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부근은 왜 삼성전자 OLED TV 출시 주저하나  
▲ 윤부근 삼성전자 소비자가전(CE)부문 사장이 2월27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삼성 중국포럼' 행사에 참석해 행사장에 설치된 '삼성 커브드 TV 콜로세움' 조형물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삼성전자>

“OLED TV는 좋은 기기지만 아직 완벽하지 않다. 앞으로 대중화까지 3~5년 정도 걸릴 것이다.”

윤부근 삼성전자 소비자가전(CE)부문 사장이 OLED TV에 내린 평가다. 이런 평가대로 삼성전자는 여전히 OLED TV에 대해 관망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세계 TV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선두업체다. 시장조사기관 디스플레이서치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올해 상반기까지 세계 평판TV 시장에서 30.7%(매출 기준)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올해 9년 연속 세계 TV 시장 1위 달성을 목전에 두고 있다.

업계는 LCD TV사업이 잘 되는 상황에서 삼성전자가 굳이 OLED TV 시장에 뛰어들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고 본다. 언젠가 OLED TV시장에 진출하겠지만 아직까지 LCD TV에 비해 불량률이 높고 가격도 비싸 시장에서 성공을 거두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윤 사장이 계속 OLED TV시장 진출을 미룰 수는 없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라이벌 LG전자가 시장선도를 외치며 OLED TV에 집중 투자하고 있고 중국과 일본업체들도 잇달아 참여하면서 자칫 삼성전자가 변화에 뒤쳐질 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 삼성전자 “OLED TV는 시기상조”


김현석 삼성전자 소비자가전(CE)부문 TV사업담당 부사장은 지난달 29일 서울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기자들과 만나 “내년에도 OLED TV를 출시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 부사장은 “OLED TV는 아직 시기상조라고 생각한다”며 “앞으로 시장상황을 계속 지켜보겠지만 내년에도 OLED TV와 관련한 전략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삼성디스플레이도 아직 OLED TV 시장에 뛰어들 때가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

박동건 삼성디스플레이 사장은 7월 서울 역삼동 르네상스호텔에서 열린 ‘미래 디스플레이 핵심기술 개발사업 양해각서(MOU)’ 체결식에서 OLED TV 시장에 대해 부정적 전망을 내놨다.

박 사장은 “서로 크기와 성능이 같은 LCD TV와 OLED TV가 있는데 OLED TV가 더 비싸다면 고객이 이를 사겠느냐”라며 “OLED TV 출시는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릴 때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시회에서 OLED TV 제품을 보여줄 수도 있고 규모도 작게 할 수 있는 기술력이 있다”며 “다만 그것이 고객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삼성전자는 그동안 OLED TV시장 진출을 묻는 질문에 매번 시장이 아직 본격적으로 열리지 않아 지켜보고 있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제품을 팔려면 가격을 동급 LCD TV와 비슷한 수준으로 떨어뜨리는 ‘출혈정책’을 펼쳐야 하는데 이 경우 수익성 개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전문가들도 OLED TV의 잠재력은 높지만 빠른 속도로 LCD TV를 대체하지 못할 것이라는 주장에 힘을 싣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디스플레이서치는 8월 보고서에서 올해 세계 OLED TV시장 규모를 10만 대로 예상했다. 이후 2015년 60만 대, 2017년 280만 대로 늘어날 것이라고 점쳤다. 2017년 OLED TV가 전체 TV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1% 정도다.

이는 올해 초 전망치보다 다소 하향된 수치다. 디스플레이서치는 1분기 보고서에서 OLED TV 시장 규모를 2015년 80만 대, 2017년 330만 대로 내다봤다.

업계는 LCD를 기반으로 한 초고화질(UHD) TV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OLED TV시장 개화가 늦어지고 있다고 본다. LCD TV가 OLED TV의 장점이었던 화질을 따라잡으면서 소비자들이 가격을 보고 제품을 선택하게 됐다는 것이다.

  윤부근은 왜 삼성전자 OLED TV 출시 주저하나  
▲ 김현석 삼성전자 소비자가전(CE)부문 TV사업담당 부사장이 2012년 5월10일 삼성전자 서초사옥 다목적홀에서 열린 신제품 발표회에서 55인치 대형 OLED TV 양산 모델을 세계 최초로 공개하고 있다. <삼성전자>

◆ 시장의 문제인가, 기술의 문제인가?


일부 전문가들은 삼성전자가 OLED TV 생산과정에서 기술적 한계에 부딪혀 진출을 주저하고 있다는 주장을 제기하기도 한다.

삼성전자는 OLED TV를 만들 때 ‘RGB(적·녹·청)’란 방식을 따른다. 적색과 녹색, 청색을 내는 자체 발광소자를 유리기판에 직접 수평으로 배열해 붙이는 방식이다. 이를 ‘증착’ 기술이라고 하는데 이 과정에서 미세한 구멍이 일정 간격으로 뚫려 있는 미세마스크(FMM)가 사용된다.

