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강호동 농협중앙회 회장은 17년만에 직선제를 통해 선출된 인물이다. 그의 가장 중요한 공약 가운데 하나는 바로 농협경제지주와 농협중앙회의 통합이다. <그래픽 씨저널>
강호동 회장이 내세운 공약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바로 농협경제지주와 농협중앙회의 통합 추진이다.
강 회장의 농협경제지주 통합 구상은 단순한 조직 재편을 넘어 농협의 정체성과 운영 철학을 뿌리부터 다시 설계하려는 계획으로 평가된다.
농협경제지주는 산하에 남해화학, 농협홍삼, 하나로유통 등을 둔 지주회사다.
농협은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2년 ‘신경분리(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의 분리)’ 원칙에 따라 지배구조의 정점에 농협중앙회를 두고 그 밑에 농협경제지주, 농협금융지주를 배치하는 형태로 분할됐다.
이 신경분리 체제는 경제·금융 부문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강화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농협중앙회와 지주회사 사이의 역할 중복, 의사결정 지연, 그리고 내부 자원의 비효율적 분산 등 다양한 문제점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문제는 통합 공약이 농협 내부의 결단만으로는 실현할 수 없다는 점이다. 농협의 지배구조는 농협법(농업협동조합법)에 따라 정해지기 때문이다. 농협의 지배구조를 바꾸기 위해서는 법 개정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국회와 정부의 협력도 필수적이라는 이야기다.
◆ 정치권과의 불편한 기류, 통합 추진에 걸림돌 될까
강 회장의 행보를 정치권에서, 특히 거대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쪽에서 그리 좋은 방향으로 해석하지 않고 있다.
강 회장은 취임 이후 농협금융지주와 주요 관계사의 인사에 깊이 관여하며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이와 관련해 강 회장이 취임 이후 선임한 대부분의 관계사 사장들이 소위 ‘회장 라인’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임미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월9일 열린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강 회장을 향해 “지난해 말부터 지속적으로 인사권 남용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데 근거가 없는 것이 아니다”며 “무분별한 인사는 직원들의 근로 의욕을 떨어뜨린다”고 지적했다.
이와 같은 비판은 2024년 10월 열렸던 국정감사에서도 나왔다.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24년 10월18일 열린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의 농협 대상 국정감사에서 “취임하며 단행한 인사 49명 중 내부 승진자는 하나도 없었다”라며 “낙하산 보은 인사가 책임 경영에 걸맞냐는 우려가 나온다”고 비판했다.
강 회장의 인사 문제가 공약 실현 과정에서 필수적인 정치권과의 협력을 어렵게 하는 장애물이 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한쪽에서는 정부를 설득하는 과정에서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김 실장은 2024년 말 농협금융지주 회장 후보로 유력하게 거론됐지만, 최종적으로 회장 자리에 이찬우 회장이 선임되면서 고배를 마셨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강호동 회장이 이찬우 회장의 선임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는 것이다. 강 회장과 김 실장 사이에 불편한 기류가 흐르고 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운 셈이다.

▲ 강호동 농협중앙회장이 영국 현지시각으로 3일 영국 NH농협은행 런던지점에서 직원들과 기념 촬영하고 있다. < NH농협은행 >
강호동 회장의 농협경제지주 통합 공약은 농협의 장기적인 조직 전략과 운영 철학에 근본적인 변화를 예고하는 대형 프로젝트다.
이 공약이 실현되면 농협은 보다 통합적이고 효율적인 구조로 거듭날 수 있다. 내부의 공감대도 충분하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정치권이라는 관문을 뚫어내야 한다.
국회와 정부의 협력 없이 통합 구상의 실현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향후 농협의 조직 통합 성공 여부는 행정부 및 입법부와의 긴밀한 협의 구조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구축하느냐에 달려 있다”라며 “강 회장이 조직 통합에 성공하느냐는 농협의 미래 비전과 정체성을 가르는 강력한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윤휘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