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섭의 뒤집어보기] SK텔레콤 '5천억' 고객감사 패키지, 어떻게 산정했는지 궁금하다

유영상 SK텔레콤 대표이사 사장이 4일 서울 SK텔레콤 본사 T타워 수펙스홀에서 신뢰회복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믿고 기다려주신 고객에 대한 감사와 이번 사고에 대해 책임을 다하고자 하는 마음, 보안이 강한 회사로 거듭나겠다는 약속의 의미로 준비했다."

지난 4일 유영상 SK텔레콤 사장이 '고객 신뢰 회복 위한 '책임과 약속' 프로그램'을 발표하며 한 말이다.   

유 사장은 이 날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민관합동조사단이 'SK텔레콤 침해사고 최종 조사결과'를 발표하고 한시간여 뒤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어 이를 내놨다.

SK텔레콤은 따로 보도자료를 내어 "고객신뢰위원회 자문과 이사회 의결을 거쳤다"고 강조했다.

여기에는 '사상 최악' 해킹 및 가입자 개인정보 유출에도 도망(해지 및 번호이동)가지 않고 남은 가입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고객 감사 패키지'도 담겼다.

오는 8월 사용분 이동통신 요금 50% 할인, 오는 8월부터 12월까지 5개월 동안 매달 데이터 50기가바이트(GB)씩 추가 제공, T멤버십을 통한 도미노피자·뚜레쥬르·파리바게트 할인율 확대 등 3가지로 설계됐다.

7월15일 0시 기준으로 SK텔레콤 이동통신 고객이거나 SK텔레콤 통신망을 사용하는 알뜰폰 가입자가 대상이다.

삼성전자 전략 스마트폰 출시(15일부터 예약 판매)를 하루 앞둔 14일까지로 잡은 번호이동 중도 해지 위약금(이하 위약금) 지급 기한이 지나도록 이탈하지 않고 남아있는 가입자들을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SK텔레콤은 고객 감사 패키지에 대해 "총 5천억 원 규모"라고 강조했다.

10일부터는 신문 광고 등을 통해 이를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우선 다음 달부터 12월까지 5개월 동안 매달 데이터를 50기가바이트씩 추가 제공한다고 하는데, 월 6만원대 이상 요금제를 선택해 이미 데이터를 사실상 무제한 쓰고 있는 가입자에게는 아무런 쓸모가 없다.

어린이·청소년 요금제 가입자와 피처폰 사용자들도 마찬가지다. 휴대전화를 음성통화와 문자메시지 송수신 목적으로 주로 사용하는 어르신 가입자 중 상당수는 아직도 피처폰을 쓰고 있다.

물론 월 5만원대 이하 요금제에 가입해 데이터를 아껴써야 하는 처지거나 알뜰폰 이용자들에겐 요긴할 수 있다.

대신 이들에게도 '함정'이 있다.

데이터를 월 50기가바이트씩 추가 제공한다는 것은 사실상 무제한 쓸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걷거나 버스·지하철·택시를 이용할 때도 스마트폰으로 영상 콘텐츠를 보는 등 데이터를 펑펑 써본 가입자들은 데이터를 아껴쓰기 위해 가능하면 무선랜(와이파이)을 이용하는 이전의 불편한 생활로 돌아가기 어렵다.

데이터 펑펑 사용이 습관화하면 SK텔레콤의 고가 요금제 전환 마케팅에 쉽게 넘어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SK텔레콤 유통점들이 '다달이 50기가바이트 분량의 데이터를 공짜로 준다는데, 그걸 데이터 요금으로 환산하면 얼마나 되는 줄 아냐. 그 아까운 걸 안쓰고 버릴 거냐'며 어르신 가입자들에게 휴대전화를 스마트폰으로 바꾸게 하고, 이어 고가 요금제로 갈아타라고 권하는 마케팅에 나서는 상황도 예상된다.

다음으로, 8월 사용분 요금을 50% 감면해주겠다고 하는데, 월 정액요금에 따라 감면액이 달라 결과적으로 가입자를 차별하는 문제가 있다.

SK텔레콤은 '고객 감사'라고 하지만, 시점이나 모양새로 볼 때 통신망 보안을 소홀히 하다 사상 최악 해킹 및 개인정보 유출을 일으켜 피해를 준 것에 대해 가입자들에게 사과하고 반성하는 성격이 더 짙다.

개인정보 유출로 2차 피해를 당할까 마음 졸이고, 유심을 교체하기 위해 오픈런과 대리점 앞 줄서기 불편을 겪은 가입자들을 달래 도망가지 않게 하자는 속내를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요금을 감면할 거면 정률이 아닌 정액으로 하는 게 맞다. 개인정보 유출 피해, 유심 복제 등 추가 피해 발생 가능성에 대한 마음 졸임, 유심 교체를 위해 오픈런을 하고 대리점 앞에 줄을 서는 불편 등은 월 정액요금과 무관하게 똑같이 겪었기 때문이다.