문제는 RGB방식에서 TV화면이 커질수록 미세마스크가 무게 때문에 아래로 처지면서 구멍에 변형이 생기기 쉽다는 것이다. TV의 경우 스마트폰과 달리 하루종일 지면과 수직으로 세워둬야 하기 때문에 이른바 ‘불량화소’ 문제가 더 심각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LG전자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WRGB’ 방식을 사용했다. 미세마스크 대신 흰색을 내는 발광소자를 기판에 붙이고 그 위에 각각의 소자를 수직으로 쌓아올리는 방식이다.

패널 생산을 맡은 LG디스플레이는 “OLED TV 대형화의 걸림돌이었던 미세마스크를 사용하지 않은 덕분에 50인치 이상 TV 제조에 유리하다”며 “또 수직증착이라 각 소자 사이에 색 간섭 우려가 없어 불량률도 적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삼성전자의 RGB 방식은 LG전자의 WRGB처럼 흰색 소자를 덧대지 않기 때문에 화질과 색재현력 면에서 우수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비용과 기술 난이도 측면에서 WRGB 방식이 훨씬 유리해 LG전자가 현재 OLED TV시장을 선도할 수 있었다고 본다. RGB 방식에 비해 들어가는 소재 소모가 월등히 적다는 것이다.

디스플레이서치에 따르면 55인치 OLED TV 기준 RGB 방식의 패널 원가는 3670달러인데 이 가운데 재료비가 2510달러나 차지한다. 반면 WRGB 방식은 원가가 1970달러 정도이고 재료비는 970달러밖에 되지 않는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는 공식적으로 RGB 방식을 유지한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지만 패널 대형화에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며 “LG전자가 WRGB 방식을 선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경쟁사를 따라간다는 이미지를 심어 줄 수 있어 방식변경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부근은 왜 삼성전자 OLED TV 출시 주저하나  
▲ 파나소닉이 2011년 공개한 103인치 시스템 PDP. 실제 차량크기만한 이 제품의 가격은 거치 스텐드를 포함해 6억6990만 원으로 책정됐다. <뉴시스>

◆ 파나소닉이 삼성전자에 던지는 교훈


삼성전자는 LG전자를 따라 OLED TV시장에 뛰어드는 모험을 감행해야 할지 아니면 LCD TV 시장에 계속 남아 안정적으로 수익을 낼지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삼성전자가 처한 상황은 일본 가전업체인 파나소닉이 2000년대 후반 직면했던 시장상황과 비슷하다는 분석도 있다.

파나소닉은 LCD TV 바로 전단계 기술인 PDP(플라스마 디스플레이 패널) TV시장의 강자였다. 디스플레이서치에 따르면 파나소닉은 2007년 PDP TV시장에서 33.4%의 점유율로 삼성전자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당시 PDP TV는 새롭게 등장하고 있던 LCD TV와 비교해 가격이 저렴하고 대형화에 유리하다는 장점을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LCD TV가 빠른 속도로 기술격차를 좁히고 있어 향후 시장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파나소닉을 이끌고 있던 나카무라 구니오 회장은 2006년 6월 열린 주주총회에서 “PDP사업에 회사의 운명을 걸겠다”며 대규모 투자계획을 발표했다. 그는 2100억 엔이라는 역대 최대 투자액을 들여 일본 효고현 아마가사키 시에 PDP 공장을 신설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이 결정은 파나소닉을 몰락하게 만든 결정적 원인이 됐다. 공장이 가동을 시작했던 2010년 초 시장의 중심은 이미 PDP TV에서 LCD TV로 완전히 넘어갔던 때였다. 소비자들은 PDP TV보다 밝은 화면과 우수한 소비전력을 자랑하는 LCD TV를 선호했다.

파나소닉은 시장변화를 잘못 예측한 탓에 대규모 적자를 냈다. 2011년과 2012년 PDP TV사업에서만 1조5천억 엔이 넘는 손실이 발생했다.

파나소닉은 2011년 10월 효고현 공장의 생산을 중단한데 이어 지난해 말 공장을 완전히 폐쇄했다. 올해 3월 PDP TV사업에서 완전히 철수했다.

파나소닉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더라도 기존 기술은 한동안 시장을 지배하는 경우가 많다. LCD TV가 TV시장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이 가운데 OLED TV가 등장하는 현 상황은 이와 비슷하다.

업계 관계자들은 LCD TV가 PDP TV를 대체하는데 걸린 시간보다 OLED TV가 LCD TV를 대체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훨씬 더 짧을 것으로 예상한다. IT기술의 발전속도가 과거보다 훨씬 빨라졌다는 설명이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전자가 LCD TV업계 1인자라는 현실에 안주할 경우 파나소닉의 전철을 밟게 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특히 중국업체들이 막강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세계 TV시장 공략에 나섰고 일본업체들도 절치부심하며 재기를 노리고 있어 삼성전자의 빠른 결단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비즈니스포스트 이민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