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영채 NH투자증권 대표이사 사장이 23일 서울 여의도 NH투자증권 사옥에서 열린 취임 기념 기자간담회를 앞두고 기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
금융권에서는 흔히 대우증권을 ‘증권사관학교’라고 부른다.
지금은 미래에셋대우로 합병됐지만 대우증권은 1990년대까지 국내 증권업계 1위 회사였다.
당시 대우증권은 최고였다. 강도 높은 직원교육으로 영업력을 끌어올렸고 1984년 국내 민간기업 가운데 처음으로 경제연구소를 설립해 투자를 위한 연구기반도 다졌다.
대우그룹 붕괴와 함께 대우증권은 사라졌지만 ‘1등 DNA’로 훈련된 '대우맨'들이 각 증권사의 임원에 오르면서 국내 증권업계를 주름잡고 있다.
손복조 토러스투자증권 회장과 김해준 교보증권 대표이사 사장,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대표이사 사장,
전병조 KB증권 대표이사 사장 등 여러 현직 최고경영자가 대우증권 출신이다.
그리고 23일 또 한 명의 대우증권 출신 최고경영자가 탄생했다. 정영채 NH투자증권 대표이사 사장이 그 주인공이다.
정 사장은 1988년 대우증권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해 2005년 투자금융(IB)담당 상무를 지낸 뒤 NH투자증권의 전신인 우리투자증권으로 자리를 옮겼다.
정 사장보다 4살 많은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사장을 사석에서 형이라고 부를 정도로 대우증권에서 함께 지낸 이들과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서울 여의도 NH투자증권 사옥에서 취임 기자회견을 마치고 나오는 정 사장에게 대우증권 시절을 물었다.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으나 하나 둘 말을 꺼내면서 금새 자신감과 흥분으로 가득차 얼굴이 상기됐다.
그는 “외환위기 전까지 대우증권은 증권업계에서 압도적 1위였다. 다른 경쟁사가 하는 그 어떤 사업도 금방 따라잡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나는 이것을 일종의 건방짐이라고 표현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건방짐.
그가 말하는 건방짐은 '필요한 건방짐'이었다. 남을 비아냥 거리는 '자만의 건방짐'이 아니라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패기와 자신감'이었다.
그는 “2005년 우리투자증권으로 왔을 때는 1등 회사가 아니라서 그런지 직원들에게 자신감이 없었다”며 “살펴보니 다양한 사업콘텐츠를 갖추고 있었다. 나는 당장 회사 밖으로 나가 무조건 손님을 많이 만나라고 했다. 사업 콘텐츠의 장점이 있으니 걱정말고 나가서 뛰라고 했다”고 말했다.
외환위기 여파로 대우그룹이 해체되면서 대우증권은 제일은행과 KDB산업은행 등으로 대주주가 바뀌었다. 2016년 미래에셋증권과 합병해 미래에셋대우가 탄생하면서 대우증권은 1970년 설립 이후 46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대우증권은 간판을 내렸지만 ‘제대로 된 건방짐의 DNA’는 정 사장을 비롯한 대우증권 출신들의 몸에 남았다.
정 사장은 당분간 대외행보를 줄이고 전국의 영업점을 돌아다니며 현장경영을 실시할 계획을 세웠다. 영업력을 강화하며 건방짐의 DNA와 1등 DNA를 NH투자증권에 불어넣는 데 힘쓸 것으로 보인다.
그는 “작은 구멍가게라도 한 번 들러본 사람보다 백 번 가본 사람이 어디에 어떤 물건이 있는지 더 잘 알게 마련”이라며 “고객을 자주 만나며 밖으로 계속 발을 넓혀야 한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임용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