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을 은행에 쌓아 놓는 것은 ‘보장된 손실(guaranteed loss)이다.”
존 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이사의 지론이다. 월급쟁이가 부자 되기란 하늘의 별따기이니 주식 투자로 ‘자산’이 대신 일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스타 펀드매니저 출신답다.
하지만 요즘 메리츠자산운용 펀드에 들어간 자산은 성적표가 좋지 못하다. 수익률이 낮아져 투자자들이 등을 돌리면서 회사 순이익도 반토막이 났다.
리 대표는 단기수익률이 떨어진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며 투자자들의 마음을 되찾기 위해 애쓰고 있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메리츠자산운용은 펀드 수탁고를 늘리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존 리 대표 역시 3월부터 전국 버스투어를 통해 직접 강연을 하면서 펀드 홍보에 나섰다. 간단히 말하면 ‘주식에 투자하라’는 캠페인이다.
여기서 투자자들에게 직접 상품도 판매한다. 증권사와 은행 등 판매회사를 통하지 않는 직접 판매인 만큼 판매수수료는 기존 판매사의 10분의 1 수준으로 낮췄다.
메리츠자산운용 관계자는 "리 대표가 버스투어에 모두는 아니어도 되도록이면 많이 참여하려고 한다"며 "직접 판매하는 펀드는 ‘메리츠 주니어’ ‘메리츠 시니어’ ‘메리츠 샐러리맨’ 등 3가지"라고 말했다.
이 세 펀드는 중순부터 올해 4월까지 줄줄이 출시됐다. 운용수수료가 낮은 대신 환매(펀드 투자자가 만기일 전에 투자지분을 회수하는 것)수수료를 높여 장기투자를 유도하는 것이 특징이다. 세 펀드 모두 리 대표가 직접 운용한다.
이런 공격적 전략은 최근 회사 실적이 맥을 못추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메리츠금융지주는 지난해 주요 계열사들이 승승장구하면서 영업이익 1조 원을 넘겼지만 유독 메리츠자산운용만 부진한 성적을 거뒀다.
메리츠자산운용은 지난해 순이익이 63% 이상 떨어지면서 10억 원에 그쳤다. 리 대표가 2013년 말 취임하면서 2년 만에 순이익이 7억 원에서 66억 원으로 10배 가까이 뛰었는데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셈이다.
펀드 수익률이 떨어지자 투자자들이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2013년 설정한 간판펀드인 메리츠코리아펀드는 한때 수익률 40% 이상의 수익률을 보였는데 2016년 –22%로 수직하락했다. 지난해 16%로 다시 오르면서 체면치레를 하긴 했지만 같은 유형 펀드들의 평균 수익률이 20%였던 것과 비교하면 궁색한 수준이다.
더 큰 문제는 '주식은 길게 봐야 한다'는 리 대표의 투자 철학이 단기투자에 익숙한 국내 투자자들의 외면을 받고 있다는 점아다. 일부 시중은행들은 메리츠자산운용 펀드를 팔지 않겠다는 방침을 세우기도 했다.
2년 전만 해도 리 대표는 ‘수익률 만년 꼴찌’ 메리츠자산운용을 완전히 바꿔놨다며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는 취임 1년 만에 마이너스였던 수익률을 업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김용범 메리츠화재 부회장이 “메리츠금융지주에 합류해서 가장 잘한 일은 존 리 대표를 영입한 것”이라고 했을 정도다.
실제로 리 대표는 미국 월스트리트에서 스타 펀드매니저로 이름을 날렸던 인물이다. 본명은 이정복씨다.
‘주식은 파는 게 아니라 사는 것이고 기업과 동업하는 것’이라는 게 그의 신념이다. 하루하루 수익률에 매달리는 단기투자는 도박과 다름없다는 것이다.
주식은 잘못 샀거나, 이유없이 오르거나, 더 사고싶은 주식이 생겼는데 돈이 없을 때, 이 3가지 경우에만 팔아야 한다고 리 대표는 말한다. 그는 “가상화폐 열기는 투기”라며 “한국의 금융과 투자 문화가 열악한 수준임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런 투자 철학은 미국 스커드스티븐스앤드클라크(스커드)에서 배웠다.
리 대표는 연세대 경제학과를 1980년대 초 자퇴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대에서 회계학을 전공했다. 회계사로 꼬박 7년을 일하다 같은 건물에 있던 스커드에 이력서를 넣었다.
아이비리그 출신이 아니면 명함도 못 내민다는 곳이었다.
그러나 리 대표는 면접에서 임원의 반응이 미지근하자 “내가 앞으로 엄청난 돈을 벌어줄 텐데 당신은 지금 인생 최대의 실수를 하고 있다”고 '으름장'을 놓았다고 한다. 결국 입사에 성공했다.
그는 약속을 지켰다. 리 대표는 세계 최초의 외국인 전용 한국투자펀드인 ‘코리아펀드’를 1991년 설립자로부터 넘겨받아 15년 동안 운영했는데 누적 수익률이 1600%에 육박했다. SK텔레콤과 삼성전자 주식을 사서 10년 만에 각각 140배와 70배의 수익을 올린 사실은 유명하다.
4년 전에는 이런 투자 철학을 한국에 전하겠다며 메리츠자산운용에 합류했다.
리 대표는 ‘커피 마시지 말고 자동차 사지 말고 주식부터 사라’며 ‘금융교육 전도사’를 자청하고 있다.
주식 장기투자는 국가적 과제라고 리 대표는 본다. 노후대책이 없어 은퇴하지 못하는 이가 이렇게 많은 나라는 사실상 대한민국밖에 없는데 제대로 된 주식 투자문화가 자리잡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리 대표는 칼럼에서 “돈으로부터 자유로워질 때야 삶이 여유로워지고 행복해질 수 있다”며 “사람들은 누구나 부자가 되고 싶어 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가난해지는 길을 걸어갈 때가 많다”고 말하기도 했다.
‘Road to Financial Freedom(경제적 자유로 가는 길).’ 리 대표는 버스에도 이런 문구를 달았다. 물론 보장된 길은 없다는 것을 주식 투자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고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