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월5일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뒤 서울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뉴시스> |
특검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뇌물죄 등 혐의를 적용하며 핵심 근거로 앞세웠던 인위적 경영권 승계작업의 틀이 사실상 완전히 깨졌다.
재판부가 이 부회장 항소심 선고에서 부정적 청탁의 대상이 되는 경영권 승계작업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결론짓고 형량을 대폭 낮춰 집행유예를 선고했기 때문이다.
삼성그룹이 이전에 추진하던 지배구조 개편작업이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것이라는 시선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워진 만큼 다시 추진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5일 서울고등법원 형사13부(정형식 부장판사)는 이 부회장에 징역 2년6개월과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하며 1심에서 인정된 뇌물혐의를 대부분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부정한 청탁 대상으로 승계작업 존재가 인정되지 않는다”며 이 부회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에 뇌물을 주며 개별 현안을 놓고 청탁할 관계가 없었다고 판단했다.
특검은 이 부회장의 뇌물죄 등 주요 공소사실에 핵심 근거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박 전 대통령이 이 부회장의 부탁을 받아 국민연금의 합병 찬성을 지시했다고 혐의를 걸었다.
이 부회장이 그룹 핵심 계열사인 삼성물산 지분율을 높이기 위해 기존에 지분이 많았던 제일모직을 최대한 유리한 비율로 합병하며 대주주인 국민연금의 찬성을 청탁했다는 것이다.
특검은 이 부회장이 이 과정에서 국민연금에 손실을 끼쳤다는 주장도 내놓았다. 하지만 재판부가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관련 내용을 모두 인정하지 않으며 이 부회장은 혐의를 벗게 됐다.
삼성그룹은 지난해 벌어진 특검수사와 이 부회장의 구속수감 영향으로 이전부터 추진하던 지배구조 개편작업을 사실상 중단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이 이 부회장 재판과정에서 핵심 쟁점으로 떠오르며 다른 계열사도 인적분할과 합병, 지주사 전환 등 계획을 추진하기 부담스러운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지주사체제 전환 검토나 삼성SDS의 IT서비스와 물류부문 분할계획이 모두 삼성물산 합병 때부터 이어진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작업 연장선상에 있다는 증권가 분석도 이어졌다.
하지만 재판부가 경영권 승계작업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은 만큼 삼성그룹은 다시 이런 지배구조개편을 추진하는 데 어느 정도 자유로울 수 있게 됐다.
삼성그룹 계열사의 한 관계자는 재판결과가 나오기 전 “시장에서 논의되는 지배구조 개편의 추진 가능성은 충분하지만 재판이 완전히 마무리된 뒤 가능성을 논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삼성그룹 주요 계열사 사옥이 모인 서울 서초구 삼성타운. |
삼성전자가 다시 지주회사와 사업회사로 분할을 추진하면 지주회사를 그룹 계열사 지분율이 높은 삼성물산과 합병하는 등 방식으로 삼성그룹 지배구조체제가 강화될 수 있다.
삼성물산의 삼성그룹 지주사 전환과 삼성SDS의 사업분할 재검토, 일부 계열사의 합병 등 강도높은 사업재편이 이뤄질 가능성도 고개를 들고 있다.
이 부회장은 구속되기 전 삼성그룹의 비주력사업 매각과 구조조정 등 강도높은 효율화작업을 통해 미래 성장을 위한 체질 전환을 추진해왔다.
이번에 집행유예를 받아 풀려나며 조기 경영복귀가 유력해지고 경영승계를 둘러싼 오해에서도 벗어나게 된 만큼 지배구조 개편을 다시 활발히 검토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최남곤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최근 지배구조개편 논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삼성물산 등 실질적 지주사의 기업가치에 긍정적 영향을 주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