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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오른쪽)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왼쪽) <사진=뉴시스> |
이재용 시대에도 삼성은 과연 순환출자 구조를 그대로 안고 갈 것인가? 지배구조를 건들기에는 너무 복잡해 그냥 안고 갔으면 하는 현실과 어떤 형태든 변화는 불가피하다는 당위 사이에서 이건희 회장을 비롯한 삼성 수뇌부는 머리가 아프다.
◆ 순환출자 구조, 일단 끌고 가는 것으로 방향 잡아
전문가들은 삼성이 당분간 순환출자 구조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경영승계에 필요한 사업재편을 이어갈 것으로 보고 있다. 송원근 경남과학기술대 산업경제학과 교수는 언론과 인터뷰에서 “삼성 입장에서 최상의 시나리오는 순환출자 구조를 그대로 가져가면서 삼성전자의 지분을 강화하는 방향이고, 현 상황에선 새로운 지배구조 변화를 모색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가 기존 순환출자를 이미 허용했고 금산분리 역시 논의가 지지부진하기 때문이다.
순환출자 구조의 정점에 에버랜드가 있다. 에버랜드가 삼성생명을 지배하고 삼성생명이 삼성전자를, 삼성전자가 삼성카드를 지배하고 다시 삼성카드가 에버랜드로 연결된다. 에버랜드는 지분 19.34%를 보유해 이건희 회장에 이어 삼성생명의 2대주주다.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지분 6.24%를 보유한 최대주주고 삼성전자는 삼성카드 지분 37.45%를 보유했다. 삼성카드는 에버랜드 지분 5%를 지니고 있다.
에버랜드를 지배하면 삼성그룹의 주인이 된다. 이재용 부회장은 에버랜드의 최대주주다. 이 부회장은 1996년부터 1999년까지 에버랜드의 전환사채(CB)를 매입해 현재 에버랜드 지분 25.1%를 보유하고 있다. 이 회장은 3.72%를 보유하고 있고 이부진 이서현 자매는 각각 8.37%씩 소유하고 있다.
이건희 회장 일가가 보유한 에버랜드 지분은 45.56%다. 순환출자 구조를 이어가는데 문제가 없다. 따라서 아직까지는 순환출자 구조의 변화는 보이지 않는다. 대신 에버랜드를 중심으로 사업재편을 진행 중이다. 이 부회장은 사업재편을 통해 이 회장의 지분 상속에 필요한 ‘실탄’을 마련하고 있다.
일단 에버랜드의 몸집 불리기가 눈길을 끈다. 지난해 9월 제일모직의 패션부문을 1조500억 원에 인수한 데 이어 11월 에버랜드의 건물관리사업과 FC(푸드컬쳐) 사업부를 정리했다. 삼성 계열사인 에스원은 에버랜드의 건물관리사업을 4,800억 원에 양도받았고 에버랜드의 FC사업부는 물적분할되어 ‘삼성웰스토리’라는 급식 및 식자재 전문 기업으로 탄생했다.
에버랜드의 제일모직 패션사업 인수는 순환출자 구조를 강화하는 한편 형제경영 또는 계열분리를 동시에 준비하기 위한 포석으로 해석된다. 특히 이서현 사장이 지난해 연말에 제일모직 패션사업 이관과 함께 에버랜드 패션부문 사장으로 자리를 옮겨오면서 이런 해석이 힘을 받고 있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포스트 이건희 시대에는 3세 경영인 혼자서 그룹 전체를 경영하기에는 리스크가 너무 크다”며 분할 승계 가능성을 전망했다. 다만 이건희 회장이 그룹을 물려받은 후 분할되는 과정에서 형제간의 갈등을 겪었기 때문에 계열 분리보다 형제경영을 선호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이 부회장은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삼성SDS의 지분을 상속에 필요한 재원으로 사용할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9월27일 이뤄진 삼성SDS와 삼성SNS의 합병으로 이 부회장의 지분은 11.3%로 늘어났다. 한국투자증권은 합병 후 삼성SDS의 기업가치가 5조8,210억 원에 이른다고 분석했다. 특히 삼성SDS는 순환출자 구조에서 빠져있기 때문에 이 부회장이 지분을 처분해도 지배구조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다.
