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열분리 당시만 하더라도 현대그룹을 차지한 정몽헌 회장이 현대가의 적통을 잇게 됐다는 평가가 많았다. 현대그룹의 모기업이자 상징과도 같은 현대건설을 현대그룹이 소유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건설이 부도를 맞고 채권단에 넘어가면서 현대그룹은 휘청대기 시작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현대아산이 주도하던 대북사업과 관련한 검찰 수사 과정에서 정몽헌 회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상황이 악화했다.
이후 대북사업 중단으로 현대아산의 성장이 사실상 멈춰버리기도 했으며 해운업 위기로 현대상선의 경영권까지 상실하며 현대그룹은 2016년 10월에 대기업집단에서 아예 제외됐다.
반면 현대차그룹의 성장세는 가팔랐다.
현대자동차는 현대그룹에 속해 있던 시절에는 주력 계열사의 위치를 차지하지 못했지만 2005년경부터 급격하게 사세가 커지기 시작했다.
현대차와 기아차는 2014년 전 세계에서 자동차를 800만5천 대 팔아 글로벌 완성차회사 가운데 5번째로 연간 판매량 800만 대를 돌파하는 등 승승장구했다.
최근 성장세가 둔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계열사 56개, 자산 222조6540억 원을 지녀 대기업집단 2위에 올라 있다.
현대중공업그룹도 대기업집단 상위권에 올라 있다. 현대중공업은 2002년 현대그룹 계열사인 현대미포조선과 함께 현대그룹으로부터 공식적으로 분리해 현대중공업그룹을 출범했다.
CJ투자증권(하이투자증권)과 현대종합상사, 현대오일뱅크 등을 인수하며 몸집을 불렸고 2000년대 후반에 조선업황 호황을 타 실적이 급증하기도 했다.
하지만 2014년경부터 조선업황이 부진에 빠지자 대규모 구조조정을 진행하는 등 사업에 한동안 부침을 겪었다. 현재 현대중공업지주를 지주회사로 하는 지배구조를 구축해 놓았다.
HDC그룹(옛 현대산업개발그룹)과 한라그룹 등도 모두 현대그룹에서 분리된 대기업집단이다.
◆ LG그룹, 계열분리 잡음 없기로 유명
구인회 명예회장과 허만정 명예회장이 공동창업해 일군 LG그룹도 계열분리 사례가 많은 편이다.
LG그룹에서 1999년 분리된 LG화재는 LIG그룹을 형성했으며 2003년에는 LG산전과 LG전선 등을 중심으로 LS그룹이 분리한다.
2005년에 허씨 일가의 GS그룹을 계열분리한 것이 마지막인데 이 과정에서 경영권 분쟁 등 잡음이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LG그룹은 소유와 경영을 잘 분리해 오너리스크가 거의 없는 회사로 평가받는다. 이미 지주회사 체제도 완전하게 구축해 놓은 상태로 2018년 현재 대기업집단 4위에 올라 있다.
LIG그룹은 LIG손해보험(현 KB손해보험)과 LIG생명(현 DGB생명)을 주축으로 LIG건설과 LIG넥스원 등을 보유해 비교적 탄탄한 회사로 여겨졌다. 하지만 오너일가의 LIG건설 사기성 기업어음(CP) 발행 사태가 발생한 뒤 금융 계열사를 팔게 되면서 사세가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반면 LS그룹과 GS그룹은 재계에서 비교적 탄탄한 입지를 구축하고 있다.
LS그룹은 전선과 산전사업을 주축으로 대기업집단 17위에 올라 있으며 GS그룹은 현금 창출원 역할을 하는 GS칼텍스를 비롯해 GS건설 등을 주력 계열사로 삼아 대기업집단 7위를 차지하고 있다.
◆ 순위권에서 사라진 대기업집단은?
잘 된 계열분리만 있는 것은 아니다.
무리하게 사세를 확장하다가 외환위기 이후 강제로 계열분리를 ‘당한’ 기업들은 현재 대부분 대기업집단 순위 상위권에서 밀려났다.
▲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대우그룹은 김우중 회장의 ‘세계경영’으로 1980년대부터 1990년대 말까지 재계 순위 2위를 유지했다.
하지만 대우그룹은 외환위기 사태 이전부터 불거졌던 유동성 문제를 감당하지 못하면서 2000년 12월에 크게 대우인터내셔널과 대우건설, 대우 등 3개로 분할되는 운명을 맞이한다.
대우그룹이 해체된 지 17년 6개월이 지난 상황에서 이제 대우라는 이름을 지닌 회사를 점차 찾아보기 힘들어지고 있다. 하지만 그룹이 유지될 때 잘 나갔던 계열사들은 여전히 ‘대우’라는 이름을 유지하고 재계에서 생존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과 대우건설은 각각 대기업집단 순위 23위와 33위에 올라 있다. 미래에셋대우도 증권업계 선두권 기업으로 꼽히며 포스코그룹에 인수된 대우인터내셔널도 현재 포스코대우라는 이름으로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쌍용그룹도 사실상 문어발식 경영과 과도한 부채를 감당하지 못해 강제로 ‘해체된’ 기업집단이다.
쌍용그룹은 시멘트기업인 쌍용양회를 모태로 제지와 해운, 정유, 중공업, 종합상사, 건설, 자동차까지 사업을 확장해 사세를 키웠다. 남광토건과 쌍용화재(현 흥국화재), 쌍용정유(현 에쓰오일), 쌍용투자증권(현 신한금융투자) 등이 모두 쌍용그룹 소속이었는데 한때 재계 순위 5위까지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쌍용자동차의 부진이 다른 계열사에게 큰 부담을 줬고 결국 채권단의 결정으로 쌍용그룹은 강제 구조조정과 매각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된다.
현재 쌍용이라는 이름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기업으로는 시멘트업계에서 양강체제를 구축하고 있는 쌍용양회와 오너일가인 김석준 회장이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쌍용건설 등이 있다.
한진그룹도 과거 항공뿐 아니라 중공업과 해운, 금융 등을 모두 아우를 때 재계에서 입지가 탄탄했다. 하지만 2002년 창업주였던 조중훈 회장이 사망한 뒤 아들들의 경영권 분쟁이 일어나면서 현재 위상은 예전같지 않다.
조양호 회장이 이끌고 있는 한진그룹만 재계 10위 안에 들뿐 조중훈 회장의 둘째 아들인 조남호 회장이 보유한 한진중공업그룹은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조양호 회장의 셋째 동생인 조수호 회장이 경영했던 한진해운은 2016년 청산됐다. [비즈니스포스트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