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성동구 서울숲 북쪽 일대 성수동1가 골목의 한 붉은벽돌 건물. 이 건물에는 패션의류 매장과 카페, 음식점 등이 입점해있다. <비즈니스포스트> |
[비즈니스포스트] ‘MZ세대의 성지’ 서울 성수동의 힘은 낡은 것과 새로운 것의 공존이다.
뉴트로 유행을 잘 탄 '운'도 있지만 실제 성수동 거리를 걸어보면 성수동이 도시재생학적 관점에서 의미있는 사례라는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성수동1가 ‘붉은벽돌' 건물 골목만 봐도 그렇다.
지하철 서울숲역 5번 출구로 나와 연예인 누구누구가 산다는 45층 높이의 고급 아파트 갤러리아포레를 지나 5분 정도를 걸으면 대각선의 길을 따라 주택가 골목이 나온다.
한 눈에 봐도 저층의 오래된 다세대, 연립주택들이 늘어서 있는 낙후된 주거지역이다.
▲ 2019년 성동구 '붉은벽돌 마을' 사업 지원을 받아 신축한 서울숲4길 12-8 용빌딩. 용빌딩 1층에는 베이커리 카페 STDO가 입점해있다. <서울정보소통광장 홈페이지> |
하지만 골목길을 따라 가까이 들여다보면 성수동의 이 낡은 붉은벽돌 건물들은 힙(hip)하다.
이국적 분위기의 아치형 외벽이 돋보이는 건물부터 장미넝쿨이 엉켜있는 테라스를 얹고 있는 건물, 흔한 다세대 빌라에 커다란 창으로 변화를 준 건물까지 하나하나가 독특한 디자인과 감성을 보여준다.
19일 성동구청 홈페이지에 따르면 성수동은 전체 3346동의 건물 가운데 957동, 28.6%가 붉은벽돌 건축물이다.
2019년 성동구가 추진한 저층주거지 도시재생사업 ‘붉은벽돌 마을’ 시범사업 대상지였던 성수동1가 685~580번지 일대만 놓고 보면 붉은벽돌 건물은 전체 248동 가운데 169동, 68%에 이른다.
▲ 성동구 '붉은벽돌 마을' 시범사업 대상지인 성수동1가 골목은 여전히 눈을 돌리는 곳마다 붉은벽돌 주택과 건물들이 남아있다. <비즈니스포스트> |
성수동은 인근에 서울숲과 한강, 지하철 2호선을 끼고 있는 서울 한가운데 땅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특별계획구역으로 묶여 개발이 지연되면서 1970~80년대 영세 제조업체들이 몰려들어 지어진 붉은벽돌 공장과 창고, 1980~90년대 대규모로 양산된 붉은벽돌 주택들이 여전히 남아있다.
성동구 붉은벽돌 마을 사업은 서울시 주거문화 역사로 상징성을 지닌 이 붉은벽돌 건축물들을 보존하는 동시에 새롭게 활용하자는 목표로 추진됐다.
이미 성수동이 2011년 ‘대림창고’ 성공사례에 힘입어 붉은벽돌 창고와 공장을 개조한 독특한 카페, 문화거리로 재생되고 있었던 데 착안해 정책적으로도 힘을 실은 것이다. 대림창고는 1970년대 지어진 정미소 공장으로 오랫동안 버려져 있던 건물인데 낡은 공장의 외관과 분위기를 그대로 살려 다양한 전시와 행사, 식음료를 파는 복합문화공간으로 개조하면서 유명해졌다.
▲ 성수동1가 골목의 한 붉은벽돌 건물 음식점 모습. <비즈니스포스트> |
지금의 성수동1가는 골목의 많은 낡은 붉은벽돌 주택들이 바로 이 대림창고처럼 기존 건축물을 바탕으로 카페, 베이커리, 패션매장, 음식점, 편집숍으로 재탄생해 사람들의 발길을 불러 모으고 있다.
성수동1가에는 성동구의 붉은벽돌 마을 사업으로 기존 건물들 외에 새로운 붉은벽돌 건물들도 계속해서 들어서고 있다.
