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라피더스 반도체 사업전략 선회, 삼성전자 TSMC와 정면대결 피한다

▲ 일본 정부가 라피더스를 통해 삼성전자 및 TSMC와 직접 경쟁하는 대신 협력을 강화하는 쪽으로 전략을 선회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비즈니스포스트] 일본 정부가 자국 반도체산업 경쟁력 강화에 뚜렷한 의지를 보이고 있지만 삼성전자와 TSMC 등 상위 기업과 직접 대결하지 않는 쪽으로 태도를 선회했다.

한국과 미국, 대만과 영국 등 여러 반도체 강국과 협력 기반을 강화하는 일이 중장기 차원에서 더 큰 실익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판단 때문으로 분석된다.

18일 니혼게이자이 등 외신보도에 따르면 일본 정부 주도로 설립된 반도체 파운드리기업 라피더스가 본격적으로 물량 경쟁에 뛰어드는 일을 피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코이케 아츠요시 라피더스 사장은 니혼게이자이를 통해 2027년까지 2나노 미세공정 반도체 양산체계를 구축하겠다는 목표를 재차 강조했다.

그러나 파운드리 분야에서 TSMC 등 경쟁사와 정면으로 대결하게 될 가능성은 낮다고 덧붙였다.

라피더스가 인공지능과 슈퍼컴퓨터용 반도체 등 특정 분야에만 집중할 계획을 세우고 있는 만큼 거의 모든 산업 분야에 쓰이는 반도체를 위탁생산하는 TSMC와 방향성이 다르다는 것이다.

코이케 사장은 삼성전자와 TSMC의 반도체 생산 능력을 따라잡아 물량으로 승부를 보려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도 강조하고 있다.

대신 특정 고객사가 원하는 반도체를 최대한 빠르게 공급하는 차별화된 생산체계를 통해 틈새시장을 노리는 전략을 쓰겠다는 것이다.

라피더스는 지난해 일본 정부의 출자를 받아 설립된 반도체기업으로 현재 건설중인 홋카이도 공장 투자에도 상당한 규모의 정부 보조금을 받기로 했다.

자연히 코이케 사장의 발언은 일본 정부의 입장을 반영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라피더스가 설립 초기에는 삼성전자와 TSMC의 공정 기술력을 따라잡겠다며 경쟁 의지를 앞세웠으나 최근 태도를 바꾼 원인은 여러 현실적 측면 때문으로 분석된다.

우선 라피더스가 이미 삼성전자 및 TSMC에 수십 년은 뒤처진 시스템반도체 기술을 수 년 안에 추격하겠다는 목표는 실현되기 쉽지 않다는 점이 이유로 꼽힌다.

라피더스는 미국 IBM과 기술 협력을 통해 2나노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기술을 확보했지만 실제로 파운드리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수율 확보 등 측면에서 약점을 안을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와 TSMC를 상대로 2나노 반도체에서 물량 경쟁을 벌이기 어려운 만큼 제한된 분야에서만 반도체 위탁생산을 진행하겠다는 계획을 두게 된 셈이다.

코이케 사장이 니혼게이자이를 통해 라피더스의 미세공정 반도체 양산에 대략 500명의 엔지니어만 활용하겠다고 밝힌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일본 라피더스 반도체 사업전략 선회, 삼성전자 TSMC와 정면대결 피한다

▲ 삼성전자 반도체 파운드리공장 내부. <삼성전자>

TSMC가 해마다 수천 명의 엔지니어를 신규로 채용하고 있다는 데 비춰보면 턱없이 적은 숫자다.

결국 삼성전자도 라피더스가 미래 반도체 파운드리시장에서 TSMC와 인텔에 이은 중요한 경쟁사로 떠오를 것이라는 부담을 덜게 됐다.

일본 정부가 최근 전 세계 반도체 강국을 대상으로 다양한 방식의 협력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도 라피더스의 경쟁 의지가 꺾인 배경으로 꼽힌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18일 삼성전자를 비롯한 해외 반도체기업 7곳에 일본 내 투자 확대를 요청하며 정부 차원에서 적극 협력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일본이 자체 기술 개발과 자국 기업의 투자로 글로벌 반도체시장에서 영향력을 높이기는 이미 늦었다는 판단에 따라 적극적으로 해외에 손을 내밀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삼성전자와 인텔, TSMC 등 기업이 일본에 미세공정 반도체 생산공장 투자를 결정한다면 일본의 첨단 반도체 자급체제 구축 목표는 크게 앞당겨질 수 있다.

라피더스가 일본 내에서 발생하는 인공지능 반도체 등 첨단 반도체 수요에 대응하기는 한계가 분명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국 일본 입장에서는 라피더스를 앞세워 해외 주요 경쟁사와 대결하는 것보다 이들의 투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하는 일이 실익을 확보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TSMC는 이미 일본에 소니 등 기업과 합작법인을 설립하고 반도체 파운드리공장을 신설하고 있다. 해당 공장에서는 주로 차량용 반도체와 이미지센서 등이 생산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라피더스를 제외하면 아직 일본에 5나노 이하 첨단 반도체 미세공정 투자 계획을 내놓은 반도체기업은 전무하다.

기시다 총리는 21일까지 일본에서 개최되는 G7 정상회의를 통해 주요 국가 정상에 반도체산업과 관련한 협력을 적극 요청할 것으로 전망된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