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코프로 등 2차전지 업종에 대해 비관적 전망을 제시하는 애널리스트들에 대한 개인투자자들의 항의가 거세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의 소신 리포트가 일부 개인투자자들의 지나친 항의에 맞딱뜨리면서 시장정보 유통창구가 경직되는 부작용으로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증권사 리서치센터들이 발행하는 각종 보고서 내에 내선번호를 생략하거나 아예 유료로 전환하는 방침까지 고려하고 있는데 개인투자자들이 정보 불균형에 노출되는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시선이 나온다.
3일 금융투자업계의 말을 종합하면 올해 들어 일부 개인투자자들의 애널리스트들에 대한 항의가 거세지자 증권사들이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에코프로 주식은 올해 주가가 폭등하면서 일찍이 과열 우려가 제기됐다. 그러나 개인투자자들의 투자 열풍에 소신발언을 내기 힘든 환경이었다.
그러다 4월11일 하나증권의 A 애널리스트가 리포트에서 에코프로에 대한 매도의견을 처음 제시했다.
개인투자자들의 반발은 불보듯 뻔했다. 업무에 마비가 올 수준으로 하나증권에 항의성 전화가 빗발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금융당국은 이후 실망스런 행보를 보였다. 연초부터 금융당국은 애널리스트들에게 매도의견 비중을 높이라고 주문해 왔건만 정작 금융감독원은 개인투자자들의 등쌀에 못이겨 A 애널리스트를 불러 조사했다.
그러자 증권사와 애널리스트들은 스스로 대책을 마련하고 나섰다.
하나증권은 올해 초까진 리포트 내에 담당 애널리스트의 내선번호를 기재해 왔다. 기관투자자 뿐 아니라 개인투자자도 이를 통해 자유롭게 담당 애널리스트들과 접촉하며 질문할 수 있었다.
그러나 4월11일 에코프로 리포트 이후 하나증권 리포트에선 점차 애널리스트들의 내선번호가 사라져 현재는 찾아볼 수 없다. 엄청난 항의에 직면한 뒤 하나증권 스스로 내선번호를 없애나간 것으로 풀이된다.
이 밖에 다른 증권사들도 애널리스트 내선번호를 점차 없애는 방향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개인투자자들에게는 득이될 것이 전혀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해당 업종의 전문가들인 증권사 애널리스트와 접할 수 있는 유일한 창구가 사라지는 것”이라 말했다.
현재 내선번호를 기재하지 않는 증권사들은 리포트 내에 담당 애널리스트의 메일 주소만 기재하고 있으나 메일 문의는 즉각적인 답변을 기대하기 힘들다. 순수히 질문을 위해 애널리스트 내선번호를 활용하던 선의의 투자자들에게는 피해가 될 수 있다.
그럼에도 지난달 9일 A 애널리스트가 출근길에 일부 개인투자자들에게 위협을 당하는 등 사태가 오히려 악화되자 증권사들은 추가 대책을 고민하고 있다.
증권업계에선 리포트를 아예 유료로 바꿔버리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유료화 논의는 그 전부터 있어왔지만 최근 일부 도를 넘은 개인투자자들의 행위가 이를 가속화시키게 된 것이다.
리포트 유료화는 내선번호 생략보다 더 치명적일 수 있다.
애널리스트들이 제공하는 정보를 개인투자자들이 접할 기회 자체가 줄며 기관투자자와의 정보 비대칭을 더 악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리포트가 유료화 된 해외의 경우, 미국 제이피모건이 1년 열람수수료로 최소 1만 달러(약 1300만 원)를 수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미국 제이피모건의 리포트를 보기 위해선 상당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모든 리포트가 유료화 되면 주식시장에서 기관투자자들의 우위가 더 공고해질 것”이라며 “또한 A의 사례로 볼 때 향후 애널리스트들의 자유로운 의견 개진이 줄어들며 주식시장 정보 불투명성이 더욱 심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 사이에선 증권사와 애널리스트의 자구책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금융당국이 나서서 대책을 마련해줘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또 다른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도가 지나친 일부 개인투자자들이 애널리스트들에게 물리적 협박을 가하는 경우 금융당국이 수사당국과 공조해 처벌의 수위를 더 높게 가져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태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