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신영증권 연구원 엄경아② "주식 매도 리포트 특별하지 않은 자본시장 되길"

▲ 엄경아 신영증권 연구원은 리서치센터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원칙이 자신의 매도의견 보고서를 낼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고 설명했다.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HMM 매각에 대한 소고’.

하림그룹이 HMM 매각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자 엄경아 신영증권 연구원이 2023년 12월21일 발간한 보고서다.

보고서는 HMM 주식에 대한 매도 의견과 팬오션 종목분석 중단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증권업계에서 보기 드문 투자의견과 함께 매각주체인 KDB산업은행을 비꼬고 경영자와 비견해 스스로를 ‘애널리스트 나부랭이 일반인’으로 자조한 표현이 화제가 됐다.

엄 연구원은 “승자의 저주가 예상된 하림그룹의 팬오션 인수가 1년 뒤 ‘신의 한 수’로 평가가 뒤바뀐 일이 반복되길 바란다”며 “하지만 인내의 시간을 팬오션 주주의 주식가치 하락으로 만들 수 있고 가치회복 기간이 1년 이상 필요할 것”이라고 봤다.

하지만 이달 초 HMM 매각협상이 결렬돼 그의 바람과 걱정은 현실로 나타나지 않았다. 엄 연구원은 온전히 업황에 주목해 해운업종 투자를 저울질할 수 있게 됐다며 약 2달 만에 분석을 재개했다. 

비즈니스포스트는 19일 서울 여의도의 신영증권 본사를 방문해 엄경아 연구원으로부터 보고서 발표 당시의 뒷이야기와 증권사 연구원으로의 경력 관련 이야기를 들었다.

◆ “HMM 매도 의견 리포트, 리서치하우스 독립성 보장하는 회사 덕분”

엄 연구원은 보고서를 작성하고 발표하는 동안 특별한 심경을 느끼지는 않았다고 회고했다.

“‘애널리스트의 역할이 뭘까’라는 생각을 가지고 사안을 정리한 보고서였다. 신영증권 리서치센터는 독립된 위치에서 의견을 제시해야한다라는 원칙이 확고해 내가 그 보고서를 쓸 수 있었다.”

‘흠슬라’ HMM의 투자자들로서는 민감할 수 있는 내용이었지만 직접적으로 항의가 들어온 일은 없다고 했다. 실제로 투자자가 보유종목에 대한 보고서를 낸 연구원에게까지 전화를 하는 경우도 드물었다고 한다. 

“일부 날선 반응을 보이는 것은 이해한다. 투자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게 있다. 분명히 안좋은 이야기를 들을게 뻔하지만 연구원이 보고서를 발간한 이유를 한번 생각해 달라는 것이다. 

“조선/운송 업종은 우여곡절이 많았던지라 상장된 회사가 안좋은 일을 겪고 사라지기도 한다. 투자자들은 주식의 가치가 대폭으로 감소할 이벤트라고 한다면 냉정하게 들여다봐야한다. 이런 태도는 다른 종목을 투자할때도 도움이 될 것이다” 

◆ ‘묻지마 지원’으로 입사해 ‘조선의 국모’로 불리기까지

엄경아 연구원은 2007년부터 신영증권에서 조선/운송 업종 연구원으로 활동했다. 2021년 한 유튜브 채널 출연을 계기로 ‘조선의 국모’라는 별명을 얻었다.

“채널 작가가 써준 별명이었는데 널리 퍼지게 됐다. 의도한 것은 아닌데(웃음) 공식별명으로 자리를 잡았다. 아무래도 조선/운송 업종에서 현재까지 ‘홍일점’이라 부르기 쉬웟던 것 같다”

그는 ‘조선의 국모’로 불리는 것이 “조금은 부담스럽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연구원으로 활동하면서 기억에 남는 순간은 많았다. 

2007년 시장의 ‘대장업종’이였던 조선업종이 2009년 어려움을 겪었다. 그쯤 선임 연구원이 조선업종을 물려줬다. 그의 첫 보고서 대상 종목은 2016년 파산한 한진해운이었다. 

“산업에서 일어날 수 있는 부정적인 이벤트는 모두 겪었다. 한진해운은 ‘첫 사랑이 죽었다’로 표현한다. 기업이 무너지고 주주들에게 손을 거듭 벌리는 일련의 과정이 나에게도 힘들었다. 돌아보면 이는 나에게 큰 자산이 됐다. 경험을 통해 투자에 유의해야 될 지점을 확실히 익혔기 때문이다.”

“한진해운 파산 당시 HMM은 현대엘리베이터와 현대중공업의 지분경쟁이 붙어 유통주식수가 극히 적었다. 해운시장과 상관없이 수급이 결정됐기에 해운주의 성격을 띄었다고 보긴 힘들었다. 경쟁사가 무너짐으로 인해 회사의 가치가 매우 커질 수 있다는 점을 알려준 회사다. 공적자금이 이 정도 규모로 투입될 수 있구나도 알려줬다.”

뿌듯함을 느낀 경우도 있다.

“시련을 견디고 돌아온 회사를 시장에 소개했는데 기관투자자들이 관심을 가질 때 큰 보람을 느낀다. 대표적인 사례가 팬오션이다. 기업회생을 여러 차례 겪으며 하림그룹에 매각되고 대형해운주로 거듭했던 일련의 과정을 따라가면서 뿌듯했다.”

연구원으로서 조선/해운업종의 산전수전을 함께했지만 사실 청년시절 엄 연구원은 연구원 지망생은 아니었다고 한다.

“부끄럽게도 나는 ‘묻지마 지원의 결정체’였다. 출근날까지 애널리스트와 리서치센터의 역할을 모르고 출근했다. 통계학을 전공해 숫자를 다루는 일을 하겠다고 하다가 신영증권에 합격해 회사에 들어왔다”

증권사 연구원으로 진로를 잡은 청년들에게는 ‘제너럴리스트’가 되길 조언했다. 엄 연구원은 ‘연구원으로서 강점’을 ‘체력과 인내심의 결정체’로 표현했다. 

“연구원은 다양한 산업·기업을 분석한다. 경영학 이외의 다른 분야의 지식을 쌓고 뛰어드는게 본인의 특장점을 부각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경력 초기에 진로를 변경하는 연구원들이 많은데 연구원 업무를 간접 체험할 수 있는 영상콘텐츠들을 참고했으면 한다. 적어도 3년은 엉덩이를 깔고 경험을 쌓는다는 각오로 임하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건전한 자본시장을 조성하기 위한 당부사항을 남겼다. 

“자본시장에서 연구원들이 다양한 의견을 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으면 한다. 다양한 목소리에 대해 거부감을 갖기보다 ‘왜 저런 분석을 내놓았을까’라는 의식을 가지면 시장참여자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신재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