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HD현대그룹이 주축인 조선업의 실적개선 가시화에 따라 당분간 양호한 이익 흐름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권오갑 HD현대 대표이사 회장이 공을 들여 구축해 온 그룹 내 사업포트폴리오가 안정적 이익기반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제 권 회장은 오너3세 정기선 사장의 경영승계를 매듭 짓는데 더욱 속도를 붙일 것으로 보인다. 
 
 HD현대그룹 주축 조선업 실적 개선 가시화, 권오갑 ‘정기선 체제’ 안착 눈앞

권오갑 HD현대 대표이사 회장(사진)이 그룹 내 사업포트폴리오를 안정적으로 구축한 데 이어 정기선 사장의 경영승계를 매듭 짓는 일에도 더욱 속도를 붙일 것으로 보인다. < HD현대 >


31일 HD현대그룹 안팎의 말을 종합하면 주력 조선업이 흑자 기조를 보이는 것을 시작으로 하반기로 갈수록 실적 개선세가 가팔라질 것으로 분석된다. 

HD현대의 조선부문 중간지주사 HD한국조선해양은 올해 2분기 매출 5조4536억 원, 영업이익 712억 원을 거둔 것으로 잠정집계됐다.   

지난해 2분기에 HD한국조선해양은 영업손실 2651억 원을 냈다. 직전 분기인 올해 1분기에도 영업손실 190억 원을 거뒀다. 전년 동기 대비로나 직전 분기 대비로나 모두 영업흑자 전환에 성공한 것이다. 

조선업계에서는 HD한국조선해양의 흑자기조가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2021년 이전에 수주한 저가 물량을 거의 털어내고 높은 가격의 선박으로 일감을 채운 효과가 본격적으로 반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업은 수주가 실적으로 반영되는 시점까지 간극이 큰 탓에 2022년 양질의 수주가 이어졌음에도 과거 저가 수주분이 실적에 발목을 잡아왔지만 이제는 이익이 늘어날 일만 남은 셈이다.

실적 개선세와 함께 양질의 수주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HD한국조선해양은 올해 약 143억5천만 달러의 수주잔고를 쌓았는데 이는 애초 연간 목표치인 133억 달러를 이미 넘어선 수치다. 한 해의 절반을 갓 넘긴 시점의 수주목표를 초과 달성한 것이다. 

엄경아 신영증권 연구원은 “HD한국조선해양은 영업실적 개선이 재무구조 개선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보이는 중”이라며 “연간 기준으로도 매출이 전년보다 34.5% 증가하고 영업이익은 5487억 원에 이르며 연간 기준으로도 흑자전환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선 부문의 실적 개선세가 뚜렷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HD현대의 또 다른 주력 사업인 정유 부문 실적이 부진해졌다는 점은 다소 아쉬운 부분이다.  

HD현대의 정유 부문 자회사 HD현대오일뱅크는 정제마진 급락으로 2분기에 영업손실 965억 원을 낸 것으로 집계됐다. HD현대의 2분기 영업이익(4726억 원)이 지난해 2분기보다 61.9% 후퇴한 가장 주된 이유로 정유 부문의 실적 부진이 꼽힌다. 

다만 7월부터 정제마진이 빠르게 상승하고 있기 때문에 3분기부터는 정유 부문 마진도 크게 개선될 것으로 전망된다. 

김현태 BNK증권 연구원은 “조선, 정유부문의 실적이 하반기에 빠르게 개선되면서 HD현대 영업이익은 3분기와 4분기에 각각 7100억 원, 8418억 원으로 확대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각 사업부문별 실적 전망과 별도로 HD현대가 구축한 사업 포트폴리오가 안정적 이익기반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HD현대는 조선, 에너지, 건설기계를 큰 축으로 하고 있다. 조선업황이 부진으로 지난해까지 조선부문이 적자를 내던 시기에도 정유 부문이 이익을 낸 덕분에 HD현대는 이익 증가세를 유지할 수 있었다. 

정제마진 악화로 정유부문이 2분기에 부진했지만 조선업황이 본격 회복세를 나타내고 있다는 점도 다변화된 사업 포트폴리오가 그룹의 사업 안정성 측면에서 요긴하다는 점을 나타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여기에 건설기계와 전력기기 등도 현금창출원(캐시카우) 역할을 하며 HD현대그룹의 이익체력에 적잖은 비중을 담당하고 있다. 

건설기계를 담당하는 중간지주사 HD현대사이트솔루션은 2분기에 매출 2조4072억 원과 영업이익 2709억 원을 냈다. 지난해 2분기와 비교해 매출은 13.7%, 영업이익은 141.4% 늘어났다. 

전력기기 계열사 HD현대일렉트릭은 매출 6425억 원과 영업이익 588억 원을 거뒀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매출은 19%, 영업이익은 116.2% 증가했다. 

권오갑 HD현대 회장은 HD현대그룹이 조선, 에너지, 건설기계를 3대 축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구축하는 데 많은 공을 들여왔다. 

