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수입차 시장이 정체기에 접어든 가운데 세계 전기차 선도업체 테슬라와 BYD 등 강력한 새 플레이어들의 국내 부상이 기존 독일 고급 수입차 업체들의 아성을 허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사진은 테슬라 모델3. <테슬라코리아>
이런 가운데 세계 전기차 선도업체 미국 테슬라의 국내 부상과 중국 전기차 제조사 비야디(BYD)의 국내 시장 진출은 기존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들의 아성을 허물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8일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지난해 수입 승용차 판매량은 26만3288대로 전년보다 2.9% 줄었다. 다만 해당 통계에선 작년에 빠졌던 KAIDA 비회원사 테슬라가 올해는 포함됐다.
테슬라를 제외한 수입차 판매량을 보면 23만3538대로 전년보다 13.8%나 감소했다. 앞서 2023년에도 국내 수입차 판매량은 4.4% 줄었다.
국내 수입차 시장이 2년 연속 역성장을 기록한 것이다. 1987년 한국 수입차 시장이 개방된 이래 2년 연속 전년 대비 수입차 판매량이 줄어든 때는 IMF 외환위기가 나라를 덮쳤던 1997년~1998년 단 한 번뿐이었다.
지난 20여년 동안 빠르게 성장해온 국내 수입차 시장이 성장 한계에 달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국내 전체 승용차 판매량 가운데 수입차가 차지하는 비중(테슬라 제외)은 2002년 1.3%로 처음 1% 벽을 넘은 뒤 2007년 5.13%, 2012년 10.01%, 2017년 15.23%, 2022년 19.69%까지 가파르게 높아지다 2023년 18.22%로 하락했다.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올해는 테슬라를 포함해도 국내 수입 신차 판매 비중이 18.24% 수준에 그친 것으로 추정된다.
국내 수입차 시장이 고급 중대형 차량 위주로 판매되는 가운데 현대자동차 고급 브랜드 제네시스의 성장도 수입 브랜드 성장을 제한한 것으로 보인다.
제네시스는 독립 브랜드 출범 이듬해인 2016년 6만6278대가 팔려 벤츠(5만6343대), BMW(4만8459대)를 넘어섰지만, 그 뒤 내리 3년 동안 메르세데스-벤츠에 고급 브랜드 1위 자리를 내줬다.
하지만 2020년 브랜드 첫 스포츠유틸리티차(SUV) GV80이 출시된 뒤로는 처음 국내 판매 10만 대 벽을 넘어섰고, 그해부터 국내 고급차 시장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2021년부터는 꾸준히 국내에서 연간 13만 대 수준의 판매실적을 올렸다.
제네시스는 지난해 내수 자동차 판매가 전년 대비 6.5% 뒷걸음친 가운데도 3.2% 판매 성장세를 보였다.
업계에선 국내 수입차 시장이 더이상 파이를 키우긴 힘들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국내 수입차 점유율이 20%를 넘기는 힘들 것"이라며 "국내 80% 가까운 점유율을 보이는 현대차·기아가 글로벌 수준의 경쟁력을 갖췄고, 7만~8만 대를 판매하는 벤츠와 BMW 등 2강 수입차 브랜드는 이미 판매 극대화로 판매를 더 늘리긴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수입차 판매가 더 올라가려면 2만~3만 대를 판매하는 여러 프리미엄 브랜드가 나와야 하는데, 그런 역량을 가진 수입차 업체가 한정적"이라며 "제네시스를 몰다 수입차로 옮겨타는 사람보다 도리어 수입차를 타다 제네시스로 넘어오는 경우가 더 많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수입차 시장 규모가 줄어들 순 있어도 더 성장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실제 국내 수입차 시장을 장악해온 독일 고급 브랜드 3사는 지난해 일제히 판매량이 뒷걸음쳤다.
지난해 연간 BMW코리아는 7만3754대,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는 6만6400대를 팔아 각각 수입차 판매 1위, 2위 자리를 수성했지만 전년 대비 판매량은 각각 4.7%, 13.4% 줄었다.
2023년 10월에는 BMW 5시리즈의 8세대 모델, 지난해 1월엔 메르세데스-벤츠 E클래스 11세대 모델 등 두 수입차 업체의 최고 인기 모델이 국내 출시됐는데도 지난해 판매 실적이 감소한 것이다.
특히 메르세데스-벤츠를 놓고는 지난해 8월 자사 전기차 EQE 차량에 불이 붙어 발생한 인천 지하주차장 화재 사고가 대규모 피해로 이어지면서 앞으로 국내 전기차 판매에 지장을 받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2020년부터 3년 연속 수입차 판매 3위를 지켰던 아우디코리아는 신차 부재 속 지난해 판매량이 9304대로 전년(1만7868대) 대비 반토막이 났고, 판매 순위는 7위로 추락했다.
수입차 성장세가 정체된 가운데 세계 전기차 판매량 1위 전기차 업체 테슬라의 급부상, 세계 전기차 판매 2위 BYD의 국내 시장 참전은 독일 고급차 브랜드들의 입지를 흔들 수 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테슬라는 가격을 크게 낮춘 중국산 모델Y와 모델3를 들여오면서 지난해 수입차 가운데 판매 순위를 전년 5위에서 단숨에 3위로 끌어올리며 기존 아우디 자리를 꿰찼다.
테슬라는 지난해 국내에서 2만9750대를 팔아 전년보다 판매량을 80% 넘게 늘렸다. 4위 볼보(1만5051대)와는 배 가까운 판매 격차를 보였다.
▲ 중국 BYD의 소형 전기 SUV 아토3.(현지명 위안플러스). <중국 BYD 홈페이지>
이들 전기차 모델의 중국 판매 시작 가격은 실 17만9800위안(약 3570만 원), 아토3 11만9800위안(약 2370만 원), 돌핀 9만9800위안(약 1980만 원)이다. 일본 판매 가격은 각각 528만 엔(약 4890만 원), 460만 엔(약 4260만 원), 363만 엔(3365만 원)이다.
전기차 제조 원가에서 배터리가 차지하는 비중은 40%에 육박한다. 애초 배터리 업체로 출발한 BYD는 전기차 가격 경쟁에서 유리한 조건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내 소비자들의 중국 전기차에 관한 부정적 인식을 뚫고 판매 흥행을 일구기 위해선 파격적 가격 정책 실시 여부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김필수 교수는 "BYD가 동급 경쟁 모델과 비슷한 가격을 책정하면 국내 소비자가 메이드인 차이나를 구매할 이유가 없다"며 "돌핀과 아토3는 동급보다 300백~400백만 원, 실은 500백~600백만 원 이상 차이가 있어야 소비자 눈길이 옮겨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BYD 본사에서 8% 관세와 딜러사들 이익, 물류비 등을 최소화하면서 출혈 경쟁을 하겠다고 한다면, 시장 점유율이 올라갈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허원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