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금융지주회사 제도를 담은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특검 수사에 영향을 받아 이른 시일 안에 국회를 통과하기 어려워지면서 삼성생명이 단순 금융지주사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도 있다.
삼성생명의 금융지주사 전환은 삼성그룹 차원에서 추진되는 만큼 자사주 활용을 제한하는 내용을 담은 상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 여부에 따라 추진 속도가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 삼성생명, 단순 금융지주회사로 전환할까
이상헌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13일 “2월 임시국회에서 경제민주화법안이 통과될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다”며 “자사주와 관련된 법안의 통과 유무뿐 만 아니라 통과될 경우 그 내용에 따라서 지주회사 전환 속도가 결정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
삼성그룹은 공정거래법 개정안 입법추진과 관련해 공정위와 금융위원회 등에 어떠한 로비도 하지 않았다고 항변하고 있지만 탄핵정국에서 정치적 쟁점으로 부상하면서 이른 시일 안에 국회통과가 어려울 것으로 점쳐진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의 지주사 전환에 맞춰 삼성생명이 투자회사와 사업회사로 인적분할한 뒤 단순 금융지주회사로 전환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단순 금융지주회사 전환은 삼성생명이 금융지주회사로 우선 전환한 뒤 유예기간을 활용해 국회에서 통과되는 법안 등에 맞춰 그룹 전체의 지주회사 전환을 추진하는 방식이다. 금융지주회사법에 따르면 관련 요건을 갖추는 데 기본 5년의 유예기간이 주어지고 금융당국의 승인을 받아 최대 7년까지 연장할 수 있다.
이 경우 지배구조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오너 일가가 삼성생명 투자회사를 직접 지배하면서 그 밑으로 삼성생명 사업회사와 다른 금융계열사를 두는 형태로 이뤄진다.
이 연구원은 “5~7년의 유예기간이 주어지기 때문에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지분 매각과 삼성화재 지분 매입에 시간적 여유가 충분하다”며 “삼성생명은 금융지주사 전환과정에서 삼성전자 지분을 매각해 새 국제회계기준(IFRS17) 도입 등에 대비한 재무건전성도 확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 상법 개정안이 전환속도에 최대 변수
삼성생명이 단순 금융지주회사로 전환하는데 최대 변수는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기업 인적분할 시 자사주에 분할신주를 배정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을 뼈대로 하는 상법 개정안이 꼽힌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배력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을 각각 중심으로 제조업과 금융계열사를 분리하는 지주사 전환이 필수적인데 자사주 활용이 막히면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
윤태호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경제적이고 실리적 접근보다 정치적 논리가 법안 통과를 좌우하는 상황”이라며 “삼성그룹을 비롯해 이미 준비가 된 기업들은 법안의 국회 통과 여부 및 통과 내용에 따라 인적분할 시기를 저울질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상법 개정안과 관련된 경우의 수는 크게 세 가지다. 상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고 유예기간이 없는 경우와 통과되면서 유예기간 1년이 주어지는 경우,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는 경우다.
상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면서 1년여의 유예기간이 주어지는 경우에는 이 부회장은 삼성전자의 인적분할 시기를 앞당기면서 삼성생명도 금융지주사 전환에도 속도를 낼 가능성이 높다.
기업 인적분할은 일반적으로 4~5개월의 시간이 소요되는 데다 이사회와 주주총회 등 거쳐야할 단계가 많기 때문에 1년 안에 지주사 전환을 마무리하려면 사전작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을 경우에도 조기대선을 전후해 다시 정치권의 압박이 거세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3월에 열리는 주주총회를 기점으로 지주사 전환을 빠르게 추진할 가능성이 있다.
상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고 별도의 유예기간없이 시행되는 경우 삼성생명의 금융지주사 전환은 상당기간 늦춰질 수밖에 없다.
자사주 활용이 제한되면 삼성전자를 정점으로 하는 삼성그룹의 지주사 전환 계획이 어그러지는 데다 이 부회장이 지주사 전환을 통해 삼성그룹의 지배력을 유지하려면 막대한 자금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삼성생명도 급하게 금융지주회사 전환을 추진할 실익이 없어지는 셈이다. [비즈니스포스트 최석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