◆ 이재용 시대에 본격화할 지배구조 문제
문제는 ‘포스트 이건희’ 시대의 일이다. 이 부회장은 아직 그룹의 양 기둥인 삼성생명과 삼성전자의 지분을 거의 보유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어떤 방식으로든 순환출자 구조의 변화는 불가피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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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사진=뉴시스> |
이 회장은 현재 삼성에버랜드 지분 3.72%와 삼성전자 지분 2.94%, 삼성생명 지분 20.76%를 보유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회장이 보유하고 있는 계열사 지분을 모두 더하면 12조 원에 육박할 것으로 추산한다.
이 부회장이 순환출자 구조를 그대로 유지하려고 한다면 가장 먼저 세금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이 부회장이 이 회장의 지분을 그대로 상속 또는 증여받는다면 최소 6조 원 이상의 세금을 내야 한다. 30억 원 이상에 적용되는 상속세 또는 증여세의 세율이 50%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비상장 계열사들의 자산추정이 어렵기 때문에 세금이 10조 원 이상이 될 수도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 부회장이 삼성SDS 지분을 매각한다고 해도 결국 추가로 지분매각이나 조정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 부회장이 보유한 삼성SDS의 지분을 다 팔아도 겨우 1조2,000억 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지분 상속이 이뤄지면 이 부회장은 겨우 2% 정도의 지분만 보유하게 되는데 이것으로는 그룹 전체를 지배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부회장은 어떤 수단을 써서든 그룹 간판인 삼성전자의 지분을 유지해야만 한다.
세금 문제를 해결해도 이 회장이 보유하고 있는 삼성생명 지분이 또 다른 문제로 등장한다. 삼성생명은 삼성전자의 대주주이기 때문에 이 부회장이 반드시 상속받아야 한다. 만약 삼성생명을 상속받지 못하면 삼성전자와 순환출자 구조가 끊겨 그룹에 위기가 찾아올 수 있다.
이 부회장이 삼성생명 지분을 직접 상속받을 경우에도 재원이 가장 큰 문제로 작용한다. 이건희 회장이 보유한 삼성생명의 지분은 20.76%로 약 4조3,234억 원에 이른다. 재원 마련을 위해서 계열사 지분 매각 등이 고려되고 있지만 복잡하게 얽혀있는 삼성그룹의 순환출자 구조 때문에 쉽게 손쓸 수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이 회장이 세금 문제를 피하고 이 부회장에게 경영권을 넘기기 위해 자신의 지분을 에버랜드에 증여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핵심인 삼성전자 지분만 이 부회장이 상속받고 나머지는 에버랜드에 증여한다면 재원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부회장이 이미 에버랜드를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어 삼성그룹을 지배하는 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에버랜드의 삼성생명 지분이 늘어 최대주주가 되면 에버랜드가 금융지주회사로 분류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 경우 에버랜드가 보유한 삼성전자 등의 비금융 계열사 지분을 모두 정리해야 하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경제개혁연구소는 “삼성이 가장 원하는 방식은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지분을 계속 보유하면서 지주회사로 전환하는 방식인데 현행 법 체계에서 불가능하다”라고 지적했다. 결국 이 방안을 실행하기 위해선 법 개정이 필요하다.
법 개정과 관련해 최근 정부가 중간금융지주회사 설치에 허용 의사를 밝힌 것이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현오석 경제부총리는 지난 6일 ‘M&A 활성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일반지주회사의 중간금융지주회사 설치를 허용하겠다고 했다. 중간금융지주회사 설치를 위해선 금융 또는 보험회사 3개 이상을 보유하거나 해당회사의 자산이 20조 원을 넘어야 한다. 현재 해당 조건을 충족하는 곳은 사실상 삼성그룹이 유일하다.
이렇게 되면 이 회장이나 이 부회장은 에버랜드를 지주회사로 두고 삼성생명을 중간 금융지주회사로 전환해 삼성생명이 보유한 계열사 지분을 보호할 수 있는 길을 얻게 된다. 삼성생명은 이미 지난해 12월13일 삼성전기와 삼성물산, 삼성중공업이 보유한 삼성카드 지분 5.81%를 매입해 총 지분을 34.41%로 높여 놓았다. 전문가들은 이 회장과 이 부회장이 지주회사로 전환을 꾀한다면 당면한 지배구조 문제에서 돌파구를 찾을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이 회장과 이 부회장이 과연 지주회사에 흥미를 느낄 것인가를 놓고는 전문가들은 회의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법이 마련되고 있지만 삼성만을 위한 특별법이라는 여론의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현 지배구조의 전환을 모색할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다. 한국투자증권의 한 연구원도 “금융 계열사와 비금융 계열사가 복잡하게 뒤섞여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는데 엄청난 자금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며 지주회사로 전환 가능성을 일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