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미국과 영국, 일본 등 주요 국가들이 화폐도안에 들어간 인물 교체에 나서는 가운데 한국은행에서도 화폐도안을 바꿀지 주목된다.
한국은행은 현행 100원 주화에 들어간 이순신 초상의 저작권을 두고 법적 다툼을 벌이고 있는데 이순신 초상 교체가 불가피해질 경우 다른 화폐도안의 인물까지 바꾸자는 분위기가 형성될 수 있다는 시선이 나온다.
▲ 한국은행이 100원 주화에 들어간 이순신 초상 저작권을 두고 법적 다툼이 벌어지고 있다. 사진은 한국은행 본점. <연합뉴스> |
3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2001년부터 이순신 정부표준영정을 그린 장우성 작가의 상속인과 저작권침해 손해배상 문제로 소송을 벌이고 있는데 최근 재판부가 변경되면서 재판이 지연되고 있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3월에 변론이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재판부가 법원 인사로 바뀌면서 지연됐다가 두 차례 변론이 진행됐다”며 “현재 양측의 의견을 듣고 있어 판결이 언제 나올지는 모른다”고 설명했다.
한국은행은 역대 위인의 초상을 사용할 때 표준영정만 사용하게끔 한 정부 지침에 따라 표준영정으로 지정된 장우성 작가의 이순신 초상으로 지폐와 주화를 제작했다.
하지만 장우성 작가의 상속인들은 한국은행에서 이순신 초상의 저작권을 침해했다며 반발하고 있다.
이순신 초상을 둘러싼 한국은행의 재판이 관심을 받는 것은 초상의 변경 여부가 전체 화폐도안 변경의 방아쇠가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은 세종대왕과 이황, 이이, 이순신을 화폐도안 인물로 사용해왔는데 이들 초상을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큰 변화 없이 그대로 유지해오고 있다.
이에 조선시대라는 특정 시기에 활약한 위인이면서 남성으로만 화폐도안이 구성됐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돼 왔으나 2007년 5만 원권을 발행하면서 신사임당이 새 인물로 추가되는 데 그쳤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은행이 이순신 초상의 화폐도안 변경을 검토한다면 이참에 전체 화폐도안의 인물을 바꿔보자는 여론이 일어날 수 있다.
2005년 한국은행이 위조지폐 방지를 위해 기존 지폐의 형태와 도안을 수정했을 때도 시대 변화에 맞춰 새로운 인물을 넣자는 여론이 제기됐다.
다만 당시 한국은행은 인물도안 교체 과정에서 각계각층의 민원이 쇄도해 사회적 혼란이 야기될 수 있다면서 인물은 그대로 유지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 한국은행이 이순신 초상의 화폐도안 변경을 검토할 경우 전체 화폐도안의 인물을 바꿔보자는 분위기가 형성될 수 있다. 사진은 현행 100원 주화 앞뒷면. <위키미디어 공용> |
주요 선진국들이 화폐도안 변경에 적극적 나서고 있는 분위기도 한국은행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
미국은 2021년 미국 역사의 다양성을 반영하기 위해 20달러에 들어간 7대 대통령 앤드류 잭슨 초상을 여성 흑인 인권운동가 해리엇 터브먼으로 교체하기로 하고 관련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영국은 찰스 3세가 엘리자베스 2세에 이어 왕위에 오르자 파운드화 지폐와 동전에 들어간 국왕 초상을 찰스 3세로 바꿨다. 새 파운드화는 2024년 중순부터 유통된다.
일본도 2019년 연호가 변경되자 20년 만에 지폐 디자인을 바꾸기로 하고 화폐도안에 들어간 인물들을 전면 교체했다. 새 엔화는 2024년 7월부터 통용된다.
현행 지폐에 있던 세균학자 노구치 히데요와 소설가 히구치 이치요, 계몽운동가 후쿠자와 유키치 대신 의학자 기타자토 시바사부로와 교육자 츠다 우메코, 사업가 시부사와 에이이치를 새 인물로 넣었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이순신 영정 도안 재판에만 집중하고 있다”며 “아직 다른 도안까지 연결해서 생각하고 있는 상황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조승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