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달리기를 할 때 무작정 빨리 뛰었다가는 낭패를 본다. 체력 분배를 잘하지 않으면 지쳐서 나가 떨어진다.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은 이런 점을 잘 알고 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오래 달리기라면 1등을 놓치지 않았다.
그의 경영 스타일도 비슷해 보인다. ‘1등 금융그룹’ 자리를 되찾기 위해 적절한 시기를 재면서 숨을 고르고 있다.
6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신한금융지주는 올해 2분기에도 순이익 기준 업계 1위를 KB금융지주에 내준 것으로 파악된다.
증권가에서는 2분기 신한금융지주가 순이익 8800억 원, KB금융지주가 순이익 9200억 원을 거뒀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신한금융지주는 조 회장의 취임 직후인 지난해 2분기에 9년 만에 업계 2위로 밀려났다. 이번에도 뒤처지면 연속 5분기째가 된다.
취임하자마자 1위를 뺏긴 셈이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조 회장이 어느정도 내부 기틀을 다진 만큼 이제 선두 탈환을 위한 뜀박질에 속도를 붙일 것으로 바라보고 있다.
조 회장은 지난해 3월 임기를 시작했다. 신한은행에 행원으로 입사해 33년 만에 은행장까지 오른 정통 '신한맨'이다. 경영뿐 아니라 모든 일에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지론을 지니고 있다.
취미는 마라톤이다. 40세 넘어서 마라톤에 심취하면서 삶의 자세가 많이 바뀌었다고 한다. 꾸준한 준비, 중도를 지키는 과욕 조절의 미덕을 배웠다는 것이다.
실제로 조 회장은 취임 당시' 2020년까지 신한금융을 아시아 리딩금융그룹으로 만들겠다'고 말했지만 조급한 움직임보다는 초석부터 차근차근 쌓아왔다.
조 회장은 '2020 스마트 프로젝트'를 내걸고 은행과 비은행부문의 조화로운 성장, 글로컬리제이션(세계화와 현지화) 가속, 디지털 신한 등을 목표로 세우고 있다. 이를 위해 계열사별로 흩어져 있는 글로벌부문과 디지털부문을 매트릭스조직으로 재편해 지주 차원에서 총괄하는 등 '원 신한(One Shinhan)' 체제를 꾸렸다.
특히 지난해 신설한 '글로벌투자금융(GIB)'사업부문이 가파르게 약진하고 있다. 글로벌투자금융부문은 지주사와 금융투자, 은행 등 신한금융그룹 계열사의 투자은행(IB) 부문을 하나의 지휘체계로 묶은 조직이다. 조 회장은 비은행 계열의 수익을 높이한 해법을 자본시장에서 찾고 있는데 이런 노력의 일환으로 꼽힌다.
글로벌투자금융부문은 출범 5개월 만에 5680억 원 규모의 판교 알파돔시티 리츠(부동산간접투자상품) 사업을 따내 시선을 모았다.
1분기에도 글로벌투자금융부문의 영업이익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4.4% 늘어나면서 신한금융지주의 비은행부문 실적도 덩달아 좋아졌다. 1분기 기준 비은행 부문의 순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3.9%나 성장했다. 2020 스마트 프로젝트 목표의 하나인 '조화로운 성장'이 순조롭게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조 회장은 베트남 등 해외에서도 등 성장발판을 차곡차곡 마련하고 있다. 은행 기준으로 올해 1분기 해외 손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6% 증가했다.
특히 신한베트남은행은 국내 금융사의 해외진출 중 가장 크게 성공한 사례로 평가받는디. 지난해 말에는 HSBC(홍콩상하이은행)를 제치고 베트남 외국계은행 1위로 올라섰다.
조 회장은 ‘글로벌 큰손’인 외국 연기금과 글로벌 운용사들도 직접 찾아 투자도 권하고 있다.
4월에 아랍에미리트(UAE), 말레이시아, 싱가포르를, 6월 초에는 홍콩, 호주를 찾아 주요 연기금과 자산운용사 관계자들을 잇따라 만났다. 특히 신한금융 주식을 보유하지 않고 있는 외국 기관투자가들을 만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7월에는 미국과 캐나다 출장을 계획해 뒀다.
조 회장이 인수합병(M&A)에서 유리한 조건으로 자본을 조달하기 위해 해외 기관들의 관심을 높이려는 것으로 보인다.
신한금융지주는 근래 들어 주목할 만한 인수합병 움직임이 없었지만 여전히 인수합병시장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최근 ING생명 인수를 접으면서 어떤 매물을 선택할지를 놓고 관심이 더욱 커졌다.
대형 매물을 너끈히 인수할 수 있을 정도로 막대한 자금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한금융지주는 최근 인수합병 자금 조달을 위해 글로벌시장에서 5억 달러 규모의 신종자본증권 발행을 발표하는 등 '여유 실탄'이 2조 원을 넘는 것으로 평가된다.
다만 조 회장은 인수합병과 관련해서도 페이스 조절을 잊지 않고 있다. 그는 최근 주요 해외 주주들을 만난 자리에서 인수합병과 관련해 '부족한 비은행사업을 보강해야 하지만 절대 필요 이상의 자금을 투입하지 않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기업가들의 경쟁은 결승선이 없는 만큼 '막판 스퍼트'보다는 내실 유지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백두산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신한금융지주는 내공을 쌓고 있는 잠룡에 비견될만 하다”며 “글로벌투자금융(GIB), GMS(그룹고유자산운용) 등 매트릭스 조직을 통한 은행-비은행, 국내-해외 사이 협업체계를 구성해 중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사업모델을 구축해 놓았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고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