성수동 인기 베이커리 카페인 ‘STDO’도 2019년 붉은벽돌 마을 시범사업 지원으로 신축된 건물이다.
서울숲4길 12-8에 자리잡은 STDO는 1층부터 4층까지 각 층이 지그재그 모양으로 얹어져 있는 독특한 디자인으로 눈길을 끈다.
근처 서울숲2길 38-1번지에는 공정무역 기업 더페어스토리에서 운영하는 편집숍이 보인다.
역시 붉은벽돌 건물에 파란색으로 칠해진 문틀이 눈에 띄는 이 가게 건물도 서울시 지원을 받아 리모델링한 것이다.
이곳에서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위쪽에 위치한 국가 나미비아 여성들이 자수를 놓아 만든 제품을 파는 브랜드인 ‘펜두카’와 캄보디아 재활용 제품 브랜드 ‘스마테리아’ 물건들을 볼 수 있다.
▲ 성동구 '붉은벽돌 마을' 시범사업의 지원으로 2019년 세워진 용빌딩(왼쪽)을 비롯해 성수동1가 골목 사이사이에는 다양한 디자인의 붉은벽돌 건물들이 들어서있다. <비즈니스포스트> |
두 브랜드는 사회적으로 소외된 나미비아와 캄보디아 여성들의 경제적, 정신적 자립을 지원하는 브랜드다. 펜두카라는 이름 자체도 ‘Wake Up(눈을 뜨다, 정신을 차리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서울숲2길 19번지 붉은벽돌 건물 1층에 위치한 제리백 에스플래닛은 교육전문 비정부기구(NGO) 호이와 글로벌 사회적기업 제리백이 함께 운영하는 커뮤니티 공간이다.
친환경, 공정무역, 난민자립 등 ESG관련 제품들을 판매하기도 하고 체험, 강좌, 커뮤니티 등 다양한 경험형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
제리백은 아프리카 식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방을 만드는 브랜드로 가방이 하나 판매될 때마나 물통을 담는 ‘제리백’ 하나를 아프리카 우간다 아이들에게 전달해주는 사회적기업이다.
제리백 에스플래닛에서는 우간다 현지 취약계층 여성들에 봉제교육을 통한 기술습득과 일자리 제공 기회를 제공하는 호이맘센터 사업으로 생산한 필통, 가방 등 제품도 판매한다.
이렇게 성수동1가 붉은벽돌 건물들은 뉴트로 감성과 분위기뿐 아니라 개성과 가치소비를 중요시하는 MZ세대들의 관심을 끌 ‘콘텐츠’를 장착한 곳들이 많다.
▲ 성수동1가 '붉은벽돌' 마을 입구에서부터 붉은벽돌 건물을 볼 수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
이밖에도 성수동1가 붉은벽돌 마을 골목에는 반려동물과 함께 들릴 수 있는 루프탑 카페를 비롯해 인스타그램 ‘핫플레이스’인 다양한 음식점과 카페, 소품숍 등이 들어서있다.
다양한 붉은벽돌 건물 디자인을 구경하는 재미에 또 다른 볼거리, 먹거리를 충족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셈이다.
성동구는 최근 서울숲 북쪽 일대 성수동1가에 이어 뚝섬역 남쪽 왕십리로4길 일대 2만7970㎡ 구역을 붉은벽돌 밀집지역으로 신규 지정했다. 성동구는 이 지역에 2026년까지 예산 6억 원을 투입해 붉은벽돌 건축물 신축, 대수선에 최대 2천만 원을 지원한다.
왕십리로4길 일대는 현재 건축물 131동 가운데 94동, 71.7%가 붉은벽돌 건물인 지역이다.
뚝섬을 타고 또 어떤 붉은벽돌 건물들이 카페, 갤러리, 커뮤니티공간으로 새 옷을 입고 또 어떤 새로운 붉은벽돌 건물들이 들어설지, '한국의 브루클린' 성수동의 진화를 기대해볼 만 할듯하다. 박혜린 기자