요금 감면을 정률 방식으로 하는 것은 비싼 요금제를 쓰는 가입자의 피해와 불편이 더 컸다는 점을 전제로 한다.

30년 가까이 SK텔레콤 이동통신을 쓰고 있는 류아무개(62)씨는 "SK텔레콤의 처사(요금 정률 감면)는 결혼식에 참석해 축하를 해준 손님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꽃다발을 주면서 축의금 액수에 따라 꽃 종류를 달리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꼬집었다.

T멤버십 할인율 확대 역시 어르신 등 멤버십 활용이 익숙치 않거나 오지에 거주하는 가입자에게는 그림 속 떡에 지나지 않는다.

시장조사기관 옴디아가 지난해 8월 기준으로 '2024년 디지털 소비자 인사이트'를 조사한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 통신사 멤버십 프로그램 이용률은 36%에 그쳤다.

그래서 SK텔레콤에 묻는다.

가입자 중 상당수는 이미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를 쓰고 있거나 데이터를 아껴쓰는 습관을 가진(SK텔레콤 통신망을 쓰는 알뜰폰 가입자) 탓에 데이터를 월 50기가바이트씩 추가로 줘봤자 쓸모가 없다. 대부분 사용되지 않고 버려질 가능성이 크다.

SK텔레콤은 고객 감사 패키지를 "총 5천억원 규모"라고 강조했는데, 이를 산정할 때 버려질 것으로 예상되는 데이터를 어찌 반영했나? 포함시켜 계산한 게 5천억 원인가, 빼고 계산된 게 5천억 원인가?

그리고 메가바이트(MB), 혹은 기가바이트(GB)당 얼마로 계산했나? 

가입자 열 명 중 여섯 명 꼴로 멤버십을 이용하지 않는 부분은? 모든 가입자가 멤버십을 이용한다고 가정해 5천억 원에 포함시켰나, 아니면 빼고 계산했나?
 
[김재섭의 뒤집어보기] SK텔레콤 '5천억' 고객감사 패키지, 어떻게 산정했는지 궁금하다

▲ 고학수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위원장이 21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개인정보 정책포럼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동안 개인정보보호위원회 관계자들은 실질적인 개인정보 유출 피해 보상을 위해, 사업자의 이용자 피해 보상안에 따라 과징금을 감경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혀왔다.

과징금은 정부 수입으로 잡혀 피해자 보상 재원으로 쓸 수 없으니 차라리 보상안을 과징금과 연계시켜 개인정보 유출 사고를 일으킨 사업자로 하여금 충분한 보상안을 내놓게 하는 게 개인정보보호법 취지에 더 어울린다고 보는 것이다.

이 방안은 지난 5월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주관으로 열린 개인정보 보호 정책 포럼에서도 언급됐다.

일리가 있어 보인다.

그래서 궁금하다.

무엇보다 SK텔레콤의 이번 해킹 사태에 적용될 지가 궁금하다. SK텔레콤은 '사상 최악' SK텔레콤 해킹 및 개인정보 유출로 '역대 최고' 규모의 과징금 부과가 예상되고 있다.

SK텔레콤 고객 감사 패키지 가치가 어떻게 '5천억 원'으로 산정됐는지를 궁금해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시민과 사회로부터 '나를 대신해 질문을 하라'는 명령을 받은 기자로써, SK텔레콤 가입자로써, 유영상 사장의 분명한 설명을 요구한다.

혹시라도 안쓰고 버려질 게 뻔한 데이터와 멤버십 할인까지 포함시켜 5천억 원 숫자를 만들고 강조했으면, SK텔레콤은 통신망 보안 상태 만큼이나 도덕적으로도 '바닥'인 게 된다.

5천억 원의 실체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못하거나 해도, '개인정보보호위원회 과징금을 줄이기 위한 꼼수' 의혹을 키울 수 있다.

SK텔레콤은 이번 해킹 사태와 관련해, 국내 5대 법무법인 가운데 3곳을 법률 대리인으로 쓰고 있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 과징금을 줄이고, 가입자들의 개인정보분쟁 조정을 가능하면 '싸게' 막는 게 목표이다.    

아울러 SK텔레콤 신뢰회복위원회에도 묻는다.

심의 과정서 이 부분을 살폈고, 경영진의 설명을 요구하거나 보완을 요구했나?

SK텔레콤은 '고객 신뢰 회복 위한 '책임과 약속' 프로그램'를 소개하며 "신뢰회복위원회 심의와 이사회 의결을 거쳤다"는 점을 강조했다.

신뢰회복위원회가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면, '경영진 바람막이' 내지 '들러리' 손가락질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아울러 SK텔레콤의 신뢰회복 노력이 가입자들과 사회에 '진심'으로 전달되기 어렵다. 김재섭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