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창진 바른선거시민모임중앙회 회장이 4월20일 서울 마포구에 있는 가든호텔에서 비즈니스포스트와 만나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
[비즈니스포스트] "노동권은 일할 권리일뿐 아니라 일 하는 사람들의 인권이기도 합니다."
박창진 사단법인 바른선거시민모임중앙회 회장은 비즈니스포스트와 인터뷰에서 "아직까지 한국 사회에서 노동권이 충분히 보장받고 있지 못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노동자 인권을 위한 제도는 있지만 관공서 등에서 일처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적극적으로 노동자를 보호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박창진 회장은 대한항공 객실사무장 출신이다. 한진그룹 오너가인 조현아 당시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 회항 갑질'의 당사자다. 조 전 부회장은 2014년 12월5일 마카다미아를 봉지째 준 승무원의 서비스를 문제 삼아 활주로로 이동 중인 비행기를 돌려 당시 박창진 사무장을 비행기에 내리도록 했다.
박 회장은 그 뒤 노동 운동가로 인생 항로를 틀었다. 한진그룹 오너가에 비판의 날을 세우면서 사무장에서 일반 승무원으로 강등당한 채 6년을 더 대한항공에 일했다. 2018년 8월부터 약 1년6개월 동안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 대한항공직원연대지부 지부장을 맡아 노조 활동도 펼쳤다.
노동 운동가였던 그는 현실을 바꾸는 '더 큰 힘'을 얻기 위해 2019년 정의당 국민의노동조합특별위원장을 맡으며 정치에 뛰어들었다. 2020년 제21대 총선에 정의당 비례대표 후보 8번으로 나서기도 했으나 국회에 입성하지 못했고 그 뒤 정의당 갑질근절특별위원장, 부대표 등을 지냈다.
하지만 박 회장은 정의당이 노동자를 위한 행보를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해 2022년 6월 탈당했고 같은 해 12월 바른선거시민모임중앙회 회장에 선출됐다. 바른선거서민모임중앙회는 20년 역사를 가진 대한민국 최초의 선거 관련 시민단체로 시민 주권이 바른 가치와 민주적 방식으로 행사되도록 하는 활동을 펼치고 있다.
박창진 회장과 노동절을 앞두고 4월20일 마포 서울가든호텔에서 만나 우리나라의 노동 환경에 관해 얘기를 들어봤다.
- ‘땅콩회항’ 사건 이후 노동 관련 여러 법들이 발의됐다. 현재 국내 노동 환경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하는가?
"‘땅콩회항’ 이후 사회에 만연하던 갑질과 관련해 여론이 모이면서 ‘갑질 방지법’으로 불리는 직장내 괴롭힘 방지법이 발의됐다. 또 대한항공 주주총회에서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코드 등이 최초로 발동되는 등 제도적으로는 많은 발전이 있었다.
하지만 제가 2020년 정의당 노동 담당 부대표를 맡았을 때 살펴보니 여전히 산재 사고나 직장내 괴롭힘 등으로 돌아가신 분이 많았고 대부분 노동자들이 제대로 된 대우를 못 받고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다는 점을 느꼈다.
법과 제도는 있지만 이것이 잘 지켜지도록 하는 환경이 갖춰지지 않아서다. 예외 규정도 너무 많다. 변화는 있었지만 여전히 법을 만드는 사람이나 법을 다루는 사람, 법을 집행하는 사람 등 기득권자들이 서민들의 편이 아니라는 점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시민들도 노동 관련 법의 효용성을 느껴보지 못했다는 점에서 사각지대가 생기는 것으로 보인다. 입법권자들 가운데 직장내 괴롭힘을 겪어본 이들이 거의 없는 만큼 국민들을 바보 취급하는 환경이 만들어지는 것 같다."
- 우리나라의 노동권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한국 정도의 경제 규모를 갖춘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아직도 취약하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제가 1990년대 대한항공 재직시절 브라질 상파울로를 갔는데 브라질 승무원들은 '병가(SICK CALL)'를 언제든지 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시절 대한항공에서 병가를 내려면 일단 병원에 가서 진단서를 받고 회사에 다시 가서 회사 지정병원 의사에게 서류를 내고 의사가 도장을 찍어주면 그 때서야 회사에 병가를 낼 수 있었다. 그런 복잡한 절차가 있다 보니 대부분은 병가를 포기하게 된다.
실제 제가 ‘땅콩회항’ 이후 대한항공 노동조합(노조)을 만들었을 때도 여성 직원 비중이 70~80%에 이르지만 90% 이상의 여직원들이 자신한테 주어진 생리휴가를 써본 적이 없었다.
