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과 그의 아들 이현준씨가 한국도서보급 지분을 92.9% 보유하면서 한국도서보급이 실질적 지주사 역할을 하게 된다.
한국도서보급은 태광산업과 대한화섬의 지분을 각각 11.2%, 33.5% 보유하게 된다.
이로써 태광그룹의 지배구조는 ‘이 전 회장→한국도서보급→태광산업·대한화섬’으로 수직 계열화된다.
대기업들은 재벌개혁을 내세우는 문재인 정부의 방침에 따르기 위해서 잇따라 지주사체제로 전환하면서 복잡한 출자구조를 정리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줄곧 대기업들에게 지배구조를 정비할 것을 주문해왔는데 경영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 가운데 하나로 지배구조가 깔끔하게 정리되는 지주사체제 전환을 유도했다.
현대중공업 롯데 효성 SK케미칼 등 대기업들이 최근 잇달아 지주사체제로 전환했는데 태광그룹 역시 이번 지배구조 개편을 통해 결국 이 흐름에 동참하는 것으로 보인다.
태광그룹은 계열사들끼리 내부거래가 많아 공정거래위원회의 '눈총'을 받았다.
태광그룹의 지주자체제 전환은 경영권 승계를 대비하는 측면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주사체제로 전환이 마무리되면 이 전 회장이 소유하는 계열사는 한국도서보급, 티시스, 서한물산, 세광패션, 메르벵, 에스티임, 동림건설 등 기존 7곳에서 한국도서보급 1곳으로 줄어든다. 그만큼 경영권 승계가 쉬워진다.
그런데 태광그룹이 지주사체제로 전환한다면 금융계열사들을 정리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된다. 공정거래법상 일반지주회사가 금융회사를 자회사나 손자회사로 두는 것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도서보급과 대한화섬은 흥국생명의 지분을 각각 2.91%, 10.43% 보유하고 있고 한국도서보급은 흥국증권의 지분 31.25%도 보유하고 있다. 또 대한화섬과 태광산업은 고려저축은행의 지분을 각각 20.2%씩 들고 있다.
◆금융계열사 어떻게 정리할까?
태광그룹이 금융계열사를 놓고 선택할 수 있는 방안은 크게 3가지로 꼽힌다.
한국도서보급과 대한화섬이 보유한 흥국생명·흥국증권 등 지분을 이호진 전 회장이 사들이는 방안과 시장에 매각하는 방안, 금융계열사들을 아예 통째로 매각하는 방안 등이다.
이 전 회장이 금융계열사들의 경영권을 쥐고 있는 만큼 한국도서보급이나 대한화섬 등이 태광그룹 금융계열사들의 지분을 외부에 매각한다고 해서 이 전 회장의 영향력에 타격이 생기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 전 회장은 흥국생명 지분 56.3%, 흥국증권 지분 68.75% 등을 보유하고 있고 고려저축은행의 경우 30.5%를 들고 있는 최대주주이다. 흥국생명이 흥국화재 지분을 59.56% 보유하고 있는 지배기업이기 때문에 이 전 회장의 지배력이 흥국화재에도 미친다.
다만 이 전 회장의 장조카인 이원준씨가 태광그룹 금융계열사들의 지분을 들고 있는 점은 부담으로 꼽힌다.
이원준씨는 이임용 태광그룹 창업주의 첫째 아들인 이식진 전 태광그룹 부회장의 장남이다. 이식진 전 부회장은 지병으로 2004년 세상을 떠났다.
이원준씨는 2010년 이 전 회장의 이복형제와 누나들이 이 전 회장에 상속재산 문제로 소송을 걸었을 때 함께 소송을 제기하며 이 전 회장과 대립했다.
이원준씨는 흥국생명의 지분을 14.65%, 고려저축은행 지분은 23.2% 보유하고 있어 이들의 2대주주다.
한국도서보급과 대한화섬이 지주사 요건을 충족하기 위해 흥국생명 등의 지분을 시장에 매각할 때 이원준씨가 이들을 사들인다면 이 전 회장의 지배력에 어느 정도 위협은 될 수도 있다.
이 전 회장이 지분을 사들인다면 금융계열사들에 영향력을 더욱 굳건히 할 수 있겠지만 동원해야 할 자금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흥국생명 등은 비상장회사라 지분가치가 명시돼 있지는 않지만 이 전 회장이 2013년 대한화섬에 흥국생명 지분 2.91%를 265억9200만 원에 팔았던 점을 미뤄보면 흥국생명 지분 13% 이상을 사들이려면 막대한 자금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또 지주사는 상장 자회사의 지분 20% 이상을 보유해야 하는 만큼 한국도서보급이 태광산업 지분 8.8%를 사들일 돈도 마련해야 한다. [비즈니스포스트 김현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