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환경 경영으로 위장하는 '그린워싱'을 방지하는 일이 2023년 세계 각국 및 투자업계의 화두로 떠올랐다. |
[비즈니스포스트] 유럽연합(EU)을 비롯한 세계 주요 당국과 투자기관이 ‘그린워싱’ 규제를 본격적으로 추진한다.
ESG 투자 열풍이 확산되자 전 세계 기업들이 자금 조달이나 기업 이미지 개선을 위해 친환경 경영을 위장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2일 로이터에 따르면 유럽연합 회원국과 의회는 녹색채권(그린본드) 발행 기준을 명확히 세우고 그린워싱 행위를 규제 및 감독하기로 합의했다. 녹색채권은 친환경 사업과 관련한 자금 조달을 위해 발행되는 특수목적 채권이다.
전 세계 기업들은 환경보호와 관련된 분야에 투자자들의 선호가 높아짐에 따라 녹색채권 발행을 늘려 자금을 조달해왔다.
그러나 각국 금융당국이 검증체계를 제대로 갖추지 않은 채 기업의 자발적 신고에만 기대 녹색채권 발행을 허용하는 사례가 많아 녹색채권이 실제 환경에 미친 긍정적 영향은 미미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유럽연합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린워싱에 대응할 방안을 모색해 왔다. 녹색채권 발행에 정확한 기준을 세운다면 투자자의 자금이 실제로 친환경 사업에 쓰이는지 검증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할 수 있다.
유럽연합 의회 대변인은 새로운 제도에 따라 기업이 채권을 발행할 때 녹색채권 등급을 받으려면 이를 통해 조달한 자금의 85% 이상을 유럽연합의 분류체계상 지속가능 경영활동에 할당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유럽연합은 녹색채권 자금이 친환경적 활동에 쓰였는지 외부기관을 통해 확인하는 절차도 표준화한다.
유럽의회 의원인 폴 탕은 파이낸셜타임스와 인터뷰에서 “2022년에 발행된 5천억 달러(약 656조 원) 규모의 녹색채권 가운데 소수만이 녹색채권이라 이름붙일 자격이 있다”며 “(유럽의회가 도입할) 명확한 공시 시스템을 사용하면 녹색채권이라고 주장하는 그린워싱 채권을 정교하게 검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유럽연합의 녹색채권 규제는 유럽 각국 및 유럽의회의 승인을 받고 난 후 1년이 지난 시기부터 적용된다.
그린워싱 행위를 방지하려는 노력은 유럽연합 이외 다른 국가로도 확산되고 있다.
가디언에 따르면 호주의 기업 규제 기관인 호주증권투자위원회(ASIC)는 그린워싱과 관련해 처음으로 소송을 시작했다.
호주의 한 투자회사가 ‘지속가능한 환경을 위한 투자’ 라는 상품의 투자 대상에 화석연료를 채굴하는 기업을 포함시킨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기업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 제품에 그린워싱을 시도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가디언에 따르면 호주의 공정거래위원회 성격 기관인 경쟁소비자위원회(ACCC)는 많은 기업이 검증없이 자사 제품을 ‘친환경’, ‘지속가능한’ 등 수식어를 사용해 설명하고 있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는 247곳의 기업 또는 브랜드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57%(141곳)가 그린워싱을 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카트리오나 뢰베 경쟁소비자위원회 부위원장은 “소비자는 이제 그 어느 때 보다 환경을 고려해 구매 결정을 내린다”며 “안타깝게도 일부 기업은 허위 또는 오해의 소지가 있는 홍보에 의존하고 있다”고 가디언을 통해 말했다.
뢰베 부위원장은 이 밖에도 포장재, 소비재, 식품제조 및 의료 기기 생산업체 등 그린워싱으로 의심되는 기업에 대한 조사가 이뤄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 사진은 '100% 친환경'이라는 가격표의 모습으로 그린워싱을 비판하는데 사용된 이미자. < ccnull> |
글로벌 투자회사에게도 그린워싱 방지는 2023년 가장 중요한 관심사항 가운데 하나다.
글로벌 사모펀드 운용사 아담스스트리트파트너스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벤처캐피탈 투자자들이 2023년에 직면하고 있는 주요 과제로 그린워싱 방지를 꼽았다.
보고서에 따르면 대다수의 투자자들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지표를 투자 결정시 고려하면 수익이 향상된다는 데 동의하는 시각을 보였다. 그러나 기업의 친환경 활동을 뒷받침할 근거를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됐다.
아담스스트리트파트너스는 결국 ESG 경영을 검증하는 정확하고 투명한 측정 방식 개발이 올해 투자자들에게 주요 과제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이처럼 그린워싱을 방지하려는 세계 주요 당국의 활동이 기업들의 친환경 투자를 저해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영국의 로펌 링클레이터스의 재정부문 파트너 데이비드 발러거는 “유럽연합의 새 녹색채권 발행 기준은 대다수 채권 발행자가 준수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녹색채권 관련 기준이 명확해지는 2026년경 까지는 친환경 투자가 줄어들 수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를 통해 말했다. 이근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