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은행 과점주주 지배구조 실험 성공할까  
▲ 최경주(왼쪽부터) 미래에셋자산운용 사장, 권희백 한화생명 전무, 권용원 키움증권 사장, 송인준 IMM PE 사장, 곽범국 예금보험공사 사장,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사장, 구한서 동양생명 사장, 조철희 유진자산운용 대표가 지난해 12월1일 서울 중구 예금보험공사에서 열린 우리은행 과점주주 주식매매계약 체결식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시스>

우리은행이 과점주주 지배체제라는 새로운 금융회사 지배구조의 시험대에 올랐다.

비슷한 지분을 보유한 과점주주 몇몇이 우리은행의 경영에 참여하는 지배구조가 성공한다면 다른 금융회사들의 지배구조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그러나 과점주주 사이의 의견충돌이 커질 경우 시너지는커녕 우리은행 경영에 깊은 상처를 줄 수도 있다.

◆ ‘우리은행식’ 과점주주 지배체제의 강점

6일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은행의 과점주주 지배체제는 다른 금융지주사와 비교해도 새로운 지배구조로 평가된다.

임종룡 금융위원장도 “과점주주 형식의 매각방식은 전 세계적으로 사례가 흔치 않고 특히 국내에서 과점주주들이 협력해 금융회사를 경영한 사례가 없다”며 “국내 금융회사 지배구조의 새 모델을 제시한 것과 같다”고 밝혔다.

과점주주 지배체제는 사전적으로 경영권을 독점적으로 쥔 주주가 없으며 지분율 기준으로 상위 3대 주주의 주식을 모두 합쳤을 때 10%를 넘어서는 지배구조를 뜻한다.

은행 중심으로 운영되는 국내 금융지주사 가운데 농협중앙회에서 지분 100%를 보유한 NH농협금융지주를 제외하면 모두 원칙적으로는 과점주주 지배체제를 채택한 셈이다.

그러나 우리은행처럼 지분 4~6%를 각각 보유한 과점주주들에게 경영권을 부여하는 형태로 운영되는 금융지주사는 사실상 없다.

우리은행 지분 29.7%를 사들인 과점주주 가운데 경영에 참여하는 전략적투자자(SI)를 살펴보면 IMM프라이빗에쿼티(PE) 6%, 한국투자증권·키움증권·한화생명·동양생명 각각 4%다. 유진자산운용(4%)과 미래에셋자산운용(3.7%)만 투자이익을 내려는 재무적투자자(FI)다.

반면 KB금융지주(9.53%)와 하나금융지주(9.44%)는 재무적투자자인 국민연금이 최대주주이고 2대 주주도 외국계 재무적투자자여서 실질적인 과점주주 지배체제로 부르기 힘들다.

신한금융지주도 국민연금(9.25%)이 최대주주이지만 외국계 대주주인 BNP파리바(3.55%)가 사외이사 1명을 추천하고 재일교포(전체 17~20%)들의 지배력도 강해 과점주주 지배체제로 평가된다. 그러나 재일교포 주주의 지배력이 지나치게 강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과점주주들 간에 경영협의가 잘 되면 우리은행을 기반으로 주주들의 본업인 보험, 증권, 사모펀드 등에서 강한 시너지를 낼 수 있다”며 “이렇게 되면 국내 금융회사를 비롯해 과점주주체제인 다른 민간기업에도 본보기로 쓰일 수 있다”고 말했다.

과점주주들이 우리은행을 보험상품이나 증권상품의 판매 영업망으로 활용해 시너지를 창출할 경우 금융회사들이 인수합병을 통해 본업이 아닌 금융사업에 진출해 왔던 방식과 다른 형태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위는 스웨덴 스웨드뱅크를 우리은행의 과점주주 지배체제가 따라가야 할 모범사례로 꼽고 있다.

