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올해 반도체시설 투자규모를 크게 늘리기로 했다. 대부분이 시스템반도체 위탁생산 신규공장 증설에 활용될 것으로 추정된다.
시스템반도체사업을 본격적으로 키워 새 성장동력으로 삼기 위한 노력으로 해석된다.
삼성전자는 31일 보도자료를 통해 2017년 시설투자 계획을 발표하며 올해 반도체시설 투자금액이 모두 29조5천억 원에 이를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투자규모는 모두 13조 원 정도였는데 2배 이상으로 늘어나는 것이다.
대부분의 시설투자가 4분기에 집중되며 반도체 신규공장 부지 확보와 인프라공사 등에 사용될 것으로 예정됐다. 이 가운데 약 30%는 시스템반도체에 투입된다.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의 올해 전체 영업이익에서 시스템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3% 정도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매출비중도 한자릿수에 머무를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도 시스템반도체시설 투자의 비중을 공격적으로 확대하는 것은 삼성전자가 메모리반도체에 의존을 낮추고 시스템반도체를 주요 먹거리로 키워내겠다는 강한 의지로 해석된다.
삼성전자는 시스템반도체 설계능력에서 글로벌 경쟁사들에 뒤처져 외부고객사를 거의 확보하지 못하고 있지만 반도체 위탁생산의 공정기술력은 최고수준으로 인정받고 있다.
따라서 10조 원에 가까운 시스템반도체 시설투자가 대부분 위탁생산 공장증설에 투입될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하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위탁생산사업에서 퀄컴 등 글로벌 기업을 주요고객사로 두고 있지만 퀄컴의 생산물량 대부분은 대만 TSMC가 담당하고 있다. 엔비디아 등 다른 주요 반도체기업의 물량도 마찬가지다.
TSMC가 글로벌 위탁생산 시장점유율이 50%에 이를 정도로 강력한 규모의 경제효과를 갖추고 있는 만큼 대량생산이 필요한 반도체를 수주하는 데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TSMC는 애플의 차세대 모바일반도체 위탁생산을 위해 신규공장에 22조 원 이상의 시설투자를 계획하고 있다며 경쟁우위 유지를 자신하고 있다.
삼성전자도 위탁생산사업에서 경쟁력을 확보해 고객사 기반을 넓히려면 이런 대규모 시설투자가 필수라고 판단해 시설투자를 늘린 것으로 해석된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위탁생산 사업규모를 볼 때 투자성과를 온전히 거두려면 최소 수년 이상의 시간이 걸릴 가능성이 높다. 무리한 투자로 가동비 부담이 커져 실적에 타격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삼성전자가 과거 메모리반도체에 공격적 시설투자를 벌인 효과로 업황호조에 수혜를 극대화하고 있는 만큼 시스템반도체에서 이런 성과를 재현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사물인터넷과 자율주행차, 클라우드서버 등 신산업의 발전으로 반도체가 탑재되는 분야가 대폭 늘어나며 위탁생산 수요도 이에 맞춰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애플과 퀄컴에 이어 구글과 페이스북 등 글로벌 대형 IT기업은 일제히 인공지능 기술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자체 인공지능 반도체 개발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이 기업들은 모두 반도체 설계능력을 갖췄지만 생산시설을 확보하지 않아 외부업체에 위탁생산을 맡겨야 한다. 이 과정에서 삼성전자가 가장 중요한 협력사로 떠오를 수 있다.
인공지능반도체 특성상 메모리반도체와 통합된 형태로 구성돼야 성능을 높일 수 있는데 삼성전자가 유일하게 시스템반도체 위탁생산과 메모리 공급을 모두 자체적으로 담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삼성전자의 반도체 위탁생산 투자확대는 메모리반도체에 편중된 지금의 사업구조를 개선하는 한편 외부 고객사기반도 적극 확대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상현 삼성전자 파운드리마케팅팀 상무는 컨퍼런스콜에서 “내년부터 신규 반도체 위탁생산시설을 본격 가동해 공급을 대폭 확대하겠다”며 “생산성과 경제력을 동시에 갖춰낼 것”이라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