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연 기자 nuevacarta@businesspost.co.kr2018-06-11 16: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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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화폐 거래소의 해킹 사고가 연이어 일어나고 있지만 보험 가입이나 관련된 법안 정비 등이 미흡해 투자자 보호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내에서 운영되는 가상화폐 거래소는 60~70여 곳으로 추정되지만 사이버보험상품에 가입한 곳은 빗썸, 업비트, 코인원 등 몇몇 대형 거래소로 한정돼 있다.
▲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 60여 곳 가운데 사이버보험에 가입한 거래소는 빗썸, 업비트, 코인원 등 몇몇 대형 거래소에 불과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사진은 서울 중구의 한 가상화폐 시세 중계판 앞을 시민들이 지나가는 모습. <뉴시스>
이 거래소들이 가입한 상품도 전체 보상한도가 몇십억 원 수준에 머물러 해킹 등의 사고가 터졌을 때 투자자가 피해를 모두 보상받기 힘든 것으로 파악됐다.
빗썸은 2017년 10월 현대해상의 뉴사이버종합보험과 흥국화재의 개인정보유출 배상책임보험에 가입했는데 두 상품의 보상한도는 각각 30억 원이다.
업비트는 삼성화재의 개인정보유출 배상책임보험에 가입했는데 보상한도는 50억 원이다. 코인원은 현대해상의 뉴사이버시큐리티 사이버배상책임보험에 30억 원 한도로 가입했다.
손해보험사들은 가상화폐 거래소의 해킹 사고에 따른 위험성을 높게 판단해 가상화폐 보험에 소극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앞으로 보상한도를 높인 보험상품을 내놓을 가능성도 낮아 보인다.
가상화폐 거래소를 운영하는 회사들의 보안능력을 믿기 힘들고 한 번 해킹 사고가 터지면 피해액도 수백억 원으로 나타나 손해보험사의 부담이 크다는 것이다.
DB손해보험이 2017년 말 170억 원 규모의 해킹 사고가 터져 파산을 신청한 가상화폐 거래소 유빗(현 코인빈)에 보험금을 지급하는 여부를 놓고 법적 공방을 준비하고 있는 전례도 있다.
손해보험업계 관계자는 “가상화폐 거래와 관련된 보험은 잠재적 시장이긴 하지만 거래소를 운영하는 회사들의 보안 시스템 등을 신뢰하는 것이 아직 어렵다”며 “여러 해커집단도 가상화폐 거래소를 목표로 하고 있는 만큼 보험으로 인수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가상화폐 거래와 관련된 법안이나 가이드라인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도 해킹 사고 등에 따른 투자자의 피해를 줄이기 힘든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현재 국회에 계류된 가상화폐 관련 법안 5건에는 가상화폐 거래업자가 예치금을 금융기관에 맡기거나 피해보상계약을 체결해 사고로 투자자의 손해가 생기면 배상책임을 지는 내용 등이 제각기 들어가 있지만 본회의를 모두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가상화폐 거래소의 한 관계자는 “지금은 관련 법안이나 가이드라인이 없다 보니 가상화폐 거래소의 운영회사와 투자자가 서로를 믿기 힘든 상황”이라며 “보안에 관련된 가이드라인이라도 마련된다면 해킹 사고에 관련된 혼란도 훨씬 줄어들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가상화폐 거래소의 난립에 따른 해킹 사고 등의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인가제를 도입하거나 자기자본 등의 조건을 걸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천창민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가상화폐에 관련해 국회에 계류된 법안들을 평가하면서 “가상화폐 ‘거래업’을 대상으로 더욱 높은 자기자본을 요구하거나 거래금액의 규모에 비례해 자기자본을 차등적으로 요구하는 방안을 생각해 봐야 한다”고 제안했다.
가상화폐 거래소도 보안 강화와 자본금 확충 등으로 투자자를 보호할 수단과 능력을 자체적으로 키워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원종현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7일 서울 용산에서 열린 ‘2018 블록체인 코리아 컨퍼런스’에서 “투자자를 보호하려면 가상화폐 거래소의 자정 노력이 가장 필요하다”고 밝혔다.
유빗이 해킹 피해로 파산을 신청했을 당시 자본금 30억 원보다 많은 자본금을 보유한 거래소가 빗썸, 업비트, HTS코인, 비트포인트코리아 등 4곳뿐인 점을 들었다.
원 조사관은 “투자자 보호는 시장이나 블록체인사업의 안정적 성장을 위해 필요한 것으로 개별 상품이나 특정 대상을 보호하는 일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며 “가상화폐 거래소가 엄격한 청산과 결제뿐 아니라 시장을 자정하는 기능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규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