있는 올바른 입시전형이라는 신념을 품을 수는 있다.
그러나 무심결에 내뱉은 '패자부활전'이라는 단어에 이제까지 엘리트 과정을 밟아오며 지녔던 엘리트주의가 무의식적으로 반영된 것은 아닌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엘리트인 오 총장의 속내에 수시전형이 옳은 것이니 옳지 않은 정시전형은 패자들을 억지로 거둬들이는 것에 불과하다는 오만이 담길 수 있다는 것이다.
오 총장은 경기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했고 대입 예비고사에서도 전국 수석을 차지했다. 대학도 수석으로 입학해 수석으로 졸업했다.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물리학과로 유학을 가서도 유일한 동양인으로서 박사과정 자격시험에서 1등을 차지했다.
단 한 번도 수석을 놓치지 않은 오 총장에게 패자라는 단어의 '무게감'이 제대로 느껴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패자부활전'을 말하기 전에 인상 깊게 읽었다고 이야기한 사르트르의 ‘지식인을 위한 변명’의 내용을 되돌아 봤어야 한다.
프랑스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지식인은 버림받은 계층을 위해 스르로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대중에게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들의 관점에서 그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다.
오 총장은 수시전형이 다양한 배경의 학생들을 뽑기 위한 최적의 수단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다양한 배경의 학생들을 뽑는다는 것은 칭찬받을 일이다.
하지만 최근 입시비리 사태들을 통해 수시전형은 오히려 불공정하고 불투명하다는 국민들의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다. 오 총장에게는 수시전형이 최적의 입시 전형일지라도 학생과 학부모들에게는 아닐 수 있다.
오 총장이 수시전형에 의구심을 품는 이들의 입장에서 그들의 문제를 되돌아 봤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비즈니스포스트 백승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