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구는 왜 부회장 인사를 수시로 할까  
 ▲ 정몽구 회장은 왜 연중무휴 수시인사를 하는 것일까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이 불쑥 부회장 인사를 내놓았다. 지난해 12월 말 정기인사를 한지 3개월이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두 번이나 부회장 인사를 꺼내 들었다. 지난 2월 최한영 현대차 상용담당 부회장이 전격적으로 물러났다. 그리고 3월17일 안병모 기아차 미국 판매법인 사장으로 부회장으로 올렸다.

연중무휴 수시인사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 이런 정 회장 인사 스타일을 놓고 글로벌 기업에 걸맞지 않는 ‘제왕적 인사’라는 비판도 나오고, 현대기아차의 실적을 만들어 낸 정 회장만의 독특한 인사 스타일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정 회장은 왜 부회장 인사를 수시로 하는 것일까?

◆ 정기인사 3개월도 못돼 부회장 퇴진과 승진 인사

정 회장은 지난 17일 안병모 기아차 미국 판매법인 사장을 부회장으로 승진하는 인사를 내놓았다. 지난해 연말 정기인사를 한 뒤 불과 3달만의 인사다. 지난 정기인사에서 부회장 인사를 내놓지 않았다가 이번에 안 사장을 부회장으로 올렸다. 현대기아차그룹은 북미시장 공략을 확대하기 위한 인사라고 설명했다.

지난 2월 최한영 현대차 상용담당 부회장이 물러났다. 최 부회장은 정 회장의 최측근 가신그룹으로 꼽힌다. 현대그룹 왕자의 난 때 정 회장을 곁을 변함없이 지켰고 2004년 그룹 전략조정실 사장으로 현대차의 기틀을 세우는 데 공헌했다. 현대기아차그룹은 후진을 위한 용퇴라고 밝혔다.

정 회장이 정기인사에서 부회장 인사를 하고 멈춘 지 벌써 4년이 지났다. 2009년 말 당시 김용환 현대차 사장과 정진수 현대모비스 사장을 부회장으로 승진한 게 마지막이다.

지난해 12월 현대기아차 정기인사를 앞두고 부회장 승진인사가 나올지 주목을 받았다. 현대차 137명, 기아차 53명, 계열사 229명 등 총 419명의 승진인사가 있었지만 역시 부회장 승진은 나오지 않았다. 당시 부회장 승진 조건이 갖춰진 사장들이 몇 있어 부회장 승진이 나올 것으로 점쳤는데도 결국 부회장 승진은 없었다.

이번 안병모 부회장 인사로 현대기아차 부회장은 다시 11명이 됐다. 지난 2월 최한영 부회장의 퇴진으로 10명으로 줄었는데 1개월 만에 다시 채운 것이다. 현대기아차그룹의 부회장은 설영흥 현대차 중국총괄 부회장,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 김용환 기획담당 부회장, 이형근 기아차 부회장, 양웅철 연구개발 부회장, 신종운 품질담당 부회장, 박승하 현대제철 부회장 등이다.

◆ 정몽구의 ‘6개월 인사 법칙’, 꺼진 불도 다시 보자

이번 인사로 정 회장의 연중무휴 수시인사가 또 입길에 올랐다. 정 회장은 정기인사를 할 때 부회장 인사를 하지 않고 수시로 부회장 인사를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는 부회장을 비롯해 임원들한테도 적용된다. 또 발탁승진인사 뿐만 아니라 내치는 인사도 수시로 한다. 하루 아침에 물러나게 했다가도 몇 달 지나 다시 불러들이기도 한다. 현대기아차그룹의 한 관계자는 “현대차는 다른 기업처럼 정기인사 개념이 없다”며 “수시로 이뤄지는 인사가 조직의 긴장감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정몽구는 왜 부회장 인사를 수시로 할까  
▲ 정몽구 회장


정 회장의 수시인사는 여러 말들을 만들어 냈다. "출장 가던 중 차 안에서 출장 목적지로 아예 발령이 났다"는 등의 믿지 못할 얘기도 나돈다.

또 ‘6개월 인사 법칙’이라는 말도 있다. 인사로 물러났다고 해도 6개월 안에 정 회장이 다시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6개월 안에 다시 찾지 않아야 정말 퇴직을 하는 것이니, 6개월 안에는 다른 직장도 찾지 말고 휴대폰도 바꿔서는 안된다는 얘기다. 정 회장의 제왕적 인사 스타일을 여실히 보여주는 말이다. 정 회장은 최근 현대기아차그룹의 ‘품질 전문가’ 권문식 사장을 내친 뒤 3개월 만에 다시 불러들이기도 했다.

특히 부회장을 놓고 수시인사를 하는 것은 정 회장의 그룹 통치 스타일과 맞닿아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 회장은 그룹 2인자를 허용하지 않는다. 여러 명의 부회장들을 두고 힘을 나눠 주며 이들의 적절한 견제를 통해 통치해 부회장들이 충성을 다 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정 회장이 정기인사에서 부회장 인사를 하지 않는 것도 이런 그룹 통치술이라는 얘기다.

