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병현 기자 naforce@businesspost.co.kr2024-04-23 15:2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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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가 가계통신비 인하를 위해 2024년 3월에 도입한 전환지원금 등 통신사 경쟁촉진책이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정부가 ‘이동통신 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법'(단통법) 전면 폐지에 앞서 번호이동 가입자에 대한 ‘전환지원금’ 제도를 도입하며 이동통신 3사의 경쟁 촉진을 유도하고 있지만,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3사가 모두 입을 맞춘 듯이 거의 같은 전환지원금을 책정하며, 사실상 가입자 유치 경쟁을 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최근 이통 3사가 휴대전화 판매장려금을 비슷한 수준으로 맞추기 위해 서로 내부 정보를 공유하는 등 담합 증거를 확보, 이들에게 심사보고서를 발송하는 등 제재 절차에 착수했다.
일각에서는 이동통신사가 시장에서 마케팅 비용을 늘리지 않고 전혀 경쟁하지 않아도 매년 수 조원의 영업이익을 낼 수 있는 현재의 과점 체제에서는 정부의 경쟁촉진책과 제재 등 ‘백약이 무효’하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여기에 최근 22대 총선에서 야당이 압승하면서 정부가 추진하던 단통법 폐지도 흐지부지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23일 통신업계 취재를 종합하면, 번호이동 가입자에게 공시지원금 외에 최대 50만 원의 전환지원금을 지급하는 제도가 지난 3월 시행돼 한 달이 넘었음에도 소비자들은 실질적 단말기 구매가격 인하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통신 3사가 책정한 최대 전환지원금은 23일 기준 KT가 33만 원, SK텔레콤 32만 원, LG유플러스 30만 원으로 큰 차이가 없다. 전환지원금은 통신사가 자율적으로 최대 50만 원까지 지급할 수 있지만, 3월23일 10만 원대에서 30만 원대로 상향된 뒤 현재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갤럭시S24와 같은 최신 기종은 전환지원금이 10만 원에도 못 미친다. KT는 월 13만원 고가 요금제를 이용하면 최대 8만 원, LG유플러스는 11만5천 원 이상 고가 요금제를 이용했을 때 최대 9만 원을 지급한다. SK텔레콤은 아예 갤럭시S24를 전환지원금 대상에 포함하지 않았다.
게다가 이 같은 전환지원금이 신설된 대신, 기존 통신사가 유통점에 주는 판매장려금은 대폭 줄인 것으로 알려졌다. '조삼모사' 실제 소비자가 받는 단말기 지원금은 예전과 달라진 게 없는 셈이다.
최근 스마트폰을 구매하기 발품을 파고 있는 한 소비자는 “전환지원금이 생기면서 할인 구조가 더 복잡해졌을 뿐이지, 실질적 단말기 구입비용은 그대로인 것 같다”며 “인기모델은 지원금이 미미하고, 고가 요금제에 가입해야 하는 조건도 과거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전환지원금의 효과가 미미하다는 것은 이동전화 번호이동 현황에서도 드러난다.
한국방송통신사업자연합회(KTOA)가 발표한 ‘이동전화 번호이동자 수 현황’을 보면 올해 3월 번호이동 건수는 52만4762건으로 2월 대비 4% 증가하는 데 그쳤다. 1월 번호이동자 수 56만36건과 비교하면 오히려 줄었다.
통신 3사의 마케팅 비용도 예전에 비해 전혀 늘지 않았다.
대신증권에 따르면 2024년 1분기 통신 3사의 합산 마케팅비는 약 1조9600억 원으로 전 분기 마케팅비 1조9676억 원과 비슷한 수준일 것으로 추산됐다.
올해 1월 삼성전자가 갤럭시S24를 출시했고, 3월부터는 전환지원금 제도가 시행됐음에도 통신사 경쟁은 그리 치열하지 않은 것이다.
정부는 그동안 가계통신비 인하를 위해 전환지원금 외에도 3만 원대 5G 요금제, 30만 원대 중저가 단말기 출시, 제4이동통신 사업자 선정 등 다양한 정책을 추진해왔다.
▲ 방송통신위원회는 2024년 3월18일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통신 3사와 휴대전화 단말기 제조사에게 소비자가 휴대전화를 구매하면서 번호이동을 하면 지급하는 전환지원금을 상향하도록 요청했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여전히 통신비 인하 효과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이는 기존 통신 3사가 시장을 삼분하고 있는 상황에서 단통법까지 시행되며, 경쟁을 할 필요성이 사라진 게 근본 원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단통법은 통신사가 유통점에 차별적으로 장려금을 지급하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으로, 2014년 법 시행 이후 통신 3사의 요금제와 지원금 액수는 거의 ‘대동소이'해졌다.
최근 공정위는 이동통신 3사가 2015년 이후 판매장려금을 서로 비슷한 수준에서 유지하기 위해 내부 정보를 공유하는 등 ‘담합’을 한 증거를 확보하고, 이통 3사에 심사보고서를 보냈다. 공정위는 이통 3사로부터 이에 대한 의견을 받은 뒤, 본격 제재 절차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에 따라 이통 3사는 막대한 과징금을 부과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단말기 유통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만들어진 단통법이 오히려 통신사의 담합을 부추긴 셈이다.
정부가 단통법 폐지를 추진하고 있지만 4·10 총선에서 여당이 참패하면서 국회 통과 가능성도 불투명해졌다.
정지수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단통법 폐지는 국회 입법 사항인 만큼 야당 협조가 필수적이나, 5월 임시국회 통과를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나병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