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G가의 상속 분쟁이 본격화됐다. 선대 회장의 뜻이 담긴 메모를 둘러싼 공방이 주된 쟁점인데 일단 LG 선대회장이 남긴 메모는 우리법상 법적으로 효력이 있는 유언은 아니다. 사진은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LG가의 상속 분쟁이 본격화됐다. LG그룹 선대 회장의 유산 상속과 관련해 부인과 두 딸이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구본무 전 LG그룹 회장이 2018년에 별세한 뒤 보유하고 있던 LG 주식의 대부분을 아들인 구광모 현 회장이 상속하는 내용으로 상속재산분할 합의가 이루어졌다.
그런데 어머니와 딸 측은 유언이 있다고 속아서 상속재산 분할에 합의했기 때문에 상속재산을 재분배해야 한다고 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현재 언론 등에 보도된 사실에 따르면 선대 회장의 뜻이 담긴 메모를 둘러싼 공방이 주된 쟁점이다.
돌아가신 분이 살아있을 때 가졌던 생각을 유지(遺旨)라고 한다. 이 ‘유지’가 어떤 형태로든 자식에게 남겨지면 유언(遺言)이 된다.
남겨진 자식들이 고인의 뜻을 따를지 말지 정하는 것은 자유이다. 유언은 유언일 뿐 그 자체로는 아무런 효력이 없다. 하지만 유언이 법에 정한 일정한 형식과 적합한 내용을 갖추게 되면, 법적으로 효력이 있는 유언이 된다.
LG가의 소송에서는 선대 회장의 유지를 담은 ‘메모’가 하나의 쟁점이 되었다. 언론에 보도된 내용에 따르면 선대 회장이 이야기하는 내용을 직원이 정리한 뒤 메모 아래에 자필서명을 받았다고 한다.
이것은 유언이 맞을까? 일단 다른 사람이 받아 적은 망인의 뜻도 유언이 맞다. 다만 법적 효력이 있는 유언인지가 문제다.
법적으로 효력이 있는 유언은 그 내용에 상속인들이 따라야 할 의무가 발생한다. 물론 유류분 등 몇 가지 제한이 있기는 하다. 일단 LG 선대회장이 남긴 메모는 우리법상 법적으로 효력이 있는 유언이 아니다.
우리 민법은 다섯 가지의 유언방식을 규정하고 있는데 자필증서에 의한 유언, 녹음에 의한 유언, 공정증서에 의한 유언, 비밀증서에 의한 유언, 구수증서에 의한 유언이다.
유언은 법에서 정해진 다섯 가지 방식에서 조금만 어긋나도 무효가 된다. 그래서 실제 유언이 상속에서 문제가 되어 법정까지 온 경우 변호사들은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공략한다.
유언의 방식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먼저 자필증서 유언은 자필(自筆), 즉 자신의 글씨로 유언장을 작성하는 것이다.
그냥 아무거나 쓰면 되는 것이 아니라 유언자가 유언장 전체 문장을 자필로 써야 하며 워드프로세서로 작성하거나 복사를 한 유언장은 무효이다.
유언의 전체 문장과 작성 연월일, 주소, 성명을 스스로 쓰고(서명) 날인을 해야 한다. 이 가운데 하나만 잘못 써도 유언장 전체가 무효가 된다. 예를 들어, 유언장 작성 연도만 쓰고 날짜를 쓰지 않은 유언장은 무효이다.
녹음에 의한 유언은 녹음테이프, 비디오, 스마트폰 등 목소리를 녹음할 수 있는 장치를 사용한 유언이다. 글자를 모르는 사람도 할 수 있다.
다만 이러한 방식으로 유언을 할 때는 증인이 참여해야 하고 녹음된 목소리가 사망한 본인의 것이라는 점을 증명해야 한다.
최근에는 스마트폰에다 유언을 녹화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에도 증인이 영상에 같이 나와 “유언이 정확하다는 사실과 증인의 이름”을 말해야 한다. 이 증언이 없으면 유언 자체가 무효가 된다. 많은 스마트폰 유언이 무효가 되는 이유이다.
