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갑 현대중공업지주 대표이사 부회장은 정 부사장에게 ‘정주영 상업DNA’가 흐르고 있다는 점을 대외적으로 보여줘 현대중공업그룹이 다시 오너경영인체제로 돌아갈 수 있도록 초석을 놓을 것으로 보인다.
현대로보틱스가 30일 정기주주총회를 열고 회사이름을 현대중공업지주로 바꾸는 안건을 승인받았다. 현대로보틱스가 산업용로봇회사보다 현대중공업그룹 지주사로서 더 부각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권 부회장이 현대중공업그룹 지주사 수장으로서 계열사 관계 조율과 그룹 경영을 이끌고 사내이사에 재선임된 윤중근 사장이 산업용로봇사업을 이끄는 방식으로 역할분담이 이뤄지는 것으로 파악된다.
권 부회장은 정기선 현대중공업 부회장 겸 현대글로벌서비스 대표이사가 경영권을 물려받을 수 있도록 징검다리를 놓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정 부사장은 지난해 말 이뤄진 정기인사에서 승진하고 현대글로벌서비스 대표이사를 맡아 경영전면에 나섰다. 정 부사장은 29일 현대중공업지주 지분 5.1%를 사서 3대주주에 오르기도 했는데 경영권 승계의 신호탄이나 마찬가지다.
정동익 KB증권 연구원은 “정 부사장이 현대중공업지주 지분을 매입한 것은 현대중공업그룹이 경영권 승계작업을 본격화한 것”이라고 말했다. 아버지인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과 정 부사장의 지분을 합치면 정몽준 이사장과 정 부사장 부자의 현대중공업지주 지분은 30.9%가 된다.
권 부회장이 현대중공업 수장으로서 오랫동안 선박사업을 이끌어온 만큼 정 부사장이 사업적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길을 트는 데 힘을 쏟을 것으로 전망된다.
현대글로벌서비스는 스마트십을 개발하고 선박 사후관리 서비스, 선박 기자재 공급 등을 주력사업으로 삼고 있다. 현대글로벌서비스는 현대중공업과 협력할 수 있는 부분이 더 많은데도 현대중공업지주의 100% 자회사로 들어가 있다.
정 부사장이 만 35세로 아직 젊은 만큼 권 부회장의 후원을 받으며 현대중공업그룹 후계자로서 입지를 넓혀나갈 것으로 보인다.
정 부사장이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사업DNA를 이어받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현대중공업그룹이 오너경영인체제로 돌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명분이다.
정몽준 이사장은 2014년까지만 해도 “현대중공업이 전문경영인제제로 운영되고 있는 덕분에 어떤 변화가 생겨도 계속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며 전문경영인체제에 자신감을 보였다.
정 부사장이 현대중공업그룹 경영을 맡게 되면 이런 기조를 거스르는 것인 만큼 그가 전문경영인보다 뛰어난 사업적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점을 보여줘야 한다.
권 부회장이 30일 열린 정기주주총회에서 전문경영인체제를 확고히 하겠다고 말한 것도 이런 시선을 의식한 것일 수도 있다.
권 부회장은 주주총회 인사말로 "현대중공업지주가 앞으로 전문경영인체제를 더욱 확고히 할 것"이라며 "각 회사가 책임경영과 독립경영을 실천함으로서 글로벌 선도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