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업계에 따르면 늦어도 내년 초면 조선사들과 철강사들이 2019년 상반기분의 후판 가격 협상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후판 가격을 결정하는 협상은 업체별로 반기마다 이뤄진다.
후판은 선박을 만들 데 쓰이는 두께 6㎜ 이상의 두꺼운 철판이다. 선종에 따라 제조 원가의 15~30%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크다 보니 조선사들이 가격 변동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특히 포스코와 현대중공업은 ‘후판 가격 줄다리기’의 선봉이라고 할 수 있다. 두 회사가 각 업계를 대표하는 만큼 여기서 결정된 가격이 다른 업체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최정우 포스코 대표이사 회장이 10일 울산조선소를 찾아 권오갑 현대중공업지주 대표이사 부회장과 강환구 현대중공업 대표이사 사장 등을 만난 것도 후판 가격을 둔 ‘눈치싸움’의 전초전이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철강업계는 2016년 하반기부터 꾸준히 국내 조선용 후판 가격을 인상해왔다. 현대중공업 반기 보고서에 따르면 상반기에 후판 등 강판의 유통가격은 76만6천 원이다. 2016년 상반기에는 54만4천 원이었는데 40% 이상이 뛰었다.
올해 하반기에도 후판 가격은 기존의 톤당 65만~70만 원에서 70만~75만 원으로 올랐다. 두 업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협상이 2개월 정도 늘어지기도 했지만 철강사들은 유통업체에 공급하는 후판 가격을 높이는 등 우회적 압박을 총동원했다.
증권업계는 포스코 등 철강사들이 내년에도 후판 가격 인상을 이어갈 수 있다고 본다. 백영찬 KB증권 연구원은 “국내 철강기업들은 국제유가 강세에 따른 해양 플랜트 수주 확대와 조선 발주량의 지속적 증가로 2019년에도 후판 가격을 추가로 올릴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가격을 올리면 여섯 반기 째인 만큼 조선사들이 협상에서 쉽사리 물러나지는 않을 것으로 여겨진다.
조선업계의 한 관계자는 “지금 현대중공업 등 국내 조선사들은 중국 조선사들의 낮은 인건비에 맞서기 위해 고정비 절감에 총력을 다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 와중에 원가까지 오르게 되면 부담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더욱이 조선사들은 사업 특성상 선박을 주문받고 인도하기까지 적게는 1년에서 길게는 3년 가까이 걸린다.
▲ 조선용 후판.
최근 선박 가격이 회복세이긴 하지만 지금 건조하는 배들은 과거 낮은 가격에 수주한 배들이다보니 당시 예상했던 가격보다 비싼 후판을 쓰게 된다.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에 따르면 국내 조선사들은 연간 420만 톤에 이르는 후판을 쓴다. 조선사별로 건조 선종의 비중이 달라 정확한 영향을 파악하기 어렵지만 상대적으로 현대중공업그룹이 후판 가격에 예민할 수 있다. 후판이 많이 쓰이는 유조선 비중이 경쟁사들에 비해 크기 때문이다.
이봉진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후판 가격이 10만 원 정도 상승했을 때 현대중공업그룹은 3천억 원,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은 각각 1400억 원~1800억 원 가량씩 원가 부담이 증가할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러나 철강회사들은 후판 가격 인상을 계속해서 밀어붙일 가능성이 높다. 원재료인 철광석 가격이 상승한 데다 그동안 손해를 보며 후판을 팔다가 올해 하반기에 가격을 올리고나서야 마진을 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조선용 후판은 10년 전 톤당 100만 원을 넘었지만 2011년부터 조선업황이 어두워지면서 가격이 반토막났다. 철강사들은 조선사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2013년 이후부터 3년 정도 후판 가격을 동결했다.
포스코 관계자는 "향후 후판 가격에 관해서는 아직 내부적으로 정해진 게 없어 말하기 힘들다"면서도 "워낙 오래 가격을 동결해온 만큼 최근 후판 가격을 올린 것은 인상이라기보다는 '가격 정상화'라고 보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고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