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과 진에어 등 한진그룹 계열사 직원들이 조양호 회장 일가의 갑횡포와 비리 의혹을 쏟아내고 있다.  

이들은 왜 그동안 침묵했을까?
 
대한항공 직원들은 왜 그동안 오너일가의 일탈에 침묵했나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20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대한항공이 그동안 권위적 조직문화가 고착화된 탓에 오너일가의 일탈적 행위에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는 말이 나온다.

대한항공은 항공사업에서 독점적 지위를 누리며 성장해왔다. 여기에 조양호 회장과 자녀 등 오너일가를 중심으로 한 사실상 가족경영체제로 운영되면서 조직 내부의 통제 시스템이 전혀 작동하지 않게 됐다는 것이다.

또 항공사업이 승객의 생명을 담보로 한 대표적 서비스 직종이란 점도 작용했다.   

항공업계의 한 관계자는 "대한항공은 조양호 회장의 '대한왕국'이란 말이 나올 정도"라며 "직원들은 오너 일가가 시키는 일이면 아무리 부당한 일이라도 참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2014년 항공기 회항 사건의 피해 당사자였던 박창진 대한항공 사무장은 최근 인스타그램에 뒷통수에 생긴 혹을 올리고 “이 혹은 아픈척 한다는, 꾀병 부린다는, 목 통증으로 업무 도움을 요청한 일을 후배 부려 먹는다는 소문을 만들던 직원들 비난이 난무했던 지난 시간의 흔적”이라며 “올해 들어 너무 커져서 수술을 한다”고 말했다.

박 사무장은 2014년 말 항공기 회항 사건으로 대한항공 최초의 내부고발자가 됐다. 그는 사건 이후 대한항공의 인사와 업무배정 등에서 불이익을 받았다며 대한항공을 상대로 부당징계 무효확인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박 사무장은 17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심상정 정의당 의원, 전국공공운수노조와 기자회견을 열고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의 갑횡포를 놓고 “만연하고, 모두 눈감고 있던 일이 지금 터져나왔을 뿐”이라며 “대한항공이 내부적으로 오너 일가의 권력과 오만, 독단을 견제할 만한 구조적 체계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오너 3세들이 갑횡포를 계속 지속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대한항공은 1962년 6월 옛 대한항공공사로 설립됐으며 1969년 3월 국영에서 민영으로 전환됐다.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는 박정희 전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인수 제안을 받고 대한항공공사를 인수했다.

박정희 정권 아래에서 설립한 조직으로 민영화한 뒤 조직체계를 갖추는 일도 박정희 정권 아래 이뤄졌다.

그 뒤 법정관리나 자율협약 등 뚜렷한 구조조정의 계기를 겪지 않고 지속적으로 몸집을 키워 왔다.

대한항공은 전문경영인체제를 갖출 기회도 있었지만 나아가지 못했다.

1990년대 후반 항공기 사고가 자주 일어나 지배구조 논란이 불거졌고 1999년 조중훈 창업주가 경영에서 물러났다. 조양호 회장도 당시 사장에서 물러났지만 실무를 맡지 않는다는 명목을 내세워 대표이사 회장에 올랐다.

조양호 회장은 그 뒤 지금까지 대한항공 대표이사 회장을 맡고 있다.

조양호 회장과 그 부인 이명희 일우재단 이사장,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 등 한진그룹 일가가 갑횡포를 부렸다거나 비리를 저질렀다는 폭로는 지속적으로 터져나오고 있다. 

수년 전 사건들 녹음파일까지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는 것만 봐도 직원들이 그동안 장기간에 걸쳐 오너일가의 갑횡포에 시달려왔다는 방증으로 풀이된다. 
 
대한항공 직원들은 왜 그동안 오너일가의 일탈에 침묵했나

▲ (왼쪽부터)조현아 칼호텔네트워크 사장, 조원태 대한항공 대표이사 사장,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


KBS는 19일 조현민 전무로 추정되는 인물이 진에어 본사 회의에서 직원들에 협박과 폭언을 하는 녹음파일을 공개했다.

조현민 전무로 추정되는 인물은 녹음파일에서 “당신 월급에서 까요, 그러면. 월급에서 깔 까? 징계해! 나 이거 가만히 못 놔둬. 어딜! 징계하세요. 어디서~!”라며 협박을 하거나 “XX 시끄러워!” 등 욕설을 하기도 했다.

한진그룹 오너일가의 행태는 조직 내부에서 제동이 걸리지 않으면서 도덕적 일탈의 수준을 넘어설 조짐도 보인다.  

관세청은 한진그룹 오너일가의 밀수 의혹을 정식 조사하기에 앞서 해외 신용카드 사용내역을 들여다보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조현민 전무가 진에어 등기이사에 불법으로 재직한 사실을 파악하지 못한 점을 놓고 감사를 진행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박경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