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치 않는 정치 이야기, 대처 요령을 알려 드립니다

▲ 대화 중 원치 않는 정치 이야기가 시작되었더라도 우리는 대화에 다소나마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참여할 수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명절에는 으레 가족들 사이에서 정치 이야기가 오갈 때가 많지만, 이번 설은 특히 더욱 그러했으리라. 분위기가 어색해지고 험악해졌을지도 모른다.

설은 이미 지나갔지만, 앞으로 또 이런 상황을 마주하게 될 때를 대비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대화 중 원치 않는 정치 이야기가 시작되었을 때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지에 대해 알아보자.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지금 시국에서 이건 정치 얘기가 아니라 명백한 옳고 그름에 대한 얘기야!” 그러나 문제는 반대 입장의 사람도 똑같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 좀 답답하더라도, 일단은 정치 이야기라고 이름 붙여보자.) 

1) 스스로에게 묻자. “나는 지금 이 사람을 설득하고 싶은가?” 

상대는 유튜브 알고리즘을 따라 시청한 내용을 진실이라 여기며 열변을 토하고 있을 것이다. 이때 내가 이 대화에 에너지를 얼마나 쏟고 싶은지 고민해보기를 바란다.

상대의 생각을 바꾸고 싶거나, 바꾸지는 못하더라도 내가 믿는 진실을 꼭 알려주고 싶다면 대화에 뛰어들어라. 그렇지 않다면 굳이 힘을 낭비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의 에너지는 한정적이다. 내가 가진 힘을 더 유용한 곳에 선택적으로 쓰는 것이 중요하다. 아껴둔 힘은 다른 곳에 쓰자. 내가 지지하는 집단의 활동에 참여하거나,

인터넷에 설득력 있는 글을 씀으로써 더 많은 사람에게 나의 생각을 전달할 수 있는 방식으로 에너지를 쓰는 것이 더 생산적일 수 있다.

2) 만남의 목적을 떠올리자. 

상대를 이기는 것이 이 만남의 목적인가? 아니면 우리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목적인가? 내가 생각하는 목적에 부합하는 행동을 하자고 마음먹으면 기분이 조금이나마 나을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정치와 관련한 이야기에 몰두하고 목소리를 높이는 일이 그만의 사회적 의사소통 방식일 수 있다. 그것이 그 사람의 언어인 셈이다. 

그러니 그저 함께 이 시간을 보내자는 마음가짐으로 얘기 나누자. 그러면서 이런 생각도 함께 해보자. ‘이 사람이 여기에 열심히 몰두하고 많은 시간을 보내는 그 너머의 마음은 무엇일까?’를 떠올려보면 상대가 좀 더 인간다워 보일 것이다.

타인을 대상화하라는 뜻은 아니나, 어쨌든 그 시간을 관찰과 호기심으로 채우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3) 질문으로 대화를 채우자. 

상대가 몰입한 이야기와 관련된 질문을 던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취조하라는 것이 아니라,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알아나 보자는 심정으로, 궁금한 것들, 또는 그렇게 궁금하지는 않아도 시간을 보내기 좋을 만한 질문을 하는 것도 좋다. 그렇게 시간은 잘 흘러가는 동시에 내가 내 생각을 굳이 표현해야 할 시간 역시 줄어든다. 

4) 화내지 말자.

화를 낸다고 상대방이 내 생각을 존중하거나 자신의 입장을 바꿀 가능성은 거의 없다. 분노의 표현은 상대의 오히려 방어적인 태도를 강화시키거나, 상대가 스스로를 더욱 옳다고 느끼게 만들 뿐이다.

자신의 신념에 시련이라는 서사만 제공해주는 격이다. 만약 상대가 수그리는 것 같다면 그것은 그냥 당신의 화를 가라앉히기 위해서 시늉하는 것일 뿐이다. 그러니 굳이 힘들게 화를 내지는 말자. 지나고 나서 ‘이게 뭐라고 굳이 이렇게 화내면서 관계만 껄끄러워지게 만들었지?’ 라는 아쉬움이 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5) 공감의 전략을 사용하자. 단, 당신이 원한다면.  

혹시 상대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움직이고 싶다면, 공격적인 태도보다는 연민과 공감을 유도하는 방식이 효과적이다. 상대가 지지하는 집단의 정책으로 인해 개인적으로 피해를 보았거나 두려움을 느끼는 점에 대해 말해보자.

예를 들어, “그 결정이 나와 동료들에게 이런 손해를 주었다. 죄없는 선량한 시민인 나와 동료들이 이런 일을 겪고 있으며, 앞으로 어떨지는 더욱 걱정되고 두렵다”라고 표현할 수 있다. 눈앞에 있는 가까운 이가 피해를 겪고 있다고 하소연하는데도 면전에서 탱크처럼 자신의 의견만 목청 높여 외치는 사람은 별로 없다(당신의 상대가 여전히 탱크라면 유감이다). 나그네의 옷은 돌풍이 아니라 햇볕이 벗길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하자.  

정치 이야기를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우리는 대화에 다소나마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참여할 수 있다. 기분 좋은 얘기만 나누는 결말과 멱살 잡고 싸우는 결말 둘 중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진짜 싸움은 내가 원하는 곳에서,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해도 충분하다. 힘든 시기, 그래도 모두 힘을 내보자. 반유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였고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여성학협동과정 석사를 수료했다. 광화문에서 진료하면서, 개인이 스스로를 잘 이해하고 자기 자신과 친해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책 '여자들을 위한 심리학', '언니의 상담실', '출근길 심리학'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