권 회장은 정유 중심이었던 에너지사업을 태양광(HD현대에너지솔루션) 등 친환경 분야로 외연을 확장하는 데도 힘써왔다.  

그룹의 건설기계 사업 역량을 대폭 강화하기 위해 2021년 두산인프라코어(현 HD현대인프라코어) 인수를 매듭 지은 사람도 권 회장이다. 현재 HD현대의 건설기계 중간 지주사 HD현대사이트솔루션 아래 HD현대건설기계와 HD현대인프라코어가 적잖은 이익을 내고 있다. 

HD현대그룹의 사업 포트폴리오 구축이 어느 정도 완성된 데다 실적도 점차 개선되는 흐름이 뚜렷한 만큼 권 회장으로서는 그룹의 영업과 관련한 과제는 상당 부분 해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제 권 회장에게 남은 가장 중요한 과제로는 오너 경영인인 정기선 HD현대 사장의 경영 승계를 매듭 짓는 일이 꼽힌다.
 
 HD현대그룹 주축 조선업 실적 개선 가시화, 권오갑 ‘정기선 체제’ 안착 눈앞

정기선 HD현대 대표이사 사장(오른쪽)이 노르시핑 기간 중 글로벌 선주들과 만나 대화를 나누는 모습. < HD현대 >

정 사장은 권 회장과 함께 그룹 지주사인 HD현대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그룹의 주축인 조선 부문 중간지주사 HD한국조선해양의 대표이사도 겸직하고 있다. 

그룹 내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며 경영 전면에서 보폭을 넓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정 사장이 보유한 HD현대 지분이 5.26%에 불과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경영승계를 매듭 짓는 데까지 갈 길이 멀다는 시각도 나온다. 

정 사장이 경영승계를 마무리하려면 아버지인 정몽준 HD현대 대주주의 지분(26.6%) 상당 수를 넘겨 받아야 하는데 그러려면 수천억 원대의 상속·증여세 재원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정 사장이 지닌 개인 자산은 HD현대를 비롯한 계열사 지분이 대부분인 것으로 파악된다. 배당을 통해 재원을 마련하는 것 외에는 뾰족한 수가 없는 셈이다. 

권 회장은 정몽준 대주주가 가장 신임하는 인물로 잘 알려져 있는 만큼 HD현대그룹에 정기선체제를 안착시키는 일도 도맡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권 회장은 정주영 창업자 시절 현대중공업(현 HD현대)에 입사해 HD현대가 글로벌 선두권 기업에 오르기까지 모든 과정을 눈으로 본 산증인이다. 그룹의 오너인 정몽준 대주주의 복심으로도 알려져 있다. 

대주주의 신임이 두터운 만큼 그룹 내 영향력도 작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권 회장은 올해 3월 주주총회에서 HD현대 사내이사 임기가 3년 더 연장되기도 했다. 권 회장을 정점으로 한 경영체제를 유지하며 정 사장의 경영승계를 더 이끌게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가장 당면한 과제로는 HD현대의 자회사 HD현대글로벌서비스의 기업공개(IPO)를 성공시키는 일이 꼽힌다.   

HD현대글로벌서비스는 선박 사후관리와 친환경 개조 등을 담당하는 선박서비스회사로 조선업 호황의 혜택을 함께 누리며 높은 몸값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HD현대글로벌서비스가 벌어들이는 이익 상당 부분이 HD현대의 배당으로 활용되고 있는 데다 기업공개를 통해 높은 가치를 인정받을수록 HD현대가 보유한 지분 가치 역시 높아지게 된다.

HD현대글로벌서비스의 기업공개 성공 여부는 향후 정기선 사장의 경영승계와도 무관치 않을 것으로 보이는 배경이다. 

더구나 HD현대글로벌서비스는 정 사장이 설립을 주도해 일궈왔던 회사다. 정 사장은 2021년 HD현대와 HD한국조선해양 대표로 내정돼 자리를 옮기기 전까지 HD현대글로벌서비스 대표를 지냈다.

HD현대글로벌서비스의 기업공개 성공 여부는 정 사장의 경영 능력을 입증하는 무대로서 의미도 있는 셈이다. 

권오갑 회장은 정기선체제 안착을 위해 그룹의 기초체력을 더욱 더 강화하는 데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최근의 업황 호조세에 따른 실적 개선 조짐에 안주하는 것을 경계하며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하는 데 더 고삐를 죌 것을 그룹 경영진들에게 주문했다. 

권 회장은 28일 열린 그룹 사장단 회의에서 “환율·시황 등 외부 환경 변화에 따라 일시적으로 얻은 이익이 우리에게 잘못된 신호(시그널)를 준다면 오히려 ‘나쁜 이익’으로 돌아올 수 있다”며 “경영자는 나쁜 이익에 취해 마치 회사가 엄청난 성장을 한 것처럼 착각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미래가치를 높이는 데 얼마나 노력했는가, 직원들이 마음껏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었는가 스스로 물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류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