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고양시 저유소 화재사고는 과연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
경찰이 실화 혐의로 신청한 스리랑카인의 구속영장이 검찰에서 반려됐지만 여론은 안전관리의 취약을 들어 대한송유관공사를 향해 따가운 시선을 보내고 있다.
최준성 대한송유관공사 대표이사 사장은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할 것을 요청받았다. 대한송유관공사는 1990년 공기업으로 설립됐다가 2001년 민영화됐으며 현재는 SK그룹 계열사다.
10일 고양경찰서는 “중실화 혐의(큰 불을 낸 혐의)로 스리랑카 출신 노동자의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범죄를 저질렀다는 인과관계 소명이 부족하다며 검찰이 영장 신청을 반려했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7일 경기도 고양시의 대한송유관공사 저유소에서 화재가 일어나 17시간 만에 진화됐다.
스리랑카인은 저유소 바로 뒤 강매터널 공사현장에서 발파 작업을 하다 휴식시간에 불을 붙여 하늘로 띄우는 연등(풍등)을 주워 불을 붙이고 날렸다. 이 풍등이 저유소 탱크 옆 잔디에 떨어져 화재의 원인이 됐다.
그러나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는 10일 오후 3시 기준으로 스리랑카인의 선처를 요청하는 청원이 30건 이상 올라와 있다. 청원 대부분이 안전 규정 미비로 발생한 화재의 책임을 스리랑카인에게 돌리지 말라는 내용이다.
고양 저유소에는 불길에 취약한 유증기를 회수하는 장치가 설치돼 있지 않았다. 소방법에는 저유소에 유증기 회수장치를 설치해야 한다는 의무가 규정돼 있지 않다.
안전관리와 관련한 규정도 취약해 11년에 한 번씩 외부 전문가가 유류탱크를 직접 살펴보는 정밀검사를 하도록 돼있다. 그 밖의 점검은 송유관공사 측에서 해마다 한 차례 자체검사를 한 뒤 관할 소방서에 보고하는 것뿐이다.
저유소가 국가 중요시설로 분류된다면 정부 지침에 따라 해마다 두 차례씩 정밀검사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고양 저유소는 저장 유량이 490만 리터로 국가 중요시설 기준인 1억5천만 리터에 크게 미치지 못해 국가 중요시설로 분류되지 않았다.
정태황 한서대학교 교수는 “저유소를 국가 중요시설로 지정하는 기준을 낮춰 대부분 저유소가 철저한 안전 점검을 받도록 하거나 현행 11년 단위의 정밀검사 주기를 단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한송유관공사는 고양 저유소를 포함해 4개 저유소를 보유하고 있는데 공기업이 아닌 민영기업으로 정부 규제 이상의 자체 안전 규정을 만들 필요가 없다.
대한송유관공사는 1990년 설립 당시에는 공기업으로 출발했지만 2001년 민영화돼 SK그룹 계열사로 편입됐다. 현재 최대주주는 SK이노베이션으로 지분 41%를 보유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의 지분율은 9.76%에 불과하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이번 화재와 관련해 안전관리 실태를 따져 묻기 위해 최준성 대한송유관공사 대표이사 사장에게 행정안전부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할 것을 요청했다.
최 대표는 올해 1월 선임됐는데 2015년부터 2017년까지 SK이노베이션 재무실장을 지냈다. 최 대표가 국정감사에 출석한다면 이번 저유소 화재사고와 관련해 민영기업으로서 재정적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안전관리에 상대적으로 소홀한 것 아니냐는 질타를 받을 수도 있다.
한국산업조직학회가 2016년 산업통상자원부에 제출한 보고서 ‘석유유통 물류 시스템 개선방안 연구’에 따르면 대한송유관공사는 설립 직후부터 10년 동안 연 평균 880억 원을 시설에 투자했지만 SK그룹 계열사로 편입되고 나서는 연 평균 99억 원 투자에 그쳤다.
대한송유관공사는 9일 대국민 입장문을 내고 “외부인사를 포함한 전문가들로 구성된 안전기구를 만들어 사업장 안전점검을 실시하겠다”며 “법적·사회적 요구 수준을 넘어선 최고 수준의 안전설비 능력을 갖추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강용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