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타카토시 시바야마 렛저 아시아태평양 담당 사장(왼쪽)과 최준호 형지글로벌 부회장. <형지글로벌>
실적 부진에 시달려온 형지글로벌에게 새로운 돌파구가 절실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일각에선 최준호 형지글로벌 대표이사 부회장이 정책 인맥과 코인 이슈를 활용해 ‘테마주 띄우기’에 나선 것이 아니냐는 의심도 제기된다. 무리한 신사업 추진이 오히려 기업 신뢰에 금을 낼 수 있다는 경고도 뒤따른다.
14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최준호 부회장이 부진한 실적을 타개하기 위해 스테이블코인 사업에 힘을 싣고 있다. 스테이블코인은 달러나 원화 같은 법정화폐에 가치를 연동시켜 가격 변동성을 최소화한 가상자산이다.
형지글로벌은 지난 2일 자체 스테이블코인 ‘형지코인’을 중심으로 한 신사업 계획을 공식 발표했다. 형지코인은 자사 온·오프라인 매장에서 실물 결제가 가능한 자체 디지털 화폐다. 그룹 유통망과 연계한 결제 생태계 구축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해당 사업은 최 부회장이 기획부터 실행까지 진두지휘하고 있는 프로젝트로 알려졌다. 현재 ‘형지페이’ 및 ‘형지코인’ 개발을 위한 전담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IT 전문 인력 영입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최 부회장은 지난 4일 싱가포르에 위치한 글로벌 디지털 자산 보안기업 렛저 아시아태평양 지사를 직접 찾았다. 현지에서 타카토시 시바야마 아태 총괄과 만나 스테이블코인 발행에 필요한 기술 협력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안성과 복구 기능을 강화한 디지털 자산 관리 시스템 구축에 대해서도 의견도 교환했다.
이어 10일에는 네이버 대외협력실장과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을 지낸 이상협씨를 비상근 고문으로 영입했다고 밝혔다.
형지글로벌에 따르면 이 고문은 네이버 재직 당시 디지털 결제 시스템 구축과 포인트 기반 자산 운영에 대한 경험을 쌓아왔다. 이를 바탕으로 형지코인 개발과 결제 시스템 강화에 기여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업계에서는 형지글로벌의 스테이블코인 신사업과 인사 영입이 ‘테마주’ 효과를 노린 전략적 행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실적 부진과 본업 경쟁력 약화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정책 이슈와 디지털 자산이라는 키워드를 동시에 활용해 단기적 주가 부양을 시도했다는 지적이다.
최근 국내에서는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도입을 위한 법제화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해외 주요 국가에서도 관련 규제가 속속 마련되며 시장의 기대감도 빠르게 커지는 분위기다.
형지글로벌은 이 시점에 맞춰 스테이블코인 발행 계획을 공개하고 현 정부 핵심 인맥으로 분류되는 인사를 고문으로 영입했다. 정책 테마와 가상자산 테마를 동시에 자극하려는 포석으로 해석될 여지도 있다.
주가 흐름도 이 같은 해석에 힘을 싣고 있다.
형지코인 신사업이 공개된 2일 형지글로벌 주가는 전날보다 29.96% 상승하며 상한가를 기록했다. 이후 이상협 고문 영입이 발표된 10일에는 6.6%, 다음날인 11일에도 19.8% 급등하며 연이은 강세를 이어갔다. 시장에서는 이례적인 상승 폭에 대해 “테마성 기대감이 주가를 끌어올린 전형적 사례”라는 반응도 나온다.

▲ 최준호 형지글로벌 대표이사 부회장. <형지글로벌>
형지글로벌이 별도 보도자료를 통해 이상협 고문의 이력을 강조한 점도 ‘테마주 효과’를 노렸다는 주장에 무게를 싣는 요소다.
이 고문은 네이버 재직 당시 하정우 대통령실 AI미래기획수석, 한성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와 함께 일한 이력이 있다. 현 정부 핵심 인맥과의 직·간접적 연결고리를 가진 인물로 정치권 네트워크를 폭넓게 보유했다고 평가된다.
특히 스테이블코인과 같은 가상자산 신사업은 금융 및 정책 규제와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 영역이다. 형지글로벌이 정부·정치권 인맥을 활용해 규제 장벽을 낮추고 사업 추진의 유리한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의도를 내비쳤을 가능성도 충분하다.
형지글로벌 관계자는 “이번 코인 신사업은 스테이블코인 시대의 흐름을 선도하기 위한 결정”이라며 “결제 편의성을 높여 고객 만족도를 강화하고 기업 입장에서는 수수료 절감과 빅데이터 확보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최 부회장의 공격적인 신사업 추진의 배경에는 장기적 실적 부진이 자리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형지글로벌은 최근 3년간 매출이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으며 수익성 역시 뚜렷한 회복세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형지글로벌의 연결기준 매출은 2022년 618억 원에서 2023년 484억 원, 2024년에는 398억 원까지 줄었다. 같은 기간 영업손실도 94억 원, 10억 원, 94억 원으로 3년 연속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재무 지표가 악화되면서 신용등급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한국기업평가는 지난 5월 형지글로벌의 무보증사채 신용등급 전망을 기존 'B+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했다.
일부 투자업계 관계자들은 형지글로벌의 코인 신사업이 투자자 보호 측면에서 문제를 낳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높은 기대감으로 주가가 급등한 상황에서 향후 주가 하락시 투자자 피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정책 인맥과 신사업 키워드만으로 주가가 출렁이는 흐름은 ‘정치 테마주’에서 반복되는 전형적인 패턴이다. 과거에도 정치인이나 정부 인사와 연계된 테마주는 단기간 급등한 뒤 급락하면서 개인 투자자에게 손실을 안긴 사례가 적지 않다. 형지글로벌 역시 비슷한 흐름을 보이는 만큼 신중한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다.
형지글로벌 관계자는 “이번 스테이블코인 사업은 그룹 운영 시너지와 소비자 편의에 중점을 두고 전개돼 본업과 무관하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형지그룹의 폭넓은 오프라인 유통 능력, 고객 정보, 기존 마일리지 등의 경험 및 자산을 바탕으로 디지털 결제 서비스를 강화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예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