스웨드뱅크는 지분율 9%대 주주 2곳과 4%대 주주 2곳 등 지분율 4~10%대 과점주주들이 이사추천위원회를 구성해 주요현안을 결정하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스웨드뱅크는 스웨덴 최대 규모의 은행으로 과점주주 지배체제를 통해 탄탄한 재무건전성을 확보하고 있다”며 “우리은행이 스웨드뱅크처럼 발전한다면 과점주주 지배체제의 강점을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주주 충돌 위험성은 어떻게 막나

우리은행 과점주주들이 경영에서 손발을 제대로 맞추지 못할 경우 시너지를 내기 힘들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우리은행 과점주주들이 개별적으로 추천한 사외이사들이 최근 우리은행 이사회를 구성했다. 이들이 차기은행장을 선임하는 등 경영에 직접적으로 참여하게 된다.

  우리은행 과점주주 지배구조 실험 성공할까  
▲ 노성태 우리은행 이사회 의장(왼쪽부터 둘째)과 박상용(첫째), 신상훈(셋째), 장동우(넷째) 사외이사가 4일 서울 중구 우리은행 본점에서 열린 우리은행 사외이사 기자간담회에서 이날 열린 이사회에서 결정된 사안들을 발표하고 있다.
그런데 과점주주들은 개별적인 사안에서 서로 이익이 상충되는 부분이 있다. 특히 재무적투자자들이 향후 투자차익을 내기 위해 우리은행 지분을 매각할 때 다툼이 발생할 수 있다.

예컨대 한국투자증권의 모기업인 한국투자금융지주와 동양생명의 대주주인 중국 안방보험은 모두 은행업 진출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데 이들이 앞으로 우리은행을 두고 갈등을 빚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사모펀드인 IMM프라이빗에쿼티도 단기적인 수익성 강화를 추진할 가능성이 높아 장기적인 수익을 추구할 것으로 예상되는 다른 과점주주들과 부딪칠 수 있다.

다른 과점주주들도 키움증권은 우리은행의 오프라인 영업망, 한화생명은 우리은행의 동남아시아 현지법인 등에 주목하고 있어 생각하는 방향이 다르다.

우리은행 과점주주들은 우리은행을 금융지주제제로 전환하는 방안을 새 행장과 검토하기로 했는데 이 과정에서도 과점주주들의 이해상충이 발생할 수 있다.

우리은행 사외이사들이 4일 기자간담회에서 “사외이사는 과점주주의 추천을 받았지만 독립적인 존재다”며 “과점주주들의 의사를 반영하면서도 우리은행의 이해관계가 맞지 않을 때 과점주주의 의견만 따르지 않고 균형적으로 판단하겠다”고 밝혔지만 실제로 그럴지는 미지수다.

올해 조기대선이 치러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점도 과점주주제체의 경영에 위험요인이 될 수도 있다. 금융공공기관인 예금보험공사는 여전히 우리은행 지분 23.37%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우리은행의 자율경영을 약속했지만 새 대통령 등장 이후 낙하산 인사가 내려오는 일이 잦았던 점을 감안하면 정부의 간섭이 과점주주 지배체제를 무력화할 수도 있다.

이런 문제들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닻’ 역할을 하는 과점주주가 필요하다는 시각도 일각에서 나온다. 다른 과점주주보다 지분을 많이 보유해 거시적인 경영방침을 잡아줄 수 있는 과점주주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신한금융은 재일교포 주주들이 강한 지배력을 보유한 과점주주로 기능하고 있다. 해외사례인 스웨드뱅크에서도 지분율 9%대의 대주주 2곳이 다른 과점주주들을 아우르고 있다.

JB금융지주의 경우 2대 주주인 앵커에쿼티파트너스(8.4%)의 안상균 대표가 비상임이사로 이사회에 참여하는 등 과점주주 지배체제와 어느 정도 유사한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이곳에서도 삼양바이오팜(9.0%)이 실질적인 오너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규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