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시바가 반도체사업 매각을 놓고 치열한 공방을 벌이던 미국 웨스턴디지털과 낸드플래시 생산공장에 공동투자를 제안하며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다.
도시바와 웨스턴디지털이 낸드플래시 사업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다시 적극적으로 협력에 나설 경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한국 반도체기업에 부정적인 영향이 미칠 수 있다.
니혼게이자이는 12일 “도시바가 낸드플래시 수요증가에 대응해 반도체 생산시설 투자계획을 예정보다 앞당기고 있다”며 “고용량 3D낸드의 양산에 집중하게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도시바는 당초 2019년으로 계획했던 반도체장비 구입을 올해 안에 마무리한 뒤 낸드플래시 생산공장에 모두 1100억 엔(약 1조1천억 원)을 들이는 증설투자에 활용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반도체사업을 베인캐피털과 애플, SK하이닉스 등의 컨소시엄에 매각하기로 합의하며 어느 정도 안정을 찾은 데 따라 그동안 미뤄져왔던 투자에 더욱 속도를 내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도시바 관계자는 니혼게이자이를 통해 웨스턴디지털에도 시설투자에 공동으로 참여하라는 제안을 보냈다고 밝혔다.
웨스턴디지털이 10일 발표한 입장문에서 도시바와 합작법인 설립계약에 따라 반도체사업 매각 여부와 관계없이 생산시설에 공동으로 투자할 권리가 유효하다고 주장한 데 응답한 것으로 보인다.
웨스턴디지털은 계약위반 등을 문제삼아 도시바의 반도체사업 매각절차를 중단하도록 하는 법적대응에 나서고 있는데 도시바가 공동투자를 제안하며 화해의 손길을 내민 셈이다.
도시바가 낸드플래시 개발과 생산에 웨스턴디지털의 기술을 공유하고 있는 만큼 협력이 무산되면 특허분쟁을 겪거나 사업경쟁력이 약화하는 등 문제를 겪을 수 있다는 현실적인 판단도 깔려있다.
웨스턴디지털이 도시바의 제안을 받아들여 다시 긴밀한 협력관계를 이어갈지, 또는 협력중단을 각오하고 지금과 같이 강력하게 맞서며 매각을 방해할지 선택의 기로에 놓인 셈이다.
웨스턴디지털 역시 낸드플래시 시장경쟁력을 유지하려면 공격적인 시설투자확대가 불가피한 만큼 도시바와 분쟁을 멈추고 다시 손을 잡을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도시바와 일본기업, 정부펀드 등 일본 측은 반도체사업 매각이 마무리되더라도 최소 51% 이상의 의결권을 유지할 수 있는 조건으로 베인캐피털 컨소시엄과 인수계약을 맺었다.
웨스턴디지털과 협력 지속 여부 등 중요한 사업적 결정을 향후에도 도시바가 계속 주도할 수 있다.
▲ 김기남 삼성전자 반도체총괄 사장(왼쪽)과 박성욱 SK하이닉스 부회장. |
인수전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웨스턴디지털에 완전히 등을 돌렸던 도시바의 태도변화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한국 반도체기업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도시바와 웨스턴디지털은 최근 수개월 동안 기술공유 등 협력을 사실상 중단했는데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시장경쟁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어 한국 반도체기업들이 반사이익을 볼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협력이 재개되면 낸드플래시에서 다시 강력한 경쟁자로 위상을 회복할 수 있는데다 시설투자계획도 앞당기고 있는 만큼 이전보다 오히려 더 위협적일 수도 있다.
웨스턴디지털은 공식홈페이지에 올린 입장문에서 도시바 반도체사업 인수 컨소시엄에 SK하이닉스 등 경쟁사가 포함된 데 불만을 내놓고 있다. 웨스턴디지털과 도시바의 협력관계가 깊어질수록 SK하이닉스가 기술과 생산협력 등을 추진하기도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재팬타임스에 따르면 도시바는 웨스턴디지털이 공동투자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투자진행에는 차질이 없을 것이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