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권오현 부회장의 사퇴 이후 대규모 인적쇄신을 추진하면서 세대교체와 변화를 보여주기 위해 해외파 인재를 중용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손영권 최고전략책임자 사장과 데이비드 은 삼성넥스트 사장, 이인종 무선사업부 부사장 등 글로벌 기업에서 경력을 쌓은 인사들들의 역할이 확대될 가능성이 힘을 얻고 있다.
▲ 데이비드 은 삼성넥스트 사장(왼쪽)과 이인종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부사장. |
19일 외신을 종합하면 삼성전자의 주요 해외파 임원들이 최근 활발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삼성전자 소프트웨어 개발을 총괄하는 이인종 부사장은 18일 미국 삼성 개발자콘퍼런스에서 기조연설자로 나서 사물인터넷 플랫폼과 인공지능서비스 ‘빅스비’의 발전계획을 소개했다.
최근 삼성전자 미국연구소 삼성리서치아메리카(SRA)에서 빅스비 개발총괄로 이동한 정의석 부사장도 빅스비 새 버전에 적용된 음성기술과 활용분야 등을 설명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 부사장은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에서 컴퓨터공학과 교수로 재직했고 정 부사장은 에릭슨 등 글로벌기업에서 근무하다 삼성전자에 영입된 소프트웨어 분야의 대표적 해외파 임원들로 꼽힌다.
삼성전자의 해외투자조직 삼성넥스트를 총괄하는 데이비드 은 사장은 최근 월스트리트저널과 인터뷰를 통해 삼성전자가 사물인터넷 분야에 적극적인 투자를 준비하고 있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은 사장은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전자의 진정한 변화를 이끄는 혁신가”라고 말하며 사물인터넷 분야의 영역확대가 향후 삼성전자의 성장을 이끄는 동력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부회장이 경영전면에 나선 뒤 스마트카와 소프트웨어 플랫폼 등 신사업분야에서 성장동력을 찾던 노력을 총수 공백사태가 이어지는 가운데도 꾸준히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보인 셈이다.
은 사장은 구글과 타임워너 등에서 근무하다 삼성전자에 영입된 뒤 지난해 만49세로 역대 최연소 사장에 올랐다. 삼성전자의 순혈주의 타파와 경영진 세대교체, 글로벌 인재 중용 등 인적쇄신 노력에 가장 상징적인 인물로 꼽힌다.
삼성전자의 해외파 주요경영진은 대부분 이 부회장이 경영전면에 역할을 넓히던 2010년대부터 영입된 인물로 여러 성과를 보이며 이 부회장의 신뢰를 얻어온 측근으로 꼽힌다.
삼성전자가 권 부회장 사퇴 뒤 ‘이재용 시대’를 맞아 대규모 연말인사를 실시해 주요경영진을 대폭 물갈이할 것으로 예상되며 해외파 인물들의 직책과 역할이 대폭 강화될 가능성이 점쳐진다.
권 부회장이 삼성전자의 최대 당면과제로 꼽은 신성장동력 확보 노력을 위해서도 해외파 경영진이 전면에 나서는 변화는 필수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사물인터넷과 인공지능, 자동차 전장부품 등 주요 신사업분야 기술개발을 대부분 해외파 경영진이 총괄하며 삼성전자의 미국법인 또는 미국 연구소에서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의 중심에 손영권 사장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삼성전자의 신사업 진출에 최대 성과로 꼽히는 미국 전장부품기업 하만 인수합병에 크게 기여했고 하만의 이사회 의장도 겸임하고 있기 때문이다.
손 사장은 인텔과 퀀텀 등 글로벌 반도체기업에서 장기간 경험을 쌓고 삼성전자에 영입됐다. 현재 실리콘밸리의 삼성 전략혁신센터를 총괄하며 투자와 인수합병을 주도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신사업분야에서 글로벌 IT기업보다 후발주자로 뛰어드는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활발한 외부업체 투자와 인수합병이 필수요소로 지목받고 있다. 유망 IT기업이 실리콘밸리에 집중돼있는 만큼 해외파 인재들의 역할도 자연히 중요하게 자리잡았다.
해외파 임원들이 역할을 확대하더라도 한국 본사로 들어오기보다는 삼성전자가 전체적으로 해외법인의 조직을 더 키우는 방식의 변화를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
삼성전자가 해외법인을 독립적으로 운영하며 새로운 기업문화 창출에 주력하고 있다고 강조하는 만큼 손 사장 등 주요임원들이 사실상 총수와 대표경영진의 역할을 도맡는 셈이다.
윤부근 사장과 신종균 사장 등 대표이사도 9월 삼성전자의 미국 인재영입 행사에 직접 참석하는 등 해외파 인력확보에 공을 들이고 있다. 올해 연말인사에서 세대교체가 해외 영입 인재를 중심으로 이뤄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삼성전자는 글로벌 기업으로 위상을 높이고 이사회 다양성과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전문성을 갖춘 외국계 CEO 출신 사외이사 후보를 찾고 있다고 밝힌 적도 있다.
권 부회장이 사퇴의사를 밝힌 뒤 곧바로 출장길에 올라 미국법인을 점검한 것도 해외파 인재의 역할확대를 위한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는 해석도 나온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