정 회장의 수시인사 역사는 꽤 오래 됐다.

2004년 6월 당시 박황호 현대차 사장을 돌연 퇴임시키더니, 7월에는 전현찬 김중성 현대차 부사장을 물러나게 했다. 2005년에도 수시인사는 줄을 이었다. 2004년 12월 정기인사가 있은 지 한 달도 안 된 2005년 1월 윤국진 기아차 사장이 옷을 벗었다.

2008년 4월 김용문 전 현대우주항공 사장을 현대차그룹 기획조정실장(부회장)으로 돌연 임명하기도 했다. 2009년 1월19일, 연말 정기인사를 단행한지 3주 만에 서병기(품질담당), 최재국(국내외 영업담당) 부회장을 고문으로 밀어냈다. 당시 최재국 부회장은 부회장직에 오른 지 두 달여밖에 되지 않았다. 김용문 기획조정실장도 6개월 만에 계열사로 자리를 옮겼다가 2009년 11월 결국 물러났다.

◆ 정몽구 인사, 부끄럽다 VS 실적으로 증명됐다

정 회장의 이런 인사 스타일에 대한 비판은 높다. 너무 즉흥적이라는 것이다.

비즈니스위크는 정몽구 회장 등이 미국 CEO에 비해 훨씬 권위적으로 회사를 운영한다고 대놓고 비판하기도 했다. 다른 그룹의 한 임원은 “현대기아차가 워낙 실적이 좋아 정 회장의 제왕적 수시인사에 대해 비판하기는 뭐하지만 글로벌기업으로서 좀 창피한 일”이라고 고개를 흔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인사 스타일이 그룹에 긴장도를 높이고 생산성을 올리는 측면이 있다고 옹호하는 목소리도 있다. 무엇보다 현대기아차 실적이 말해준다는 것이다. 현대기아차그룹은 2005년 4월 공정위에서 발표한 재벌 순위에서 삼성그룹에 이어 2위로 올라섰고 그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현대기아차가 이런 반열에 오를 수 있는 데 정 회장의 독특한 인사 스타일도 한몫을 했다는 분석이다. 인사 수요가 발생할 때 곧바로 대응해 업무 공백이 발생하지 않고 신상필벌 인사를 통해 생산성을 높이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현대차기아그룹의 한 관계자는 “수시인사는 확실한 신상필벌과 스피드 경영, 현장경영을 중시하는 정 회장 특유의 인사방식”이라며 “지금까지 좋은 성과를 내왔다”고 말했다.

◆ 안병모 북미시장 책임져라, 정몽구의 당근과 채찍

이번에 부회장에 오른 안병모 부회장도 필요할 때 수시로 인사를 하는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안 부회장은 북미 지역에서 잔뼈가 굵은 해외 영업통이다. 정 회장은 북미 영업통인 안 부회장을 통해 기아차의 북미시장 부진을 만회하려고 하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기아차는 미국시장에서 총 53만5179대를 판매했다. 전년대비 4.0% 감소했다. 현대기아차의 지난해 미국시장 판매량은 전년 대비 0.4% 줄어든 125만6962대였는데, 현대차는 2.5% 성장을 했지만 기아차의 부진으로 발목을 잡은 셈이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부회장 승진이라는 인사 카드를 꺼내들어 조직에 긴장을 넣고 책임을 묻겠다는 뜻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정몽구는 왜 부회장 인사를 수시로 할까  
▲ 안병모 기아차 부회장
안 부회장의 승진은 여러 의미가 있다. 미국법인 사장이 부회장으로 승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또 해외통으로 현대차그룹 부회장에 오른 것은 설영흥 중국총괄 부회장 이후 두 번째다. 설 부회장은 중국시장에서 현대기아차 판매를 늘린 공을 인정받아 2004년 부회장이 된 뒤 11년째 부회장직을 맡고 있다.

안 부회장은 한국외대 스페인어학과 졸업 후 1977년 현대정공(현 현대모비스)에서 입사해 1998년 이후 기아차 미국법인과 캐나다법인, 기아차 북미지역본부장(전무) 등을 지내며 북미 자동차시장을 맡아 개척했다.

2001년 정 회장의 눈에 들어 현대차 앨라배마 공장 건설의 실무총괄을 맡았고 2005년 기아차 조지아 공장 건설을 위해 기아차 해외프로젝트담당 부사장으로 일했다. 2008년 기아차 생산 및 판매를 동시에 최초로 책임지는 사장이 돼 북미에서 기아차의 영업과 마케팅을 괄목하게 성장시켰다. 안 부회장이 당시 사장이 되고 불과 10개월 만에 기아차의 시장 점유율은 2.1%에서 3.8%로 늘어났다.

안 부회장은 정 회장과 함께 미국 자동차전문지 오토모티브 뉴스가 선정하는 2011년을 빛낸 최고의 자동차 CEO에 오른 인물이기도 하다. 오토모티브 뉴스는 해마다 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자동차 관련 인사들을 대상으로 '올스타'를 뽑아 발표하는데, 정몽구 회장은 아시아를 대표하는 CEO, 안병모 부회장은 북미의 아시아 CEO로 선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