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 최대주주인 정몽준 아산사회복지재단 이사장이 현대중공업그룹의 지주사체제 전환을 통해 아들 정기선 전무로 지분을 승계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정 전무는 현대중공업 경영권 승계자로 경영보폭을 넓히고 있는데 어떤 방식으로 지분을 승계할지 주목돼왔다.
◆ 지주사 안정적 지배력 확보
16일 재계에 따르면 현대중공업을 6개로 쪼개 지주사체제로 전환하면 정몽준 이사장이 현대중공업그룹의 지배력을 더욱 높일 수 있게 돼 정기선 전무로 지분승계도 한층 수월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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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몽준 아산사회복지재단 이사장(현대중공업 최대주주). |
정 이사장은 현재 현대중공업 지분 10.15%로 26개 계열사를 지배하고 있다. 아산복지재단(2.53%)과 아산나눔재단(0.65%)을 합쳐도 13.33%에 그친다.
현대중공업그룹의 자산승계율도 0%대다. 정 전무는 현대중공업 지분을 단 617주 보유하고 있어 지분승계가 큰 과제로 남아있었다.
정 전무는 지분을 물려받는 과정에서 필요한 재원도 마련할 준비가 안 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재벌의 후계자처럼 자회사의 지분을 확보하고 상장을 통해 자금을 마련할 수 있는 방안도 없다.
정 전무가 정 이사장이 보유한 현대중공업 지분을 물려받는 경우 50% 수준의 막대한 증여세를 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지분을 매각할 경우 경영권이 위협받을 가능성도 높다.
현대중공업그룹에서 지주사체제 전환이 마무리되면 정 이사장은 지주회사 현대로보틱스(가칭) 지분율을 40%대까지 늘릴 수 있다.
이재원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정 이사장이 보유하게 될 현대중공업, 현대일렉트릭, 현대건설기계 지분을 현대로보틱스에 현물출자하면 정 이사장의 현대로보틱스 지분율이 40%대로 상승하고 최종적으로 지주회사체제가 완성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정 이사장이 지주사 지분을 40%까지 확보할 경우 정 전무에게 지분을 승계하고 세금을 내기 위해 지분 일부를 매각하더라도 안정적 지배력을 구축할 수 있게 된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그동안 정 이사장의 지분율이 적다는 점이 경영권 승계에서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했다”며 “정 이사장의 지분율이 높아지면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승계가 이뤄지든 다양한 선택지를 마련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 정기선, 현대중공업에서 존재감 커져
현대중공업의 이번 분사 결정으로 정기선 전무로 경영승계는 가속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현대중공업은 권오갑 부회장이 2년 동안 강력한 구조조정을 추진한 결과 올해 들어 흑자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분사가 마무리되면 현대중공업의 재무구조도 대폭 개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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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기선(앞줄 오른쪽) 현대중공업 전무와 러시아 국영 석유회사 로스네프트의 파벨 표도로프 부사장(앞줄 왼쪽)이 지난 9월 양사 간 협력합의서에 서명하고 있다. |
재계의 한 관계자는 "현대중공업은 수주가 회복되고 경영정상화가 마무리되면 본격적으로 승계작업이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 전무는 대외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며 후계자로서 입지를 다지고 있다. 지난달 경주에서 열린 세계조선소대표자회의에 참석해 세계 조선소 대표들을 만났고 지난 9월 러시아 국영석유기업과 추진하는 합작사업에서 협력합의서에 직접 서명하기도 했다.
정 전무는 미국 유학을 마치고 2013년 현대중공업으로 돌아왔다. 정 전무는 복귀한 지 2년 만에 전무까지 초고속 승진했다. 현재 선박해양영업부문 총괄부문장을 맡아 세계 선주들을 상대로 수주활동을 벌이고 있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 러시아 등 해외기업과 합작사업을 통해 현대중공업이 겪고 있는 수주가뭄을 극복하는 데 힘쓰고 있다.
정 전무가 현재 추진하고 있는 해외사업들이 성과를 거둘 경우 현대중공업 안팎에서 정 전무의 입지가 한층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권오갑 부회장과 가삼현 사장이 나란히 승진한 것을 놓고도 정 전무가 경영전면에 나설 수 있도록 초석을 놓은 것이라는 시각도 존재한다. [비즈니스포스트 조은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