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SK하이닉스가 4조 원을 투자해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일본 낸드플래시 메모리 반도체 기업 ‘키옥시아’가 회사에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다만 최근 낸드플래시 시황 악화로 작년 적자만 2조원이 넘는 등 실적이 악화한 데다 키옥시아가 생존을 위해 미국 웨스턴디지털 등 다른 낸드플래시 기업과 합병을 추진하고 있어 자칫 합병 성사시 시장에서 자사 입지가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가 '골칫덩이' 된 일본 키옥시아 지분 포기 못하는 이유

▲ SK하이닉스가 4조 원을 투자한 일본 낸드플래시 기업 '키옥시아'는 현재 실패한 투자로 평가되고 있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SK하이닉스 입장에선 지분을 그냥 유지하기도, 그렇다고 매각하기도 애매한 입장인 것이다.

다만 키옥시아가 다른 경쟁사에 넘어갔을 때 낸드플래시 업계에 미칠 파장을 고려하면, 지분을 처분할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SK하이닉스는 키옥시아 지분을 활용해 낸드플래시 산업에서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것으로 예상된다.

23일 일본 아사히신문은 키옥시아(옛 도시바메모리)와 미국 웨스턴디지털(WD)이 잠시 중단됐던 합병 논의를 올해 4월 재개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웨스턴디지털과 키옥시아는 2023년 10월 합병 협상을 진행했으나, 키옥시아 최대 주주인 베인캐피털과 합병 조건에 이견이 커지면서 결국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결렬됐다. 

베인캐피털은 2017년 한·미·일 컨소시엄을 꾸려 키옥시아 지분 49.9%를 매입했는데, 당시 SK하이닉스는 컨소시엄에 4조 원을 투자해 키옥시아 지분을 최대 15% 확보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게 됐다.

키옥시아는 2023년 4월부터 12월까지 2540억 엔(약 2조3천억 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낸드플래시 업황이 악화하면서 최악의 실적을 낸 것이다.  

이 때문에 SK하이닉스의 2023년 4분기 키옥시아 투자 자산 평가손실은 1조4300억 원까지 확대됐다. 영업외손실 2조2200억 원 가운데 절반 이상이 키옥시아 투자에서 비롯된 셈이다. 

하지만 키옥시아를 그냥 포기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만약 키옥시아가 경쟁사에 넘어가면 낸드플래시 시장에서 SK하이닉스 입지가 크게 약화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SK하이닉스의 키옥시아 지분은 단순한 투자 수익률 차원에서 볼 문제가 아니다”라며 “지정학적 반도체 지형을 고려해본다면, 당시 키옥시아에 투자할 이유는 충분했다”고 말했다.
 
SK하이닉스가 '골칫덩이' 된 일본 키옥시아 지분 포기 못하는 이유

▲ 일본 키옥시아와 미국 웨스턴디지털이 일본에 건설한 메모리반도체 합작 생산공장 모습. <키옥시아>


SK하이닉스(솔리다임 포함)의 글로벌 낸드플래시 시장점유율은 2023년 3분기 기준 20.2%로,  삼성전자(31.4%)에 이어 2위다. 하지만 만약 웨스턴디지털과 키옥시아의 합병이 성사된다면 합병회사 점유율은 31.4%로 올라가고, SK하이닉스는 3위로 밀려나게 된다.

초대형 경쟁사의 탄생은 SK하이닉스 입장에서 달갑지 않은 것이다.

최근 낸드플래시 산업은 반도체 적층수가 지속 증가하면서 투자비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 이에 따라 D램처럼 ‘규모의 경제’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따라서 거대 낸드플래시 기업이 탄생하면 SK하이닉스가 생산단가 경쟁에서 밀려날 가능성이 있다.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이사 사장은 지난해 10월 “키옥시아 투자 자산을 갖고 있기 때문에 영향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합병) 동의하지 않았다”며 “더 좋은 방안이나 새로운 대안이 있다면 충분히 같이 고민하고 논의해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입장을 밝혔다.

미국 마이크론이나 중국 YMTC와 같은 반도체 경쟁사에 키옥시아가 넘어가는 것은 SK하이닉스에겐 더 나쁜 시나리오다.

특히 중국 YMTC는 2022년 말부터 200단 이상의 3D 낸드플래시를 양산하며 선두업체와 기술격차를 좁히고 있는데, 키옥시아 기술력까지 확보한다면 향후 낸드플래시 판매단가 하락과 공급과잉을 가져올 공산이 크다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최근 일본 언론에서 키옥시아가 SK하이닉스에 일본 내 자사 공장에서 낸드플래시를 생산할 수 있돌록 제안했다는 보도가 나왔는데, SK하이닉슨느 이같은 방식으로 키옥시아를 활용해 투자비를 절감하면서도 낸드 시장점유율을 확대하는 방안을 찾을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SK하이닉스 관계자는 “키옥시아로부터 그런 제안을 받은 게 없다”고 밝혔다. 나병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