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과 삼성 운명 가를 판사 한정석의 '고독한 선택'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안티고네는 오이디푸스의 딸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오이디푸스만큼 유명하고 비극적 인물도 드문데 안티고네 역시 왕이 된 아버지의 사후 이야기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비극적 여주인공이다.

소포클레스가 쓴 안티고네 이야기의 대강 줄거리는 이렇다. 테베의 왕 오이디푸스가 죽은 뒤 그의 두 아들은 치열한 내전을 벌인 끝에 죽는다. 새 왕이 된 크레온은 오이디푸스의 큰 아들인 폴리네이케스가 조국을 배신하고 내전을 일으킨 죄를 물어 그의 시신 매장을 금지하는 명령을 내린다.

하지만 오디푸스의 딸로 폴리네이케스의 여동생인 안티고네는 이를 어기고 오빠의 시신을 묻어주기로 결심하면서 결국 국법을 어긴 죄로 가혹한 형벌을 받은 끝에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다.

안티고네 이야기는 지금까지도 해석의 지평을 풍성하게 낳고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는 법과 윤리의 문제다. 크레온의 명령이 법이라면 이에 맞서는 안티고네의 행위는 윤리로 읽히는 것이다.  

현실의 법과 보편적 윤리가 충돌하는 순간에서 안티고네는 목숨을 걸고 법의 위반을 감수함으로써 윤리를 따른 저항적 인물의 한 표상이 됐다. 이 이야기에서 법과 윤리는 대립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법은 대개 윤리에 기초해 만들어져왔다. 법이 윤리에 앞설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영장이 재청구되면서 영장실질심사를 맡게된 한정석 판사에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이 부회장 영장실질심사는 16일 진행된다.

한 판사는 고려대 법학과를 졸업했고 사법연수원 31기다.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판사 가운데 가장 막내로 20일자로 제주지법 부장판사로 인사이동이 예정돼 있다.

한 판사는 최근 특검수사와 관련된 이들 가운데 최순실씨와 그의 조카 장시호씨,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송성각 전 한국콘텐츠진흥원장, 남궁곤 전 이화여대 입학처장의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반면 최경희 전 이대 총장의 첫 구속영장은 기각했다.

한 판사는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 청구가 두 번째라는 점에서 고심이 더욱 클 것으로 보인다.

특검은 이번에 이 부회장에게 뇌물공여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재산국외도피),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위증 혐의를 적용했다. 이번에 청구된 영장에 재산국외도피 혐의와 범죄수익은닉 규제 및 처벌법 위반 혐의가 추가됐다.

특검이 박근혜 게이트 관련해 삼성그룹의 뇌물죄 혐의 수사에 사실상 마지막이자 강력한 승부수를 띄운 셈이다. 이번에도 영장이 기각되면 특검은 시한연장 등 수사동력을 완전히 상실할 가능성이 높다.

이 부회장의 첫 번째 영장기각 이후 재벌과 사법부의 불신도 더욱 커져 있다. 손가락 클릭 몇번만으로 말 그대로 신상이 '털리는' 시대다.  

앞서 영장을 기각했던 조의연 판사의 경우 ‘삼성 장학생’이라거나 ‘아이가 삼성 취업을 앞두고 있다’는 등 루머가 인터넷을 중심으로 확산된 것은 물론 항의전화와 인신공격성 비난에도 시달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법의 엄중함을 집행해야 하는 판사도 사람이다. 또 피의자 신분이 된 이 부회장 역시 마찬가지다. 대한민국 법 질서 안에서 판사는 공정해야 하고 모든 피의자는 공정한 대우를 받을 권리가 있다.

피의자의 방어권을 보장하는 차원에서 도주와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는 경우 불구속 재판이 널리 인정되고 있는 추세다.

적어도 이 부회장이 최근까지 검찰이나 특검 수사에 일관되게 수사에 임해왔고 이미 여러 차례 삼성그룹 주요 집무실 압수수색이 실시됐던 점을 고려하면 도주와 증거인멸 우려는 구속의 명분이 되기 어려워 보인다.

결국 이 부회장의 운명을 가를 열쇠는 특검이 뇌물죄를 입증할 충분한 소명자료를 얼마나 더 추가로 확보했으며 판사가 과연 이를 어디까지 증거자료로 인정하느냐일 것이다.

이번 사안을 놓고 반재벌 정서에 기초한 여론재판으로 흐르고 있다는 시각이 있는 점도 사실이다. 삼성이 재벌과 기득권 세력에 대한 대중적 분노로 마녀사냥을 당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혹자는 특검이 삼성 수사를 하면서 여론의 분노에 편승해 이 부회장 구속영장을 재청구하는 무리수를 뒀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옳지 않다고 본다. 박근혜 게이트와 관련한 삼성 수사가 안고 있는 상징성을 간과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 판사의 판단에 현실 법 적용 뿐 아니라 보편적 윤리나 사회적 정의 측면도 고려돼야 한다. 이번 사안을 놓고 대중들의 요구가 들끓고 법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한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조의연 판사의 영장기각 결정이 나온 뒤 페이스북에 이런 의견을 내놨다.

“판사에게 정무적 판단을 요구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러나 범죄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판단하라는 요구는 정당하다. 그리고 권력범죄, 기업범죄, 조직범죄에서 수장의 구속은 통상의 개별적 범죄를 범한 개인의 구속과 달리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학문적 입장이다.”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을 앞에 둔 한 판사는 고독 속에서 결정을 내려야 한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