공정증서에 의한 유언은 유언자가 공증인(변호사)에게 말로써 유언하면 변호사가 받아 적는 방식으로 하는 유언이다. 유언자가 병으로 사망하기 직전에 가족들이 공증인(변호사)에게 출장을 부탁해서 유언서를 작성하는 경우도 있다.
비밀증서에 의한 유언은 유언 내용은 비밀로 하지만 유언장을 작성했다는 것을 증인 두 명 이상에게 알리는 유언이다. 유언장을 봉인해 내용을 알 수 없게 한 다음 증인들의 서명, 날인을 받아 5일 이내에 공증인이나 법원에 제출하여 확정일자를 받아야 한다.
구수증서에 의한 유언은 유언자가 질병 등 급박한 사정으로 앞의 네 가지 방식(자필증서, 녹음, 공정증서, 비밀증서)의 유언을 할 수 없는 경우에 인정되는 방식이다. 유언자가 말하는 것을 받아쓰는 방식으로 유언을 진행하는데 유언 자체가 무효가 되는 경우가 많다.
민법에 규정된 유언의 방식은 자칫 유언 자체가 무효가 될 가능성이 있다. 생각보다 법에서 정한 유언방식을 어기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공정증서에 의한 유언을 제외하고는 법원의 검인이라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구수증서는 작성하고 7일 이내에 법원의 검인을 신청해야 한다).
법원의 검인이란 작성된 유언장을 법원에 제출해서 유언장이 제대로 작성되었음을 확인받는 절차이다. 동시에 상속인에게 유언장의 존재를 알리는 역할도 한다. 이 검인 절차에는 공동상속인들이 참석하게 되는데 만약에 그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유언장에 이의를 제기하면 그 이후의 절차 진행이 어렵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유언장에 “망인 소유의 아파트를 A에게 상속한다”라고 기재돼 있어도 상속등기 절차를 진행할 수 없다. 결국 소송으로 유언이 효력 있음을 다투어야 하는 상황이 된다. 이런 일련의 절차는 상속인들에게는 상당히 귀찮은 일이 된다.
필자는 이런 문제 때문에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면 공정증서에 의한 유언을 권한다. 공증사무실에 증인 2명 이상과 함께 방문하여 유언장을 작성하면 간단하다.
내가 가진 재산 전부와 관련해 유언장을 작성하지 않아도 된다. 예를 들어 보유하고 있는 재산 중에 특정 부동산을 큰딸에게 남겨주고 싶다면 그 재산을 유증(遺贈)이라는 형태로 콕 찍어서 큰딸에게 남겨줄 수 있다.
이렇게 하면 상속인은 법원의 검인 절차나 추가적인 소송 없이도 망인의 재산을 자신의 명의로 바로 이전해 올 수 있다.
공정증서에 의한 유언의 단점은 아무래도 공증사무실에서 공증 변호사의 확인을 받는 절차이다 보니 비용이 들어가고 2명의 증인이 필요하기 때문에 유언의 내용이 외부로 노출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비용이 아무리 많이 들어도 유언 관련된 소송을 진행하는 비용보다는 낮다. 특히 유언 분쟁 때문에 들어가는 소송비용, 시간, 정신적인 피해를 생각한다면 가장 저렴한 방식일 수도 있다.
필자는 적극적으로 유언을 하는 것을 권하는 편이다. 유언의 내용이 너무 특정한 상속인에게 유리하게 된 경우가 아니라면 유언이 있는 경우에 상속 분쟁이 생길 가능성이 적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유언을 망설인다면 유언은 언제든지 수정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하자. 어제 큰딸에게 전 재산을 물려주기로 유언했어도 오늘 큰아들에게 전 재산을 물려주는 내용으로 유언 변경이 가능하다. 이 과정에서는 특별한 이유도 필요 없다. 나중에 작성한 유언장이 원칙적으로 유효하기 때문이다. 고윤기 상속전문변호사
대한변호사협회의 전문변호사 등록심사를 통과하고 상속전문변호사로 등록되어 있다.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변호사 업무를 시작한 이후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상속과 재산 분할에 관한 많은 사건을 수행했다. 저서로는 '한정승인과 상속포기의 모든 것'(2022, 아템포),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어요-상속 한정승인 편'(2017, 롤링다이스), '중소기업 CEO가 꼭 알아야 할 법률 이야기(2016, 양문출판사)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