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구멍으로 둑이 무너진다는 말처럼 작은 일탈이 조직에 치명적 위기가 될 수 있다.”
최흥식 금융감독원장이 지난해 9월 금감원 수장 자리에 오르면서 취임사를 통해 직원들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이 말이 결과적으로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과거 하나금융지주 사장 시절 대학동기의 아들의 채용을 ‘추천’했던 일이 드러나면서 그의 꿈도 허물어지게 됐다.
원장 자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최 원장은 진정으로 금융감독기관의 위상과 역할을 정립하려 했던 뜻을 보였다.
최초의 민간출신 금융감독원장.
최 원장이 금감원장에 올랐을 때 가장 먼저 붙은 수식어였다.
1999년 금감원 설립 이래 초대 이헌재 전 금감원장부터 10대 진웅섭 전 금감원장까지 사실상 금감원장은 금융위원회 등 퇴직 경제관료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최 원장은 조직개혁을 이끌 적임자로 기대됐다. 청와대에서도 ‘금감원의 개혁’을 주문하며 감독업무 재편에 드라이브를 걸어줄 개혁 성향의 민간 전문가를 물색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최 원장은 취임하자마자 금감원 안팎으로 강도 높은 쇄신을 요구했다.
당시 금감원은 내부적으로 채용비리에 신뢰성이 많이 훼손된 상태였다.
2017년 초 최수현 전 금감원장이 행정고시 동기인 전 국회의원의 아들을 변호사 전형에서 특혜채용했다는 의혹이 불거져 홍역을 치른 데 이어 9월에는 감사원이 금감원에서 여러 건의 채용비리를 적발해 수석부원장과 부원장보들이 자진해 사퇴했다.
최 원장은 임원들을 모두 교체하고 블라인드 채용 도입, 서류전형 폐지, 외부 면접위원 참여 등 금감원의 채용 전 과정을 개편했다.
최 원장은
문재인 정부의 기조에 따라 민간 금융회사에게 지배구조 투명성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였다. 금융회사들을 단속하는 과정에서 감독 대상 회사들과 많은 갈등이 빚어지기도 했다.
채용비리 의혹이 불거지자 바로 자리에서 물러난 것도 그가 금융회사들에 들이댔던 잣대가 워낙에 엄격했고 압박의 강도가 높았기 때문이라는 말도 나온다. 그만큼 부담이 컸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최 원장은 금감원의 감독기능을 제대로 확보해 금융위원회의 ‘산하기관’에 불과하다는 평가에서 벗어나려 온갖 노력을 다했다. 늘 경제관료들 뒷전같은 느낌을 품었던 금감원 내부적으로도 안타까움이 클 것으로 보인다.
최 원장은 꾸준히 금융당국의 정책기능과 감독기능을 분리하는 것이 맞다는 뜻을 보였고 금감원은 최근 독립적 금융감독업무의 필요성을 인정받아 가고 있었다. 1월31일 열린 공공기관운영위원회에서 최 원장의 바람대로 금감원이 공공기관으로 지정되지 않게 됐다.
최 원장은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금융감독과 금융정책을 분리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며 “경기와 관련된 경제, 금융, 재정정책은 한 곳에서 하고 금감원은 이를 뒷받침하는 역할이기 때문에 나누는게 좋지 않나 생각한다”고 소신있게 말했다.
2008년 연세대학교 경영대 교수 시절에는 금융감독위원회가 현재 금융위로 재편될 때 이에 반대하는 경제·금융학자 성명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관치금융의 폐해가 심해지고 금감원의 위상이 떨어져서 감독업무의 전문성이 약해질 수 있다는 이유를 당시에도 들었다.
최 원장이 1998년 금감원의 산파 역할을 했었기 때문에 금감원에 애정이 남달랐다는 말도 나온다.
최 원장은 금감원이 설립됐을 때 당시 이헌재 금융감독위원장의 추천으로 금융감독위원회 산하 감독기구경영개선팀장을 맡고 금감원 조직을 설계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현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