이런 것은 다 사람 즉 노동을 ‘잉여’ 존재로 인식하고 있는 데 따른 사회적 문제라고 볼 수 있다. 노동자들을 언제든지 대체 가능하다고 생각하다 보니 노동자의 희생이 당연하다고 여기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인구가 줄어들어 사람이 귀해지는 세상인데 노동자를 대체가능한 물품 정도로 여기는 생각은 시대에 맞지 않는다.
이런 측면에서 노동권은 사실상 인권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에서 인권을 바라보는 의식이 낮아 노동을 바라보는 문제 인식이라던지 노동자 처우 등이 아직까지 열악하다고 본다."
박 회장은 땅콩 회항 갑질의 피해자가 된 뒤 사회적 논란이 커지고 본인도 오너 일가를 향해 비판의 목소리를 내면서 2020년 퇴직할 때까지 6년 동안 회사에서 여러 가지 불이익을 받았다고 했다.
영어 성적이 안 좋다고 사무장에서 객실 승무원으로 강등당한 일이 대표적이다. 박 회장은 땅콩 회항 이전에는 대통령 전용기도 타고 사내에서 영어 브리핑을 하는 등 영어실력이 좋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회사 측은 영어 발음이 좋지 않다면서 영어시험을 보게 해 불합격을 준 것에 이어 한국어 시험도 80점이 통과 기준인데 70점을 줬다. 이밖에 다른 직원들과 점심에 커피를 먹어도 이 내용이 회사에 보고될 뿐 아니라 하지 않은 일까지 했다며 인격 모욕도 받았다고 한다.
사실상 동료가 감시하는 것으로 느껴져 사람이 미워지면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비행기 안에서 극단적 선택을 생각한 적도 있었을 정도로 2차 가해를 당했다는 것이다.
박 회장은 물론 "동료들도 자기가 원해서 그런것이 아니라 회사에서 시켰던 것 같다"며 "나중에 퇴직한 직원 일부는 저에게 전화를 해 그동안 회사에 보고를 했다며 사과하는 경우도 꽤 있었다"고 했다.
- 과거로 돌아가서 같은 일을 겪는다면 피해를 공론화 할 것인지.
"당시 겪었던 ‘땅콩회항’ 갑질 문제는 대한항공 오너 일가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다시 싸울 각오가 돼 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이 부당한 일로 회사를 상대로 싸운다고 하면 말리고 싶다. 개인이 모든 것을 던져야 하지만 승리를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 저도 국내에서는 승소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변호사 조언으로 미국에서 소송을 진행했었다. 사실 이는 아직까지 국내에서 노동 관련한 제도적 문제가 많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회사에서 집단 내 괴롭힘을 당했을 때 회사에서 조사를 하기 때문에 진상조사가 제대로 되지 않을 뿐더라 피해자도 결국 나중에 2차 가해를 받을 수밖에 없다. 직장내 괴롭힘을 당했을 때는 회사 자체 조사가 아니라 고용노동부 해당 부서에서 객관적 조사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뿐 아니라 우리 사회는 노동자가 문제 제기를 할 수 있는 울타리가 아직까지 부족하다. 대표적으로 실업급여는 회사에서 해고되거나 계약이 종료된 사람만 받을 수 있다. 직장내 괴롭힘으로 견디지 못하고 자진 퇴사한 사람은 실업급여 대상이 안된다. 하지만 그렇게 직장을 떠난 사람이라도 당연히 구직활동을 할 가능성이 큰데 이들을 위한 제도는 없다."
- 앞으로 계획은
"서민을 대표할 수 있는 정치인이 되고 싶다. 일련의 과정을 겪으면서 저 스스로는 성실하게 세금을 내면서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실제 부당한 일을 겪을 때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가 없었다.
노동자를 위한 법률 기반은 마련됐지만 법이 제대로 집행될 수 있는 세부 규정은 없거나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고 본다. 이런 점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결국 정치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아직까지 구체적 소속 정당은 정하지 않았지만 보통 시민을 대표하는 사람도 정치권에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제가 정치를 한다고 했을 때 소셜미디어 댓글에서 검사나 판사도 아닌 사람이 정치인을 하냐는 비판을 봤다.
하지만 저는 오히려 직장을 다녔던 보통사람이라는 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노동자 관점에서 실제 필요한 제도나 미비한 점들을 정치 영역에서 보완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장은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