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왼쪽)과 문은상 신라젠 대표. |
금융감독원이 국내 바이오기업들의 연구개발비용 회계 처리와 관련해 직접 감리에 나서겠다고 밝히면서 바이오기업별 연구개발비용 회계 처리 문제가 기업가치 평가에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셀트리온과 신라젠, 바이로메드, 티슈진 등 국내 바이오기업들은 연구개발비용의 회계 처리 적용기준을 회사별로 각자 정할 수 있어 이를 둘러싼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 연구개발비 회계 처리, 사실상 기업 마음대로
29일 업계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이 28일 제약바이오업계의 연구개발비용 회계 처리를 집중감리하겠다고 밝히면서 바이오산업에 대한 국내 회계 처리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국내 기업들이 연구개발비를 자의적으로 처리하면서 재무정보를 왜곡한 의혹이 있다며 감리를 실시하기로 했다.
금감원이 직접 나선 이유는 최근 국내 제약바이오기업들이 국내 회계기준의 취약점을 이용해 기업가치를 부풀리고 있다는 의혹이 확산되면서 제약바이오업계 회계 전반에 대한 신뢰도 문제로 번지고 있기 때문이다.
연구개발비는 국내 회계기준으로 볼 때 비용이 될 수도 있고 자산이 될 수 있다.
연구개발비가 경상개발비로 처리되면 ‘판매관리비’에 포함돼 비용으로 처리되지만 연구개발 성과가 미래에 특허권이나 자산으로 인식될 것으로 기대된다면 ‘무형자산’ 항목에 해당하는 ‘개발비’로 처리할 수 있다.
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 제1038호 ‘무형자산 기준서’에 따르면 연구개발비가 무형자산으로 처리될 경우 매년 일정비율로 감가상각 처리한다.
기준서에 따르면 연구개발비가 무형자산으로 처리되기 위해서는 6가지 요건을 만족해야 한다.
기술적 실현 가능성, 기업의 의도, 사용 또는 판매에 대한 기업의 능력, 미래경제적 효익을 창출하는 방법, 개발 관련 기술 및 재정적 자원 등 입수 가능성, 지출을 신뢰성있게 측정할 수 있는 기업의 능력 등이다.
즉 개발하고 있는 제품의 상용화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 입증할 수 있다면 연구개발비를 무형자산으로 처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놓고 논란도 끊이질 않고 있다.
무엇보다도 연구개발비를 무형자산으로 처리할지 비용으로 처리할지 최종 판단을 회사가 알아서 정할 수 있다는 점이 집중적으로 비판받고 있다. 회사가 자의적으로 재무상태를 조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독일 도이체방크가 셀트리온의 연구개발비 회계처리 문제를 공격하면서 논란은 더욱 확대됐다.
도이체방크는 “셀트리온의 영업이익률은 2016년 57%로 매우 높은 수준인데 글로벌 경쟁사 평균수즌으로 연구개발비를 회계에 반영하면 영업이익률이 30% 중반대로 떨어진다”고 주장했다.
▲ 김선영 바이로메드 연구개발 총괄사장(CSO)과 이우석 티슈진 공동대표(오른쪽). |
◆ 셀트리온, 신라젠, 바이로메드, 티슈진 회계 처리 기준 모두 달라
셀트리온과 신라젠, 바이오메드, 티슈진 등 국내 대표 바이오기업들의 연구개발비 회계 처리가 각각 다른 것도 논란을 부채질하고 있다.
셀트리온은 2016년 연구개발에 2639억 원을 썼는데 이 가운데 약 75%인 1986억 원을 개발비로 분류해 무형자산으로 처리했다. 셀트리온은 2016년 순이익 1804억 원을 냈는데 셀트리온이 개발비를 모두 비용으로 처리했다면 순손실 182억 원을 낸 적자기업으로 바뀐다.
셀트리온의 경우 바이오시밀러산업의 특성을 주장하고 있다. 다른 신약 개발과 달리 실패할 확률이 없고 지금까지도 실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신약 개발에 들어가는 연구개발비는 무형자산이 아닌 비용으로 처리하고 있다고도 해명했다.
신라젠은 연구개발비를 모두 비용으로 처리하고 있다.
신라젠은 현재 항암 바이러스 치료제 ‘펙사벡’의 글로벌 임상 3상을 진행하고 있다.
신라젠은 2016년 연구개발비 261억 원을 전액 비용으로 처리했고 지난해 3분기까지 지출한 연구개발비 236억 원도 거의 대부분 비용으로 처리했다.
이 때문에 신라젠은 큰 폭의 적자를 내고 있다. 신라젠은 2016년 매출 53억 원, 영업손실 468억 원, 순손실 740억 원을 기록했다.
바이로메드는 연구개발비 거의 대부분을 무형자산으로 처리하고 있다.
바이로메드는 당뇨병성 신경병증 치료제 ‘VM202’와 유방암 치료 백신 ‘VM206’, 혈소판 감소증 치료제 ‘VM501’ 등을 개발하고
있다.
바이로메드는 바이오시밀러가 아닌 유전자 치료제 등 신약 개발을 하는 업체인데도 임상 1상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이들을 무형자산으로 분류하고 있다.
바이로메드는 지난해 3분기까지 연간 연구개발비로 226억 원을 썼는데 97%를 무형자산으로 처리했다. 바이로메드는 지난해 3분기까지 매출 23억 원, 영업손실 29억 원을 냈다고 밝혔는데 연구개발비를 비용으로 바꾸면 적자폭이 10배가 된다.
티슈진의 경우 연구개발비를 무형자산으로 처리할 수 있다는 국내 회계의 특성을 이용해 이득을 봤다.
코오롱그룹은 티슈진을 나스닥에 상장하려고 했으나 지난해 코스닥 상장으로 방향을 틀었다.
코오롱그룹이 티슈진을 코스닥에 상장한 이유는 퇴행성관절염 치료제 ‘인보사’의 미국3상 임상비용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티슈진은 이번 코스닥 상장을 통해 1994억 원을 공모자금으로 벌었다. 당초 예상했던 공모자금 1170억 원의 2배 가까운 금액이다. 이 덕분에 티슈진은 미국 임상3상에 필요한 연구개발비를 기존보다 60% 이상 늘어난 1500억 원으로 책정할 수 있었다.
티슈진은 2016년 매출 133억 원, 영업이익 60억 원을 냈는데 연구개발비로만 130억 원을 썼다.
코오롱그룹이 티슈진을 나스닥에 상장했을 경우 기업의 재무상태 평가가 악화돼 기대한 수준의 자금을 조달하기 어려웠을 가능성이 높았다. [비즈니스포스트 이승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