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년 11월10일 스페인 빌바오에 위치한 한 충전소에서 포드 머스탱 마하-E가 충전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이 마하-E에 배터리를 공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리튬 가격 급락으로 촉발된 전기차 배터리 가격 하락세가 더 깊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덕분에 전기차 제조사들은 차량 가격 인하 부담을 더욱 줄이면서 올해 가격 인하 경쟁을 더 치열하게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전기차 기업들끼리 협력해서 저가형 차량을 새로 개발하는 방안까지 거론되다 보니 소비자들은 저가 전기차 선택폭이 넓어질 것으로 보인다.
20일(현지시각) 자동차 전문매체 오토모티브뉴스는 전기차 수요 부진에 중저가 모델 출시 확대를 추진하던 자동차 제조사들이 배터리 원재료 가격 하락으로 한시름 놓았다고 평가했다.
리튬 가격이 크게 떨어지면서 전기차 원가에서 40%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는 배터리 가격도 덩달아 낮아졌기 때문이다. 리튬 등 원재료 가격은 배터리 단가에 연동돼 반영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블룸버그 산하 조사기관인 블룸버그NEF(New Energy Finance)에 따르면 세계 리튬이온 배터리백 가격은 2022년부터 2023년까지 평균 14% 하락했다.
투자은행 TD코웬의 전기차 전문 분석가 게이브 다우드는 오토모티브뉴스를 통해 “(배터리 소재) 가격이 떨어져 자동차 제조 업체는 차량 가격을 낮추면서도 수익성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고 분석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배터리의 핵심소재인 리튬 가격은 2024년 연초에 1년 전보다 90% 하락했다.
지난 수 년 동안 전기차 시장 확대에 대한 기대로 리튬 공급량은 크게 늘어났지만 정작 전기차 수요 증가세가 지난해부터 둔화돼 리튬 공급 과잉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코발트와 니켈 등 다른 배터리 소재 가격도 비슷한 추세를 보이는 것으로 전해졌다.
원자재 시장조사업체인 벤치마크 미네랄 인텔리전스(Benchmark Mineral Intelligence)는 2024년 리튬과 코발트 및 니켈이 공급 과잉상태가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는 올해 전기차 가격 경쟁이 지난해보다 더 치열하게 벌어질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는 배경이다.
실제로 전기차 제조사들은 연이어 전기차 가격 인하를 발표하고 있다.
포드는 20일 ‘머스탱 마하E’ 2023년형 가격을 모델에 따라 최대 8100달러(약 1082만 원) 인하했다. 루시드모터스도 13일 ‘루시드 에어’ 가격을 8천 달러(약 1067만 원)가량 인하한다고 발표했다.
▲ 카를로스 타바레스 스텔란티스 CEO가 1월23일 이탈리아 아테사에 위치한 자회사 세벨(Sevel)의 생산공장에 방문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스텔란티스는 폴크스바겐, 르노와 협력해 저가형 전기차를 개발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 |
저가형 모델을 새로 출시하는 방안도 주요 기업에서 논의되고 있다.
포드는 4분기 콘퍼런스콜을 통해 저가 전기차 출시 계획을 발표했다.
GM은 2만6500달러(약 3534만 원) 가격대의 볼트 EV를 단종시켰으나 최근 다시 시장에 내놓을 준비를 시작했다.
BYD와 같은 중국 업체들이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모델들을 전 세계에 본격적으로 수출하기 시작했다는 점도 가격 인하 경쟁에 불을 붙였다.
중국 업체들이 치고 올라오자 기존 경쟁사들은 협력 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전기차 전문매체 일렉트렉의 20일자 보도에 따르면 스텔란티스와 폴크스바겐 그리고 르노 세 기업은 저렴한 전기차를 개발하기 위해 협력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중저가 모델들의 출시 확대는 전기차 대중화를 이끄는 데에 긍정적 요소로 평가된다.
게이브 다우드 분석가는 오토모티브뉴스를 통해 “전기차 가격이 전반적으로 떨어지면서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전기차는 일반차에 비해 상대적으로 고가라는 지적을 받으며 수요 증가세가 둔화됐었는데 가격이 떨어지면 중저가 고객층의 시선을 끌 수 있다. 즉, 새로운 수요를 창출할 수 있다.
또, 제조사들 간 마케팅 전쟁이 격화되면 소비자 입장에선 선택지가 더욱 다양해질 수 있다.
다만 오토모티브뉴스는 배터리 제조사들에는 당분간 배터리 가격 하락 추세로 쉽지 않은 환경이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함께 내놓았다.
전기차 수요가 늘면 배터리 기업에도 장기적으로는 호재이지만 그때까지 수익성을 유지하기 여의치 않을 것이라는 이유다.
게이브 다우드는 오토모티브뉴스를 통해 배터리 기업들의 어려움을 “유혈극을 겪는 것과 같은 상황”이라고 비유적으로 표현했다. 이근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