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시대 개막을 앞둔 국민연금의 앞길에 안개가 꼈다. 국민연금의 전주 이전이 급물살을 타면서 인력 이탈이 가속화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성과급이라는 당근을 앞세워 이탈을 막아보려고 애쓰지만 별 소용이 없다.

  국민연금 전주 이전, 떠나는 투자 전문가  
▲ 최광 국민연금관리공단 이사장
8일 국민연금공단과 한국투자공사에 따르면 한국투자증권이 25명을 선발할 계획인 상반기 신입경력사원 모집에서 국민연금 운용역 10여 명이 지원했다. 한국투자공사는 정부의 외화 자산을 운용하는 기관이다.

국민연금 기금본부 관계자는 국민연금 인력이 한국투자공사로 대거 이탈하고 있는 현상에 대해 “한국투자공사도 국민연금과 똑같이 공공기관이기 때문에 퇴직 후 이직 제한을 받고 연봉도 비슷한 수준”이라면서도 “그동안 한국투자공사로 옮길 이유가 없었지만 한국투자공사는 서울에 있고 국민연금은 전주로 이전하게 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지난 2월 국내 실물투자를 전담해온 고용호 대체투자팀장이 싱가포르투자청 한국사무소로 이직했다.
 
국민연금공단이 전주시대 개막을 준비하면서 인력 이탈 조짐이 눈에 띄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전라북도 지역발전위원회가 1월 공공기관 지방이전 계획변경안을 의결하면서 국민연금의 전주 이전을 위한 행정절차가 마무리됐다. 이제 국토교통부가 국민연금의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에 통보하는 일만이 남았다. 국민연금은 2015년 연금본부를, 2016년 말 기금운영본부를 신청사로 옮기면 전주 이전을 완료한다.

국민연금에서 국내투자 전문 인력과 해외투자 전문 인력까지 빠져나가기 시작하면서 국민연금의 위기론이 대두되고 있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해외투자를 늘려야 하는 때 이를 맡을 전문가들이 사라지고 있다”며 “전주 기피 현상으로 대체 인력을 찾기 어려워 장기적으로 수익률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전주 이전에 따른 인력 이탈이 나타나기 전부터 국민연금의 인력 부족은 문제점으로 지적돼 왔다.


국민연금의 규모는 올해 말까지 482조 원으로 늘어나는데 이중 327조 원을 직접 투자하는 방식으로 운용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투자금을 운용하는 기금운용본부 정원이 156명에 불과해 1인당 운용자산이 2조1천억 원에 육박한다. 선진국의 경우 1인당 운용자산이 1조원 대에 못 미치는 수준이다.

최광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2015년부터 2년 동안 100명씩 기금운용본부 정원을 확충해 나가야 할 것”이라는 계획을 밝힌 것도 이를 고려한 것이다. 하지만 인력을 채우기는커녕 있는 인력마저 전주 이전이 가시화되면서 하나둘씩 빠져나가고 있어 최 이사장의 구상이 현실화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국민연금은 전주 이전으로 인한 인력 유출을 우려해 이미 연봉 체계를 개편했다. 그런데도 인력 유출이 가속화되는 양상을 보이자 연봉 체계 개편의 기대 효과가 크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최광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지난해 10월 국민연금의 연봉 체계에 대해 “본봉은 시중의 80~90%만 돼도 경쟁력 있다고 본다”면서 “성과급을 시장에서 주는 수준에 맞춘다면 연금 납부자들에게 나쁠 리 없고 (전주로 이전한다 해도) 인력 유출도 생기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국민연금은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와 함께 성과급 지급률을 기본급 대비 25% 수준으로 올리는 내용의 임금 체계 현실화 방안을 마련하고 나섰다. 이번에 국민연금 인력들이 옮기려 하는 한국투자공사의 경우 성과급 지급률 상한선은 200%이며 실제 지급률도 30~40%로 알려졌다.

하지만 국내 최대 연기금을 운용한다는 자부심도, 우는 애 달래기 식의 성과급 체계 개편도 전주 이전을 부담스러워하는 국민연금 인력들의 이탈 발길을 잡기에 역부족이었다고 업계는 해석한다.

전주 이전에 따른 인력 유출 문제와 함께 국민연금의 고질적 문제점인 독립성 문제도 다시금 거론되고 있다.


국민연금의 기금운용본부는 보건복지부의 산하기관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국민연금이 정부로부터 독립성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의결권을 행사할 경우 정부가 연기금을 통해 기업경영에 불필요한 간섭을 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또 정부의 필요에 의해 연기금이 투입되는 경우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국토교통부는 연 4% 대 수익률을 보장한다면서 임대주택 리츠 사업에 국민연금 참여를 요청했다. 국민연금은 연 목표 수익률을 6% 대로 설정하고 있어 아직 사업 참여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